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언제나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재난 속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고 곁을 지켜준 한 사람의 손길이 다시 삶을 일으킵니다. 올해 7월과 8월 초, 광주 북구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는 그 진실을 다시금 일깨웠습니다. 단 몇 시간 만에 40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며 도로는 잠기고, 집은 물에 잠겼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대피소로 향해야 했고, 일상의 터전은 흔적 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것은 단지 구조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젖은 사진첩, 일터의 흔적, 아이의 책가방처럼 작지만 소중한 삶의 조각들이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 절망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다가간 것은 ‘제도’도 아니었고 ‘공공’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또 다른 이웃,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물에 젖은 집안으로 들어가 맨손으로 진흙을 퍼내고, 손수 따뜻한 밥을 지어 나르며, 낯선 이의 눈물을 말없이 감싸 안던 손길들. 그들은 스스로도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회복의 길을 여는 첫 주체였습니다. 자녀를 챙기며 다른 가족을 돌보던 엄마들, 연로한 부모를 업고 다닌 딸들,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도 이웃을 감싸 안으려 했던 이주 여성들. 그들은 누구보다 앞서 공동체를 회복시킨 주인공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광주 여성들의 용기이자 따뜻한 연대의 증거입니다.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홀몸 어르신, 한부모 가정, 이주민 가정, 1인 여성 가구 또한 결코 외면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었고, 고통을 나누며 연대의 울타리를 함께 만들어갔습니다. 우리는 팬데믹과 재난을 거치며 ‘돌봄’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돌봄은 무급이거나 저평가된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더 이상은 그래선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회복의 뉴노멀’을 준비할 때입니다. 재난 대응에 성인지적 관점을 도입하고, 골목 단위의 돌봄 공동체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법제화, 여성 참여 기반의 재난 대응 매뉴얼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코로나19 시기,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 정책은 수많은 가정에 실질적인 회복과 신뢰를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새롭게 출범할 ‘성평등가족부’는 그러한 돌봄 정책의 연속성과 공공책임을 제도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성평등은 단지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의 조건입니다.

돌봄은 개인의 헌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의 자산이며 미래를 여는 힘입니다.

비는 멈췄지만, 회복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 시작은 거창한 계획보다도, 곁에 선 한 사람의 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회복은 이미 함께 고통을 나누었던 그 마음에서부터 가능해집니다.

광주 북구의 여성들은 오늘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그 곁에 서 있습니다. 함께 울었던 그 마음으로, 우리는 반드시 함께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의 미래는 지금, 바로 그 손끝에서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