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남평주조장을 처음 본 순간, “와! 아름답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름답다.’ 비가 새고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주조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다. 그래도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아름답다’이다.

이상기후로 태풍과 국지성 호우가 잦을 거라는 장마철이다. 우선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 걱정이다. 이번 달로 설립 112년이 된 나주 남평주조장도 그중 하나다. 주조장 건축은 술 생산이 목적이었던 만큼 권위와 부의 상징이었던 여타의 근대건축물과는 달리 보존과 관리가 취약하다.

나주 남평주조장은 견뎌온 세월만큼 목제는 썩고 함석지붕은 녹슬어 비가 새는 중에도, 주조의 변화과정을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잘 남아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조사·발간한 ‘양조장과 술문화 조사보고서’(2019)는 나주 남평주조장이 현전하는 전국 주(양)조장 중 건물 원형과 유물이 가장 잘 보존돼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중 종업원들이 겪었던 애환과 갈등을 철펜과 잉크로 눌러쓴 편지글은 막걸리보다 더 텁텁한 여운을 준다.

1977년 전남에서 열린 제58회 전국체전을 앞두고, 각출할 기금액을 적시해 배포한 서슬 퍼런 명령서, 밀주 적발 목표량을 정해 하달한 문서는 어려웠던 시대상을 잘 말해준다. 나주 남평 사람들의 술 곳간 100년 술독, 하루에 4-5십 리는 거뜬히 달렸을 배달 자전거 등 자그마치 5천여 점에 이르는 유물은 그 자체로 박물관이자 한 편의 흑백영화다.

예부터 주조장은 술 소비가 많은 곳에서 성행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 나주평야에서 얼마나 많은 술이 생산·소비되었는지는 1970년대 나주세무서가 관할하던 나주, 영암, 함평, 무안에 무려 46개 소의 주조장이 있었음은 이를 잘 말해준다. 지금은 6개 소만 남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농업기계화, 농촌인구감소, 잦은 주류정책 변화, 삶의 질 향상은 지역 주조장 운영여건을 어렵게 했고 소비가 준 막걸리의 빈자리를 위스키, 와인, 소주, 맥주가 차지한 까닭이다. 그나마 운영 중인 주조장은 현대화된 체 옛 모습은 사라진 상태다.

현재 국가와 시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주조장은 전국에 7개소(경북·충북 각각 2개, 경기·충남·인천 각각 1개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남·북, 광주에는 단 한 곳도 없다. 대대로 노동력에 기반한 농업으로 영위해온 터라 질 좋은 술이 가장 많이 생산·소비됐던 곡창지대 호남에 보존할만한 주조장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나주 남평주조장을 주목해야 할 까닭이다.

문화유산보존은 가치재(價値財·merit goods)로 인식돼야 한다. 즉,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우리 모두의 과업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문화유산은 공공재인 것이다. ‘주조장의 주인은 미생물과 효모입니다. 이 작은 생명체는 영산강의 물안개, 나주 들판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나주 사람들의 체취로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남평주조장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사라질 위기에 있던 주조장을 살려보겠다고 2년 반 전에 귀향해 관리에 전념하고 있는 윤태석 씨의 말이다.

나주 남평주조장이 알려짐으로써 나주와 남평이 얻게 될 부대 이익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문화유산을 살려,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가는 여행지가 대체로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나주 남평이 고향인 윤 씨는 국립박물관장과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한 이 분야 전문가다. 그의 아내 역시 전시와 문화기획에 능한 문화학박사다. 부부는 주조장을 매입한 10년 전부터는 술을 빚으며 발효를 연구해오고 있다. 따라서 필자가 가까이서 봐온 윤태석 박사는 남평주조장 관리자로 최적격인 사람이다.

보존의 가치가 분명하고, 관리자의 전문성과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제는 지자체가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관리자가 남평주조장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면, 이제는 우리 모두가 나서서 더 아름답게 꾸미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 힘써야 한다. 지금도 비가 새고 있을 ‘100년 효모, 남평주조장’의 복원과 보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