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77주년 특별인터뷰]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항일운동 중심지서 쓰인 민족정신 기반 작품 조명”
항일학생운동 주역 시편, 80여년 만에 발굴
국경과 시공 초월…문학 텍스트적 가치 풍부
2022. 08. 11(목) 20:12 가+가-
광복 77주년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나주 출신 저항시인이 발굴되고 있다. 3·1독립운동, 6·10만세운동과 더불어 3대 독립운동 중 하나로 일컫는 광주학생운동에 앞장서며 시를 쓴 시인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 민족운동을 펼치며 시문활동을 통해 독립 열망을 새긴 이 고장 출신 민족 저항시인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것. 한일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제강점기 한일문학의 진보적 소통과 가교역할에 나서 이들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를 지난 4일 연구실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요즘 학생독립운동과 저항시인을 주목하고 있는데, 그 배경은?

지난해 일본에서 간행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조선시인 독립과 저항의 노래’에 대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폭의 재해로 땅과 생명과 평화를 빼앗긴 상황을 일제강점기 조선의 상황과 비교하는 일본 현지의 분위기에 공감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지난 5월14일 이석성(본명 이창신, 1914-1948)의 고장이자 학생운동의 발상지인 나주에서 한일심포지엄이 열리게 됐고, 주어진 테마가 ‘독립정신 추구한 나주지역 시인-문학과 의의’였다. 이석성의 출현에 대한 보고를 겸하는 목적이기도 했지만, 나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에 앞장서며 시를 쓴 시인들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고 깨달은 계기가 됐다.

이석성 시인이 1932년에 쓴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 2페이지



▲지난 한일심포지엄을 통해 식민지기 나주출신 저항시인 이석성과 정우채(1911-1989)가 새롭게 주목받고, 박준채(1914-2001)의 시도 31편 발굴돼 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 대해 소개해달라.

박준채와 이석성은 일본유학을 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의 한복판인 도쿄에서 침략주의가 노골화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이석성은 1929년 나주학생독립운동에 앞장선 일로 정학을 당하고 법정에 서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자유와 자치(독립) 실행의 꿈을 키우기 위해 서구에서 들어온 아나키즘 서적 등을 읽고, 신채호 선생처럼 아나키즘을 민족 해방을 위한 실천적 이론으로 수용해 격렬한 시를 집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에는 나주지역에서의 일제의 침략행위와 수탈 현장을 고발한 ‘제방공사’라는 프롤레타리아 소설을 발표했다. 또 1년 후에도 ‘홍수 전후’라는 현실극복 의지를 담은 치열한 작품을 남겼으니, 그는 활동과 작품을 통해 오로지 민족주체성 회복을 향한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알려지지는 않고 있으나 일본유학 생활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박준채 시인이 1935년 도쿄에서 집필한 ‘암투’ 원고 앞부분


박준채는 1929년 나주통학 사건의 장본인이자 학생운동에 불씨를 지핀 이로 알려졌는데, 그가 10여 년 장르를 구분해 여러 주제를 시적 대상으로 삼아 시를 창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1929년 말에 학생운동의 나날을 회고하며 집필한 시나 와세다대학 유학 시절 도쿄에서 집필한 항일적 저항시는 그의 역사적 위상으로 보아도 논의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우채는 광주고보 시절 최연소자로 성진회에 입회해 왕재일·장재성 등과 독립운동 펼친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다. 1927년 조선일보 학생 문단에 ‘단결하자’라는 시를 발표해 모든 학생, 청년들에게 민족 독립을 위해 손을 맞잡고 큰 바다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민족운동을 펼치던 중 친동생이 도쿄에서 반제 동맹사건에 연류돼 투옥 생활 중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쿄로 들어가서 정우채 역시 반제운동을 펼친다. 그러다가 위중한 동생을 데리고 귀향했으나 그런 활동 등으로 인해 옥고를 치뤘다는 기록도 있다. 성진회 사건으로 광주형무소에서 대구형무소로 이감돼 옥중에서 쓴 ‘옥중시’, 그리고 1936년 호남평론에 발표한 ‘병자년’이라는 시에도 그의 독립 정신이 담겨 있다.

정우채 시인이 1936년 호남평론에 발표한 ‘병자년’


이들 나주 출신 저항 시인도 제국주의 현장의 체험을 통해 민족주체성 회복의 필연성을 더욱 깨달았다. 일본유학을 하면서 일본 현지 생활을 민족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이론적 학습의 장으로 삼은 이육사, 윤동주 등 6인의 지향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시문을 쓴 나주 출신 시인들의 시 발굴 의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며 보편성을 지닌다고 이야기했다. 역사적 현상만을 중시하고 문학을 도외시하는 이들에게 인간 내면 탐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언급일 것이다.

국권이 일제에 넘어가던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사건 바로 직후 대한매일신보 주필 신채호 선생은 ‘천희당시화’(11월초-12월)라는 시론을 발표했다.

“시(詩)란 것은 국민 언어의 정화(精華)다. 그러므로 강인한 국민은 그 시부터 강인하며, 글만 받들어 나약한 국민은 그 시부터 문약(文弱)하니, 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강성해지는 것은 대개 그 나라의 시에서 가능할 수 있으며, 그 나라의 문약을 돌이켜 강무(强武)해지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그 문약한 나라의 시부터 개량할지라. ……시가 열렬하고 호탕하면 전국이 그러할 것이며, 시가 음탕하면 전국이 음탕할 지며, 그 시가 유약하면 전국이 유약……” (임중빈, ‘단재 신채호 일대기’에서, ‘천희당시화’의 신채호작 확정은 김주현)

이러한 단재의 시 정신을 잘 구현한 예를 위에서 언급한 대표적 저항시인 6인뿐 아니라 3인의 나주 출신의 시인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암울한 시대였다. 문학이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 산물이니 시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준채의 시편 모음 원고를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한일심포지엄 발표 테마가 이석성과 정우채 관련 내용이어서 그 준비로 여념이 없을 때였다. 박준채의 시편 모음 원고 사진이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사무국장을 통해 메일로 도착한 것이 지난 3월31일이다. 기념관의 리명한 이사장(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장)으로부터 권유도 있었고, 일제강점기 나주 출신 시인에 대해서 논할 계획이니, 2010년 기증된 박준채 시편 모음 원고 노트도 연구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언뜻 확인한 순간 심상치 않은 내용이라는 느낌을 받은 게 사실이다. 목차에 제목이 적힌 작품만 40편이다. 박준채가 시 장르를 세밀히 구분, 모든 작품 뒤에 집필한 시기를 명시하고 개작한 흔적이 있으며, 목차에 가지런히 정리한 것으로 보아 언젠가는 잡지에 발표하거나 공개할 의향도 있었던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석성, 정우채를 정리해 발표하기에도 벅찬 입장이라 정독하는 것은 미뤘지만 계속 원고 내용과 필체를 확인해 확증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릴 수 없었다.


▲정우채, 박준채, 이석성과 학생운동의 관련성에 대해 설명해달라.

정우채는 나주 근대시의 효시라고 불릴 정도로 일찍 학생문단에 데뷔했다. 나이도 석성이나 준채보다 세 살 위다. 학창 시절부터 시창작에 열의를 보였으니 그의 문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광주고보 시절 송홍 선생에게 사사해 투철한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시를 쓴다. 선배인 왕재일의 추천으로 성진회에 가입해 장재성, 왕제일 등과 함께 사회과학서적을 윤독, 학생운동을 병행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시를 집필했다.

한편 박준채는 1929년 10월30일 나주역에서 사촌누이 박기옥을 희롱하는 후쿠다 슈조에게 울분을 토해내 거대한 항일운동으로 점화되는 데 불씨를 제공한 당사자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당하고 학업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시 서울 양정고보 3학년에 보결 입학해 수학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몇몇 시편을 통해 그가 해방 전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독립 의지를 불태웠음을 알 수 있다.

이석성은 나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한일학생들의 충돌이 광주를 비롯한 각 지역으로 번져나갈 즈음인 1929년 11월27일 그에 호응해 나주 신간회의 간부들과 나주농업보습학교의 유찬옥, 홍민우 등과 함께 나주시장에서 시위를 주도했으며, 1930년 2월10일 2차 시위 때도 나주에서 학생들의 선두에 서서 학생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민족정신과 실천 운동이 그 이후의 시와 작품에 선명히 드러난다.

세 사람은 동향 출신이고 동시대적 인물이다. 당시 학생운동과 관련해 각기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문학 활동, 학생운동을 펼쳤다. 암울한 시대에 깨인 조선인으로서 주체성 삶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서 공통분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발굴과 관련 연구로 어떤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들은 해외에서도 ‘별’로 묘사되고 있고 국경과 이념을 초월해 통시적, 공시적 시점에서 논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속칭 K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운동의 발상지인 이 고장 출신 일제강점기의 작품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항일운동의 중심지에서 쓰인 민족정신에 기반을 둔 작품이니 그것은 이 고장만의 유산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 장소로부터의 문화적 발신은, 국내뿐만 아니라 한일의 시점에서 보아도 매우 중요하고 탈식민주의의 공동체 형성에 의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일 간에는 미청산 과제가 산적해 있다. 보편성을 지니는 소통의 매개체로 어느 곳에서나 인간의 마음을 노크하는 시의 가치를 널리 공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리라 본다. 대표적 저항시인들과 함께 학생운동에 앞장선 저항시인을 함께 묶는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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