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16)박형선
“세상 변혁 위해 함께 고민하며 활동했던 민주투사 ‘거점’”
조직운동 시절 ‘농민운동’ 한 축…‘함평 고구마 사건’ 투쟁
세상 바꾸지 못한 회한 커…“봉심정 70-80년대 운동 기지”
2022. 09. 21(수) 21:23 가+가-

박형선(72)씨는 1971년 봉심정의 관리자 김정길과 만나 청년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전개된 조직운동에서 그는 ‘농민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안재영 기자

“세상을 바꿔보자는 꿈을 안고 올라갔는데, 쉽게 변하지 않더라고. 그 때의 회한(悔恨)을 봉심정에 묻어두고 내려왔지.”

‘교련교육 강화방침’이 발표된 1971년. 청년 박형선(72·현재)과 김정길은 전남대학교 학생동아리 ‘민족사연구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민족사연구회는 광주일고 ‘향토방’ 출신을 중심으로 형성돼 ‘교련반대’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박형선의 불같은 의지를 확인한 김정길은 그를 ‘봉심정’으로 인도했다.

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이었던 봉심정과 박형선의 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곳에서 박씨는 모인 민주투사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며 끊임없이 고뇌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강과 김남주의 손을 거쳐 탄생한 반유신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이다.

지하신문들은 1972년 12월과 1973년 3월 광주의 여러 대학과 고등학교 등에 살포(함성지 사건)됐다.

그러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이 전국 청년 1천24명을 잡아들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이 발발하면서 봉심정의 많은 민주투사들이 재판을 받고 입감되거나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다.

박형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유인물을 배포했던 그는 김정길, 이강, 윤한봉 등과 함께 ‘긴급조치 4호’에 따른 긴급조치위반 및 내란 예비음모 등의 죄목으로 실형을 살게 됐다. 다행히 1975년 국내·외에서 들끓는 비판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대통령 특별조치를 발표해 관계자 대부분 당해 1-2월 석방됐다.

그러나 수감생활로 민주투사들의 심신은 상한 상태였고, 운동권의 힘 역시 크게 떨어졌다.

때문에 김정길과 윤한봉은 투사들에게 청년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조직운동을 펼쳐 동력 회복과 함께 사회 각 층에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을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인 박형선은 1976년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가 ‘가톨릭 농민회’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농민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해 함평 농협 측이 고구마 농사를 짓던 농가를 농간(함평 고구마 사건)한 사실이 알려지자, 박형선을 비롯한 농민운동 활동가들은 총력 대응에 나섰다.

당시 함평군 농협은 농민들에게 시중보다 높은 가격으로 고구마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농협의 약속에 함평 농가 약 7천곳은 농사에 몰두해 전년보다 25%가량 높은 수확량을 달성했다.

그러나 농협이 당초 약속과 달리 전량이 아닌, 40%만 구입해 모처럼 많이 생산된 고구마들은 썩어갔고, 농민들의 마음도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농민들은 사회운동가들과 연대해 농협의 방해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피해를 조사했다.

이후 운동가들은 파악된 피해액을 농협에 제출, 보상을 요구했으나 농협은 수수방관했다.

농협의 이 같은 작태에 농민들은 분개했고,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함평 고구마 사건’을 전국대의원대회 특별의제로 올려 ‘전국대책위원회’가 설립됐다.

전국대책위원회의 대규모 집회 계획에 따라 1978년 4월24일 피해농민과 가톨릭농민 회원 농민·사회운동가 등 700여명은 광주 북동천주교회에 모였다. 이들 중 일부는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4월27일 당시 정부인사와 전남도지사 등이 수습을 위해 대책위원회를 만났고, 결국 농협이 농민들에게 309만원을 전달하면서 ‘함평 고구마 사건’은 20개월 간의 투쟁 끝에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그 해 박형선은 건강상의 이유로 농민운동 일선에서 물러나고, 투사들의 활동 자금 마련에 힘을 쏟았다.

박씨는 “농민운동에 몸담았던 시절 국민 대부분이 농민이었지만 이들의 권익 수준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며 “농업·농촌·농민 세가지가 변화하지 않고선 우리나라의 민주화나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농민권익 향상·보장’과 ‘농민 수탈 구조 개선’을 위한 활동들을 펼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광주로 올라갔고 민주화를 외쳤다는 이유로 상무대 영창에 수감됐다.

영창에서 나온 뒤 박씨는 김정길과 함께 마지막으로 봉심정을 찾았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는 깊은 회환을 그곳에 묻어두고 나왔다고 구술했다.

박씨는 “봉심정에서 바라봤던 무등산이 참 좋았다”며 “그러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활동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참 아쉽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봉심정은 많은 민주투사들이 모여 세상의 변혁을 위해 함께 논의했던 의미있는 장소”라며 “카프카 서점과 현대문화 연구소, 광주 YWCA와 더불어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이라 평가했다.

/안재영 기자
안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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