20여년 전부터 여수지역사회에서 제기돼왔던 여도학원 공립화 논의가 지난 6월 학교법인 여도학원 이사회에서 ‘학교법인해산신청서’를 전남교육청에 제출하면서 지역사회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도학원은 여수국가산단 설립 초기에 산단 임직원의 정주여건 조성의 일환으로, 여수지역의 부족한 교육시설을 확충하고 여수산단 임직원 자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1980년 12월 설립됐다.

그러나 여도학원 설립이후 44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환경은 물론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도시환경의 변화 등 여도학원을 둘러싼 제반 여건상의 적지 않은 변화가 본 현안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공립전환을 주장하는 입장은 교육의 상향 평준화로 인해 지역의 공립학교 교육수준이 여도학원의 교육수준과 질적 차이가 없게 되었다는 것과 학교운영예산의 대부분인 90%가 정부보조금 및 기타수익으로 충당되며, 10%에 불과한 여수산단 기업분담금 중 대부분이 교직원의 복리후생비로 지출되는 현실은 사실상 공립 형태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코앞에 있는 학교를 두고도 4㎞ 떨어진 여천초등학교로 통학해야 하는 인근주민 자녀들의 불편과 안전상의 문제, 재단의 재정적 부담으로 인한 교육시설 투자미흡 및 교직원 순환정체로 경직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기인한 각종 조직내 문제 발생 등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현재의 사립학교 유지를 주장하는 입장은 여도학원만의 특화된 교육과정의 상실, 교직원의 잦은 교체와 非산단자녀 유입에 따른 학업수준 저하, 그리고 기존에 유지돼온 여수산단 기업의 통학차량 등의 편의 혜택 소멸 등을 들어 공립화 전환에 반대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국악관현악단 등은 여도학원 설립당시인 1980년대에는 여타 공립학교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교육 내용이었지만 현재는 여수지역 내 공립학교에서도 이루어지는 것들로 여도학원만의 특화된 교육과정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간 언론에서 무수히 지적해온 바처럼 걸어서 10분 거리도 안되는 여도학원에 입학하지 못한 400여명의 인근 자녀들이 줄을 서서 통학버스를 타고 위험천만한 원거리 통학을 하고 있는 불편하고 위험한 현실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또한 2022년 실시된 ‘여도학원 공무직 대상 조직진단’ 설문결과를 보면 직장내 괴롭힘 경험이 88%, 성희롱경험은 5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조직문화 관련해서도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로 고통받는다는 응답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과관계를 혼동하는데서 오는 일종의 착시가 여기서도 발견된다.

사립학교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알려진 호주의 ‘호주교육연구원’ (Australian Educational Researcher)은 2023년 수리능력 시험에서 공립과 사립학교 재학생 간의 ‘학업성과 차이’를 조사했다.

연구결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의 차이는 사립이냐 공립이냐가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즉 부모의 교육수준,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도, 경제력이 학업성과의 차이를 낳는 직접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리더를 키우는 대학’을 모토로 삼는 하버드는 SAT뿐만 아니라 출신지, 가족의 평균소득, 학생의 경험 등을 검토해 ‘성장가능성’을 기준으로 입학을 결정한다고 한다. “엘리트만 있는 환경에서는 리더가 나오지 않는다”는 하버드입학사정관의 말은 우리나라의 일점집중형 교육경쟁체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여도학원 공립전환을 둘러싼 갈등의 이면에 존재하는 중산층의 욕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얻을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이득 때문에 갈등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너무 소모적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지방소멸·청년인구 유출이라는 지역사회의 큰 위기 앞에 작은 기득권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지금이다. 또한 그러한 용기가 바로 우리가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교육일 것이며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