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획
지역
사람들
오피니언
TV
기획
인터뷰
해양실크로드
문학마당
스타브랜드
창조클럽
역경강좌
장갑수

[문학마당] 그 파자마 수필 이연순

2019. 12.02. 21:11:45

그리움, 그것은 대상이 사라진 후라야 더욱 절실해지는 것인가?

부부나 연인 친구사이에도 사소한 연유로 등 돌려 헤어진 경우가 있다. 헤어진 후, 그 빈자리가 어느 사이 그리움으로 변해 있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손 내밀어 관계 회복을 할 수 없는 것이 부모님 떠난 빈자리의 그리움이요, 먼저 간 아내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나와 언니와 동생, 우리 세 자매가 어머님 모시고 국내 여행을 할 때다. 해인사에 들려 팔만대장경을 보러 올라가는데 어머니는 쉼터 의자에 앉으시며 우리들만 다녀오란다.

어머니에겐 대장경이 큰 관심거리도 되지 않을 것 같아 서둘러 구경을 하고 내려오는데 우리를 보자, 어서 오라 독촉하는 손짓이 예사롭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에 달려가 보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한 움큼 쏟아낼 듯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야릇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하게 서 계셨다. 여행 중 음식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화장실로 모시고 가서 씻기려는데 어머니의 팬티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하얀 모시메리 파자마를 껴입고 계셨다. 팬티와 파자마를 한꺼번에 버리고 뒤처리를 마치고 나니 어느 사이에 꺼내들었는지 쓰레기통에 있어야 할 파자마가 어머니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버리면 절대 안 된다는 듯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우리는 냄새 나니까 새것으로 사 드리겠다고 달래서, 말이 달랬지 셋이 빼앗다시피 해서 버렸다. 그때는 아버지의 파자마가 아까워서 그러신 줄만 알았다. 아버님 떠나신지가 언젠데 그 파자마를 아직도 가지고 계셨냐고 웃어넘길 때, 계곡 물소리에 섞인 어머니의 속울음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위가 되어 솔숲 어딘가에 박히고 있음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아무런 말도 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고 계셨다. 여행을 떠나 올 때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허탈한 표정과 쓸쓸해진 눈빛만 그윽하였다. 그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딸들은 그저 설사 때문이려니 했다.

그런지 3년 후,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같은 병실에 식물인간이 된 할머니가 계셨는데, 남편인 할아버지는 의식도 없는 아내 곁에 있고자 일부러 함께 입원까지 하셨다고 했다. 요양사들이 다녀간 뒤 할아버지는 애기를 돌보듯 꼼꼼하게도 보살핀다. 7년째라 하시니 사람목숨이 저렇게도 질긴 것인가? 모르긴 해도 본인이 원하는 삶은 아닐성싶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건너다보면서 얼마나 부러웠으면 다른 건 기억을 못하면서도 내가 가면 그분들의 이야기를 또박또박 전해 주셨다. 어머니를 통해서 노부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야 퍼뜩 여행 때의 일이 되살아났다. 해인사 화장실에 버리고 온 아버님의 파자마를 한사코 버리지 않으려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 파자마는 엄마에겐 정이요. 그리움이요. 아직도 깊은 강물처럼 어머니의 가슴속에 출렁이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으며 떠나버린 아버지의 진한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그때 우리는 읽어내지 못했었다.

새 옷 같은 상태로 보아 평상시에는 아끼느라 입지도 않고 장롱 속에 넣어 두고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슬며시 꺼내서 만져만 보고 다시 넣어 두었을 그 파자마! 그러다가 딸들이 여행을 권하자 아버님과 동행의 의미로 그 파자마를 껴입고 오셨던 것 같다.

준비해 온 영덕 대게를 숙소에서 먹을 때도 “맛있다. 느그 아버지랑 같이 먹었으면 얼마나 좋아 할끄나!” 그때도 아버지를 가장 먼저 떠올렸던 어머니다.

해인사를 빠져나올 때 노송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에 던지고 있던 그 처연한 어머니의 눈빛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파자마가 당신 곁에 있는 한, 어머니는 아버님과의 별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파자마를 첩첩산중 화장실에 버리고 떠나오면서 말할 수 없는 애통함으로 작별의 아픔을 대신했을 것이다.

생전, 아버님께 어머니는 언제나 어린애였다. 부부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반반이라고 하는데 아버지는 여덟을, 어머니는 둘 정도의 무게만 감당했다. 평생을 사랑만 받고 사셨기 때문에 아버님 사후에도 자식들한테 얄미울 만큼 당당했던 어머니다.

오빠나 올케, 동생 댁들의 눈치가 보여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조금 더 시간이 가면 기가 좀 사그라지겠지 했다. 그런 어머니도 언제부턴가 서서히 외로움으로 움츠러들더니 아버지의 사랑이 잊혀 질 즈음엔 눈에 띄게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3년6개월의 요양병원 생활을 끝으로 어머님 가신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유품으로 어머니를 기억하려고 유일하게 극세사 파자마 하나를 남겨 두었었다. 이걸 입을 때마다 어머님 손길처럼 살갑다. 살아계실 땐 덤덤했던 손길이, 떠나고 난 지금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리움이란 온기가 더해진 까닭이리라.

파자마의 고무줄이 희미해져가는 어머니의 존재처럼 느슨해졌다. 이 파자마는 잠옷이 아니라 내겐 어머님의 정이고 그리움이다. 제아무리 비싼 값을 치른다 해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살수 없는 옷이다.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다. 고무줄을 사다 갈아 끼웠더니 탄력이 새롭다. 어머님계실 때처럼.

꼭 주변에 자식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사랑하는 사람만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사람이 없는 곳만 무인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곳은 어디나 무인도다.’ 라고 했던가! 아버님이 곁에 안 계시는 곳은 아무리 많은 사람과 자식들이 있다 해도 어머니껜 무인도였을 것이다.

사랑보다 진한 게 정이라고 했다.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만 스며드는 그리움은 뼛속까지 젖는다. 그 모든 게 정 때문이다. 딸년들에게 빼앗겨버린 그 파자마는 어머님의 영혼을 외롭게 만들어 노환과 더불어 고독 사를 재촉하지 않았나 싶어 후회와 죄스러움만 가득하다.


이연순 프로필

▶‘수필문학’ 수필 등단(2004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입상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눈빛’

광주매일 TV

실시간 HOT 뉴스

가장 많이본 뉴스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