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천제단 산신제 / 수필 이윤수
2022. 01. 17(월) 19:50 가+가-
국립공원 무등산(2013년 지정)은 대도시를 품고 있는 명산으로 광주광역시 150만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민과 외지 관광객 너나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산행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의 품속에 스며들어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치유하는 보람을 느껴본다.

정유년 정월 벽두 붉은 닭이 새벽 찬 공기에 훼를 칠 때, 산신제를 모시기 위해 종심(從心)을 넘어 희수(喜壽)를 넘나드는 친구들과 산행을 한다.

정유년! 우리나라의 새로운 여명을 열어 가야 할 다사다난한 해가 아닌가!

“가보세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거리다… 병신되리……” 라는 주술적 참요(讖謠)가, 의미심장한 하 많은 과오를 벗어버리고 새 세상을 맞이하라고 예언하는 듯하다. 병신년 가을과 겨울의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서, 횃불처럼 타올랐던 촛불집회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백만 함성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단기 4350년 정초에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무등산 천제단에 오른다.

산신제(山神祭)는 고대 신화에서 ‘단군이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이 되었다’는 오래된 고유 신앙에서 출발한다. 산신제는 시산제(始山祭)와 혼용하기도 하는데 시산제는 일본식 용어라는 말이 있어서 산신제라 함이 어떨까 한다. 정초에 한반도의 명산인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의 삼신산에 산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산행을 좋아하는 등산객들은 누구든지 삼신산에 가는 대신 가까운 산에서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다행히 무등산에는 천제단이 있어, 등산 친구들은 주차장 근방 음식점에서 돼지고기와 술과 종이컵을 장만하여 산에 오른다. 증심교를 지나면 춘설원 계곡의 청아한 맑은 여울물 물소리가 졸졸 괄괄 쭈루룩 굽이쳐 흐르면서 줄곧 등산객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증심사 옆길은 뾰쪽한 바위와 돌부리가 무성한 시누대 사이의 비탈길이라서 발길을 더디게 한다. 주차장의 기점에서 의재 미술관과 춘설원을 지나 증심사 입구의 산길을 오른다. 이어서 봉황대와 봉황대 삼거리를 통과하여 백운암 터를 거쳐 천제단까지 약 3-4㎞의 오르막 산길을 오르면, 하늘 높이 솟은 청송과 잡목의 숲속에 조용히 숨어있는 아늑한 사각형 돌탑 제단에 이른다.

늘 철마다 다르게 치장하는 산 경치와 산 내음이 등산객들의 발길을 무등산으로 이끈다.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 철쭉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신록의 싱싱함을 눈으로 맛보기도 하거니와, 가을이면 낙엽의 고운 자태를 완상하며 걷는 길이다. 또 겨울이면 백설과 상고대가 신묘한 절경을 보여주는데, 금년은 지구 온난화 현상인가 백설다운 눈꽃을 보지 못하고, 고요를 깨트리는 산새 소리 속에 친구들과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는다.

천제단은 해발 470m로 무등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남쪽으로 건너편에 새인봉이 천제단을 향하여 군신의 예를 올리는 형상이 신묘하다. 돌탑은 사방 2-3m 높이 2m로 그냥 허투루 쌓은 사각뿔 형태에서 중간을 자른 모양새로 남아있다. 신라 시대에는 국태민안을 기원하거나 기우제, 기설제, 기청제를 지냈던 제단으로 상대, 중대, 하대로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삼한시대부터 묘향산, 구월산, 무등산 세 곳에 소사를 지냈으나 일제 강점기에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이 제단을 흔적조차 없이 허물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의제 허백련은 천제단을 신성시하여 이곳에 단군신전을 건립하려 1969년부터 기금을 마련해 ‘무등산 개천궁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으나, 그 후 일부 종교단체들이 단군성전 건립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산신제를 격식에 맞추어 지내려면 절차와 예법이 있지만, 일행은 약식으로 금년 산행의 안행을 비는 수준에서 간소하게 지냈다. 먼저 제단 앞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미리 준비해온 제수 음식인 돼지고기와 술을 따라놓고 연장자 헌관의 지시에 따라 모두 정렬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두 번 절을 한다. 제를 지내는 유교문화가 삶의 현장에서 자꾸 멀어져가는 현상일까? 유교식 제례 순서인 강신, 참신, 초헌, 독촉, 아헌, 종헌, 헌작, 음복, 소지 등의 순서가 날씨가 추운 탓도 있었으나 간소한 참배 한 가지로 끝맺는다. 산신에 올리는 절은 세 번이 원칙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1번(1은 陽이므로), 죽은 자에게는 2번(2는 陰이므로), 그리고 자연신(하늘과 땅과 그 중간을 다스리는 존재이므로) 또는 부처에게는 3번을 경배하는 것이 예법이다. 단 황제에게는 4번을 절해야 하는데 그것은 위에 열거한 모든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두가 관념과 형상화에 길들여진 인간들이 만들어낸 부질없는 예법이 아닐까?

아무튼 각자의 소망과 기원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막걸리를 음복하고 지나가는 젊은 뜨내기 등산객에게도 막걸리 한 잔을 권하고는 산신제에 얽힌 이야기와 예법을 잘 아는 양 몇 마디 떠벌리며 산신제를 마친다. 새벽 시간이 얼마쯤 지나 주위가 조금씩 밝아온다. 올라왔던 산길을 다시 내려온다. 건너편 동남쪽으로 우뚝 솟아있는 새인봉을 바라보면서 신묘한 자연의 산세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마치 임금님이 사용했다던 옥새 모양을 하고 있어 하늘이 도장을 찍는 형상이다.

이른바 헬조선과 오포시대의 다사다난했던 ‘국정농단은 내려오고 세월호의 진실은 올라오라’는 간절한 촛불 민심의 염원이 하늘에 닿아, 부정부패, 무능, 불통과 비선실세의 독선으로 엮어진 탄핵 정국을 넘어 밝은 민주국가의 광명을 찾으라는 하늘의 인장을 무등산에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구나 임인년 대선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해이다.

당산나무골과 청풍쉼터를 지나 약사사 아랫길로 내려오는 발걸음이 홀가분하다. 금년에는 모든 일이 잘되겠지? 하는 뿌듯함에서일까?

<이윤수 약력>
▲수필문학 수필 천료, 문학예술 시 등단
▲수필문학, 문학예술, 한국문협, 광주문협 회원
▲전남문협, 문학춘추, 광주수필, 호남시조문학 회원
▲수필집 : ‘자연으로의 사유(思惟)’, ‘소소한 그리움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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