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들면서 더욱 까다로워지고 변덕스러워지는 나. 만남의 기회는 짧아지고 만남의 범위도 좁아져 점점 외톨이로 변해가는 나. 주름살은 짙어지고 머리는 하얗게 변해 마른 갈대처럼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청소년 시절과 청년기에는 친구들이 마냥 좋았다. 바쁜 중에도 시간을 만들었고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못 만나고, 잠자리가 바뀌는 것이 꺼려진다. 서로의 상황이 다르고 취미와 가치관도 달라지니 만남의 횟수도 만남의 내용도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는 초, 중, 고, 대학 동창생 하나 없는 곳이다. 친구들이 생각날 때면 북송 시대의 시인 황정견의 글에 위안을 받는다. ‘나는 북해에 살고 그대는 남해에 살아(我居北海君南海), 기러기 편에 편지 전하려다 못 전해 미안하네(寄雁傳書謝不能)∼중략’. 또한 친구의 향기가 그리울 때면 고려 후기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목은 이색이 남긴 오언절구 한시를 생각한다. ‘그대를 생각해 무엇을 주고 싶으나 줄 것이 없어(憶君無所贈), 한 조각의 대나무 부채를 주려하니(贈次一片竹), 부채 사이에서 맑은 바람이 불거든(竹間生淸風), 바람 따라 서로 생각하세(風來君相憶)’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온 지 어언 40여 년, 퇴직 후엔 어릴 적 놀던 시골집 언덕, 들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 산바람 들바람, 뻐꾸기 소리 들리는 곳. 텃밭에는 호박꽃이 피고 노랑나비 흰나비가 찾아오는 곳.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 논두렁 밭두렁에서 달래랑 쑥을 뜯으며 강 낚시도 하고 화초도 키우며 살아가고 싶다.

산이 날 부르고 개울물이 날 불러 산에서 살아라 하네.

어릴 적 뛰놀던 시골집 텃밭에서 고추 상추 심고 살아라 하네.

산이 날 보고 나무처럼 살아라 하네, 바위처럼 살아라 하네.

사람의 욕망 중 돈, 지위, 이성과 같은 소유욕에는 능력도 없고 이미 지쳐버렸다. 노래, 춤, 관광과 같은 향락 욕구에는 흥미도 없고 재능도 없어 애초부터 멀리하였다. 문학, 예술, 조각, 그림과 같은 창조 욕구 중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하여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학 강단이 직업인 사람으로 시(詩), 서(書), 화(畵), 예(藝) 중 한 가지라도 해야 하겠기에 서예와 시를 힘써 배우고 있다.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순간 즐겁고 행복해진다. 매일 밥을 먹듯이 생활의 모든 것이 시가 된다. 시에 웃고 시에 울며 살아간다.

서예와 시를 공부하다 보면, 옛 문인들이 남긴 글을 만난다. 송나라 구양수는 ‘막역한 친구를 만나면 술 천 잔이 적고, 말과 뜻이 맞지 않으면 반 마디 말도 많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고 했으니 하고 싶은 말, 마시고 싶은 술, 이제는 말도 줄이고 술도 자제하면서 살아가고자 한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존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때로는 인정해 주는 이 없어 침울하며 외로울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춘추시대 제나라 포숙(鮑叔)이 친구인 관중(管仲)을 인정하여 관용을 베풀었고, 재상의 자리까지 양보했기에 관중이 포숙에게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었다.’고 말한 “관포지교(管鮑之交)”를 생각한다. 또한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인이었던 백아를 인정해 준 친구 종자기를 생각한다.

나의 고향 친구들은 각자 떨어져 살고 있다. 하지만 우정은 여전하고, 마음은 가까이 있으며, 몸은 늙어가지만 추억은 생생하다. 고향 친구를 자주 못 만나 쓸쓸하고 외롭게 생활하기보단 반겨주는 이웃들, 손을 내밀고 마음을 주는 사람들, 지역의 동아리 회원들과 어울린다. 출신 지역을 떠나 나이를 떠나 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이 아닌가. 혹,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더라도 멀리에서 지켜보는 친구가 있기에 오늘도 나는 주어진 일을 즐기면서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긴다.

<김도희 약력>
▲‘한강문학’ 등단
▲제17회 해양문학상, 제2회 DMZ문학상 수상
▲수필집 : ‘명태 돌아오라’, ‘자전거 타는 남자’, ‘바람소리 물소리’
▲목포해양대학교 환경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