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은 파리에서 TGV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남동부의 중심 도시로, 가장 프랑스다운 정취를 간직한 도시이다. 골족(Gaules)이 남긴 유적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지만 견직물과 카뉘(견직물공장 노동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도시이다. 반면에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어린왕자’의 저자인 생텍쥐페리(Saint-Exupery)가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다.

사자(Lion)를 상징물로 내세운 리옹은 갈리아족의 신 루구스(Lugus)에 기원을 둔다. 로마시대에 루그두눔(Lugdunum)으로 불렸던 리옹은 로마가 갈리아에 건설한 속주(Provincia), ‘Gallia Lugdunensis’의 수도였고 로마제국이 서유럽 속주를 관장하던 시기의 중심 도시였다.

‘ONLY-LYON’이란 슬로건을 실천하는 도시! 세계 제일의 미식도시(Capital of Gastronomy), 세계 유일의 빛의 도시(Ville de Lumiere)를 추구하는 리옹은 광주의 모델이기도 하다.

도시는 론강(Rhone)과 손강(Saone)이 합류하는 곳(Confluence)까지 발달한 긴 반도, 프레스킬(Presqu‘ile)에서 시작했다. 반도의 중심부에 만들어진 벨 쿠르 광장(Place BelleCour)은 도시의 중심이다. 한 블럭 아래의 역(Gare de Lyon-Perrache)은 교통의 중심지이다. 반도의 끝에 개관한 미술관(Musee des Confluences)은 세계 예술을 선도하는 곳이 됐다.

공화국 거리(Rue de la Republique)에서 펼쳐진 아치형 빛 터널.

벨 쿠르 광장 북쪽으로 시청에 이르는 길은 리옹 빛 축제가 벌어지는 주 무대다. 자코벵 광장의 분수(Fontaine des Jacobins)와 테로 광장(Place des Terreaux)의 바르톨디 분수(Fontaine Bartholdi)에서 뿜어내는 미디어아트 향연은 가히 세계적이다. 주변의 시청과 오페라극장의 미디어아트 역시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미디어아트로 ‘어린왕자’를 공연하는 도시가 리옹이다.

벨 쿠르 광장(Place Bellecour)의 루이 14세(LOUIS XIV)의 동상과 대관람차(Ferris Wheel)를 배경으로 진행된 미디어아트 쇼.

시청에서 크루와 루스(Croix Rousse) 언덕을 넘어가면 카뉘의 벽(Mur des Canuts)에 이른다. 벽화로 단장된 건물을 보면서 리옹을 대표했던 견직물 생산에 땀을 흘린 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벨 쿠르 광장에서 손강을 건너면 푸르비에 언덕(Fourviere Hill)과 고대 리옹(Vieux Lyon) 지역이다. 이곳은 리옹이 간직한 중세의 흔적을 느끼고 리옹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작은 언덕을 배경으로 기원전에 고대극장(Ancient Theatre of Fourviere)이 지어졌다. 리옹 성당(Cathedrale Saint-Jean)과 푸르비에 성당(La Basilique Notre Dame de Fourviere)은 리옹을 지키는 수호성당이다.

생장 광장(Place Saint Jean)과 생장거리(Rue Saint Jean)가 만나는 곳.

부숑(Bouchon)이라 불리는 전통 식당이 즐비한 고대 리옹 지역은 리옹 식도락의 중심지이다. 반도의 좌측을 흐르는 론강을 건너면 대학과 주거지역이 이어진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역사문화도시 리옹은 빛 축제(Fete des Lumieres)를 개최하며 문화·예술·과학이 융합된 미디어아트 도시를 선언했다.

매년 12월8일 시작하는 빛 축제는 역사, 문화, 예술, 과학, 산업이 어울린 축제로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네트워크(UCCN)에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리옹은 다시 환한 빛으로 빛난다.

약 30년 전 시작된 조명 계획(2018년 제정)에 따라 리옹의 350여 개 건축물과 관광지는 아름다운 빛을 발산한다.

푸르비에 언덕의 푸르비에 노트르담 성당은 19세기부터 리옹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찬란한 빛을 발산한다. 이곳은 매년 개최되는 리옹 빛 축제의 개회식 장소이며 리옹의 실루엣이다.

인터컨티넨탈 호텔(InterContinental Lyon)을 배경으로 한 손강의 야경

이 성당은 빛 축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빛깔의 조명을 선사한다. 언덕에서 바라본 론강의 조명과 손강의 조명은 환상적이지만 서로 다른 느낌이다.

론강에는 론강의 시원인 빙하를 나타내는 백색을 비춘다면 손강에는 손강이 흐르는 충적토의 색깔인 노란색을 비춘다. 이들과 어울린 푸르비에 성당의 빛을 보면 리옹을 빛의 도시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된다.

생장성당 미디어 파사드

리옹이 미디어아트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리옹을 대표하는 것은 음식이다.

고대 리옹 지역의 부숑(Bouchon Restaurant)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은 가히 일품이다. 이곳의 전통 요리는 노동자들과 애환을 같이한 음식이 많은데, 타블리에 드 사푀르(Tablier de Sapeur), 끄렐 드 부로쉐(Quenelles de Brochet), 세르벨 드 카뉘(Cervelle de Canut) 등이 유명하다. 세르벨 드 카뉘(Cervelle de Canut)를 해석하면 ‘견직물 노동자의 두뇌’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 치즈(Fromage blanc)를 기본으로 올리브 오일, 소금, 허브, 후추, 양파, 식초 등을 녹여 만든 요리로 빵이나 쿠키에 발라 먹는다. 이 음식은 19세기에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들이 간편하고 푸짐한 식사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기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부숑(리옹전통식당) 원조를 표시하는 로고

부숑을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는 마숑(Machon lyonnais)이다. 마숑은 리옹의 전통 아침 식사로 19세기 크루아 루스에 거주하던 비단 방직공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밤샘 작업을 마친 노동자들은 돼지고기 요리와 보졸레(Beaujolais) 또는 마콩(Macon)산 와인으로 허기를 채웠다. 오늘날 마숑 전문식당은 리옹의 전통의상을 입은 꼭두각시, ‘그나프롱’(Gnafron)을 내세워 자신의 전문성을 표현한다.

리옹이 세계적인 맛의 도시가 된 것은 자연환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알프스에서 발원하는 깨끗하고 풍부한 물과 산과 바다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이 모여드는 리옹은 미식 수도(Capital Gastronomique)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골의 수도였던 리옹은 와인 무역을 독점하고 아프리카나 스페인으로부터 향신료를 수입할 수 있었다. 리옹의 음식은 오랜 역사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이승권·조선대학교 대학원 문화학과 교수

1935년 프랑스 음식평론가 커논스키(Curnonsky)는 리옹을 세계의 음식수도(Lyon, the World Capital of Gastronomy)로 규정했다. 현대의 가장 유명한 음식 장인, 프랑스 미식의 아버지, 폴 보퀴즈(Paul Bocuse)가 이곳 출신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이력은 리옹 근교의 콜롱주 오 몽도르(Collonges-au-Mont-d’Or)에서 시작됐다.

보퀴즈는 프랑스 전통요리와 오트 퀴진(haute cuisine), 분자요리(Molecular Gastronomy)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요리를 선보여 세계적인 요리사가 됐다.

리옹을 살펴보면서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를 선언한 광주! 맛의 도시를 자처하는 광주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산업과 연계된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생활 속의 미식도시! 아시아와 함께 하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시민이 행복한 문화도시! 우리는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이승권·조선대학교 대학원 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