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남해 바래길 11코스(남파랑길 43코스)
남해의 5월, ‘봄의 왈츠’를 추다
2022. 05. 03(화) 19:57 가+가-

남해 가천다랭이논에 유채꽃이 노랗게 피었다. 밝은 봄 햇살에 노란 유채꽃이 영롱하게 빛난다. 다랭이논 아래로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출렁인다.

남해의 봄빛이 눈부시다. 연둣빛 신록과 노란 유채꽃이 푸른 바다위에서 우아하게 춤을 춘다. 얼마 전까지도 화사함을 뽐내던 벚꽃은 이제 녹색 잎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울긋불긋한 해변마을 지붕들도 봄빛에 산뜻해졌다. 남해는 언제 가도 좋지만 나에게는 신록이 산색을 바꾸고 벚꽃과 유채꽃 피는 봄철이 가장 좋다.

남해 바래길 11코스 출발지인 가천다랭이마을로 들어선다. 설흘산 자락 가파른 산비탈을 일궈 만들어진 다랭이논은 마을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설흘산 자락 가파른 산비탈을 일궈 만들어진 다랭이논은 마을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가파른 경사지 계단식 논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쟁기로 논을 갈고 지게를 이용해 거름이나 수확물을 옮겨야했다.


가파른 경사지 계단식 논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쟁기로 논을 갈고 지게를 이용해 거름이나 수확물을 옮겨야했다. 남해 바래길 11코스에 ‘다랭이지겟길’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천다랭이논에 유채꽃이 노랗게 피었다.

밝은 봄 햇살에 노란 유채꽃이 영롱하게 빛난다. 다랭이논 아래로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출렁인다. 다랭이논 주변에 계단식으로 집을 지어 마을을 이룬 가천마을도 연두색으로 물든 설흘산과 유채꽃에 감싸여 또 하나의 꽃이 됐다.

가천다랭이마을을 출발해 푸른 바다를 벗 삼아 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가 화사하게 핀 유채꽃밭을 다시 만난다.

유채꽃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에메랄드빛 바다와 여수의 돌산도, 금오도 같은 섬들을 바라본다.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봄의 왈츠’를 춘다. 꽃밭 속에 있는 사람들은 우아한 무희가 된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을 걷는다. 숲속에서는 각시붓꽃, 개벌꽃 같은 야생화가 우아하게 꽃을 피웠다. 산길을 벗어나 임도를 걸으며 바로 아래 도로를 내려다본다. 해변을 따라 구불구불 달려가는 도로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유연하다. 멀리서 달려온 파도가 해변 바위와 만나면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임도를 벗어나자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서 빛담촌이라는 펜션마을이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도로를 건너 향촌마을로 내려선다. 향촌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가천다랭이마을에 비해 한적한 어촌마을이다.

향촌마을 앞 해변은 몽돌밭을 이루고 있다.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몽돌끼리 부딪히면서 맑은 소리를 내어 자연음악이 연주된다.


향촌마을 앞 해변은 몽돌밭을 이루고 있다. 몽돌해변은 향촌마을에서 선구마을까지 1㎞ 정도 길이로 휘돌아간다.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몽돌끼리 부딪히면서 맑은 소리를 내어 자연음악이 연주된다.

항촌마을에서 본 타원형 몽돌해변과 해변 경사지에 계단식으로 집을 지은 선구마을 가옥모습이 아기자기하고 정답다. 바다 건너 여수의 산과 건물까지 남해의 풍경미를 더해주는 데 한몫을 한다. 몽돌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걷는데 파도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파도의 고요한 속삭임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선구마을 지붕들이 봄 햇살에 빨갛고 파란 꽃처럼 빛난다. 선구마을 가옥들은 남쪽으로 몽돌해변과 향촌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선구마을 지붕들이 봄 햇살에 빨갛고 파란 꽃처럼 빛난다. 선구마을 가옥들은 남쪽으로 몽돌해변과 향촌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선구보건진료소 앞을 지나 밭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니 390년 된 팽나무 당산나무 일곱 그루가 선구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선구마을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이 당산나무 아래에서는 매년 음력 보름날 당산제와 줄끗기놀이를 한다.

‘선구줄끗기’는 2015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선구줄끗기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남해지방의 전통 민속놀이다.

선구당산나무를 지나자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새로운 화면으로 바뀐다. 그동안 보여줬던 향촌 선구해변이 사라지고 사촌마을과 사촌해변이 새로이 등장한다. 바래길 11코스를 걷다보면 이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해변과 예쁜 해변마을들을 만날 수 있다.

사촌마을은 뒤쪽에 시루봉이 뾰족하게 솟아있고, 앞쪽으로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여수반도가 펼쳐진다. 사촌마을은 말 그대로 모래해변이 있는 마을이다.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향촌 선구해변은 몽돌해변이고, 사촌해변은 부드러운 모래해변이다. 사촌해변은 백사장 길이 650m로 오붓한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에는 울창한 솔숲이 함께 한다.

길은 해변을 따라 가다가 임도 걷기를 반복한다. 곳곳에 작은 몽돌해변이나 모래해변이 숨어 있고, 파도가 밀려와 해변바위에 부딪치기도 한다. 임도를 걸을 때는 주변 밭과 푸른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조금 전 지나온 사촌해변과 가천마을 향촌마을도 아기자기하게 다가온다.

밭길이 해변으로 나아갈 때는 마치 바다로 걸어가는 느낌이다. 유구방파제에 가까워지자 북쪽 멀리 남해군에서 가장 높은 망운산(784.9m)이 우뚝 서 있고, 그 앞으로 바래길 12코스가 지나는 천황산 임도가 곡선으로 바라보인다. 유구방파제 앞 바다에는 죽도라고 하는 작은 섬이 떠 있어 방파제를 외롭지 않게 해준다.

유구방파제 옆 해변은 조그마한 갯벌을 이루고 있다. 물 빠진 갯벌에서 바지락을 잡고 있는 주민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유구방파제 옆 해변은 조그마한 갯벌을 이루고 있다. 물 빠진 갯벌에서 바지락을 잡고 있는 주민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남해 토속어로 ‘바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래’는 척박한 환경에서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고 물때에 맞춰 갯벌과 갯바위 등에서 해조류와 해산물을 캐는 행위를 뜻하는 남해사람들의 토속어다. 남해 바래길은 남해의 토속어 ‘바래’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죽도 뒤로 펼쳐지는 여수만과 여수반도 돌산도가 남해도의 오후를 나른하지 않게 해준다. 오후 햇살이 바다 위에 윤슬을 만들어 은빛으로 반짝인다. 몇 시간 후 일몰 때가 되면 여수반도를 넘어가는 태양이 여수만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해변 언덕 위 밭길을 따라 평산항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쌓은 500m에 이르는 조그마한 평산진성이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평산진성의 돌들은 마을 안길이나 바닷가 축대 받침돌로 뜯겨나가 지금은 형체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는 장군당이라는 작은 사당이 왜구와 싸우던 먼 옛날의 흔적을 되새기고 있을 뿐이다. 장군당 안에는 평산진성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했던 돌벅수 1기가 모셔져 있다.

평산항 입구에 자리한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


평산항 입구에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이 있다. 미술관은 옛 평산보건진료소를 개조해 사용한다. 지금도 ‘평산보건진료소’ 간판이 한쪽 벽에 그대로 걸려있다.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작은 미술관이다. 보건진료소로 사용되던 공간이라 전시실도 다른 미술관에 비해 비좁은 편이다. 어쩌면 조그마한 항구마을에 어울리는 크기의 미술관인지도 모른다. 규모는 작지만 1년 내내 전시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단다. 오늘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는 봄을 대표하는 벚꽃·유채를 포함한 다양한 남해 풍경이 담겨있다. 그림을 감상하며 남해가 마련해준 ‘봄의 왈츠’와 동행한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남해 바래길 11코스는 고개를 넘을 때마다 다른 풍경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해변과 예쁜 바닷가마을을 정답게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코스 : 가천다랭이마을→빛담촌→향촌해변→선구보건소→사촌해변→유구방파제→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평산항)
※거리, 소요시간 : 13.6㎞, 5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주소 : 가천다랭이마을(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 702)
많이 본 뉴스
  1. 1
    광주 기초의회 의장 선거 물밑경쟁 치열

    7월 초 광주지역 기초의회 원 구성을 앞두고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26일 지역 정가에 …

    #정치
  2. 2
    농축산물값 무서운 ‘고공행진’

    재배 면적 감소와 봄철 가뭄 등의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경제
  3. 3
    체험학습 떠난 일가족 3명 연락두절 장기화

    교외체험학습을 떠난 일가족이 연락 두절돼 경찰이 소재파악에 나섰다. 26일 광주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사회
  4. 4
    道, ‘원숭이두창’ 비상 방역대응체계 돌입

    전남도는 26일 “최근 국내 첫 원숭이두창 확진자가 발생해 지역사회 유입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지역방역대책…

    #정치
  5. 5
    “우리는 한 뿌리” 광주·전남 상생 모드 주목

    6·1지방선거 기간 광주·전남 상생을 강조했던 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자와 김영록 전남지사가 민선 8기 출범을 …

    #정치
  6. 6
    쌀값 하락 폭 45년 만에 최대치…3차 시장격리 절실

    쌀값 하락 폭이 4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3차 시장격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

    #정치
  7. 7
    코로나 격리자 생활지원비 218억 지원

    전남도는 26일 “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 의무를 지속함에 따라 입원격리자 생활지원비 218억원을 긴급 …

    #정치
  8. 8
    민노총 광주본부 “사용자측 최저임금 동결 철회하라”

    민주노총 광주본부가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측의 2023년 최저임금 동결 주장을 규탄하고 나섰다. 민주…

    #사회
  9. 9
    2호선, 27일부터 상무중앙로 추가 공사

    광주시 도시철도건설본부는 26일 “도시철도2호선의 상무중앙로(북동신협→팔복빌딩 방향) 추가 공사를 27일부터…

    #정치
  10. 10
    양향자, 반도체특위 위원장직 수락

    무소속 양향자 국회의원(광주 서을)은 26일 “국민의힘이 제안한 반도체특위 위원장직을 맡겠다”고 밝혔다.…

    #정치

기사 목록

광주매일신문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