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이야기할머니 예뻐요 / 수필 - 황숙자


- 재생 준비중
2024. 10. 28(월) 19:52 가+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게 무슨 좋은 일 있니?”
친구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보여? 방금 전에 천사들을 만나고 와서 그런가?”
문득 친구와 만나기 바로 전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눈은 반짝 귀는 쫑긋 정말 좋아요. 하나 둘 셋 넷 다시 만나요. 빵빵!”
“배꼽 손 인사.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인사가 끝나자 아이들이 우르르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한다.” 하면서 쫘악 벌린 두 팔로 아이들을 한꺼번에 안아주었다. 아이들은 쉽게 흩어질 생각을 안 했다.
“이야기할머니 가셔야지!”
지켜보던 선생님이 한마디 하자 그제야 아이들은 마지못해 내 품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건우가 끝까지 남아 “할머니, 토닥토다악! 해줘야지.” 한다. “아유, 이 녀석” 건우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주었더니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자리로 돌아간다. 교실을 나오면서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두 명뿐인 손녀들도 다 크고 멀리 있어서 안아 볼 기회가 없는데 이렇게 많은 남의 집 손자 손녀들을 날마다 안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활동을 하면서 ‘젊어 보인다. 행복해 보인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도서관에서 동화구연강의가 끝난 후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공모가 있다는 강사님의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공모 기관에 문의하니, 마감이 임박해 급히 서류를 준비해 우편 접수를 했다. 1차 서류 심사를 거쳐 2차 면접 후 합격자를 발표한다는 말을 듣고, 차분하게 다시 사업 내용을 살펴보았다. 꼭 합격이 되어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서류가 통과되고 서울 ‘국립 아동 청소년 도서관’에서 면접을 봤다.
발표를 기다리는 내내 안절부절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합격이 되어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 들려주는 꿈을 꿀 때도 있었다. 30일 후, 합격자 명단을 아무리 훑어봐도 이름이 없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구름 위를 걷고 있었나 보다. 온몸에 힘이 쫘아악 빠지는 느낌이었다.
공모 기관에 응모자가 많았을 때의 마지막 선발기준이 무엇일까? 문의해 보았다. 답변은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원봉사자로서의 자세’라고 하였다. 그 당시 나도 유치원에서 이야기할머니 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처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낱말이 쉽게 포기되지 않아 응모 공지 사항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필수조건보다는 우대조건 1번 ‘관련학과 전공자나 자격증 소지자’라는 항목을 보고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동안 태어난 시대와 자라 온 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껏 배우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있었고 자격지심에 스스로 움츠러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고학력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의연해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순 넘어 모처럼 가져보는 희망까지 옭아매려 한다고 생각하니 학력 위주의 사회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릴 때 꾸었던 교사의 꿈은 이룰 수 없었지만 이야기할머니는 꼭 됐으면 하고 한껏 마음이 부풀었었는데…….
처음에는 손주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동화구연강의를 들어왔지만, 굳이 전문가가 되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공모에 탈락하자 마음을 바꾸었다. 당장 동화구연지도자 아카데미에 등록을 했다. 꼭 동화구연가가 되어 남은 생을 이야기할머니로 활동하겠다는 오기도 생기고 욕망도 생겼다. 대체로 수강생들이 젊은이들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아카데미 전 과정이 끝날 무렵 ‘4기 이야기할머니 공모’ 공고가 떴다. 어차피 학력이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친구인 3기 할머니가 그건 오해라며 꼭 응모를 하라고 권해서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다.
서류 통과 후, 면접 시간. 합격이 안 될지라도 준비한 대로 소신껏 답변을 했다. 합격만 한다면 정말 자신 있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진심이 심사위원들에게 전해진 것일까.
드디어 4기 이야기할머니에 합격.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활동을 시작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교육 때 받은 교재를 충실하게 외우고, 이야기와 관련된 상식이나 정보들도 미리미리 검색해 본다. 몰랐던 새로운 지식들도 알게 되고, 잡다한 삶의 걱정 근심이 끼어들 틈이 없다.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바른 인성의 씨앗을 심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저절로 힘이 솟는다.
만약 이야기할머니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4기 응모를 적극 권했던 친구가 정말 고맙다. 이 사업을 기획하고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한없이 감사하다. 또 할머니들의 활동을 돕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이야기할머니 사업단의 연구원님들에게도 늘 감사한 마음이다.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주마다 색깔이 다른 전통 한복차림으로 아이들에게 간다. 기관에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이야기할머니!” 부르며 아이들이 달려온다. 내 얼굴에는 해바라기 같은 웃음꽃이 저절로 피어난다.
황혼의 뜰에 선 나에게 가슴 벅찬 삶의 보람과 무한한 활력을 샘솟게 하는 영롱한 눈빛의 천사들! 나는 아이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도 다음 시간에 입을 노란색 치마와 연두색 저고리의 한복을 곱게 손질하는 중이다.
“이야기할머니! 예뻐요!”
까르르 웃으며, 품 안에 안겨 올 아이들의 모습이 벌써 아른아른 그리워진다.
<황숙자 약력>
▲2003년 대한문학 수필등단
▲광주문인협회, 우송문학 회원
▲우송문학상 수상
▲그림책 : ‘경양방죽’, ‘향기주머니’
▲수필집 : ‘아주 작은 풀꽃’, ‘나의 노년을 꽃피운 행복했던 시간들’
친구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보여? 방금 전에 천사들을 만나고 와서 그런가?”
문득 친구와 만나기 바로 전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눈은 반짝 귀는 쫑긋 정말 좋아요. 하나 둘 셋 넷 다시 만나요. 빵빵!”
“배꼽 손 인사.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인사가 끝나자 아이들이 우르르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한다.” 하면서 쫘악 벌린 두 팔로 아이들을 한꺼번에 안아주었다. 아이들은 쉽게 흩어질 생각을 안 했다.
“이야기할머니 가셔야지!”
지켜보던 선생님이 한마디 하자 그제야 아이들은 마지못해 내 품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건우가 끝까지 남아 “할머니, 토닥토다악! 해줘야지.” 한다. “아유, 이 녀석” 건우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주었더니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자리로 돌아간다. 교실을 나오면서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두 명뿐인 손녀들도 다 크고 멀리 있어서 안아 볼 기회가 없는데 이렇게 많은 남의 집 손자 손녀들을 날마다 안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활동을 하면서 ‘젊어 보인다. 행복해 보인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도서관에서 동화구연강의가 끝난 후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공모가 있다는 강사님의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공모 기관에 문의하니, 마감이 임박해 급히 서류를 준비해 우편 접수를 했다. 1차 서류 심사를 거쳐 2차 면접 후 합격자를 발표한다는 말을 듣고, 차분하게 다시 사업 내용을 살펴보았다. 꼭 합격이 되어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서류가 통과되고 서울 ‘국립 아동 청소년 도서관’에서 면접을 봤다.
발표를 기다리는 내내 안절부절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합격이 되어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 들려주는 꿈을 꿀 때도 있었다. 30일 후, 합격자 명단을 아무리 훑어봐도 이름이 없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구름 위를 걷고 있었나 보다. 온몸에 힘이 쫘아악 빠지는 느낌이었다.
공모 기관에 응모자가 많았을 때의 마지막 선발기준이 무엇일까? 문의해 보았다. 답변은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원봉사자로서의 자세’라고 하였다. 그 당시 나도 유치원에서 이야기할머니 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처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낱말이 쉽게 포기되지 않아 응모 공지 사항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필수조건보다는 우대조건 1번 ‘관련학과 전공자나 자격증 소지자’라는 항목을 보고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동안 태어난 시대와 자라 온 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껏 배우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있었고 자격지심에 스스로 움츠러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고학력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의연해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순 넘어 모처럼 가져보는 희망까지 옭아매려 한다고 생각하니 학력 위주의 사회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릴 때 꾸었던 교사의 꿈은 이룰 수 없었지만 이야기할머니는 꼭 됐으면 하고 한껏 마음이 부풀었었는데…….
처음에는 손주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동화구연강의를 들어왔지만, 굳이 전문가가 되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공모에 탈락하자 마음을 바꾸었다. 당장 동화구연지도자 아카데미에 등록을 했다. 꼭 동화구연가가 되어 남은 생을 이야기할머니로 활동하겠다는 오기도 생기고 욕망도 생겼다. 대체로 수강생들이 젊은이들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아카데미 전 과정이 끝날 무렵 ‘4기 이야기할머니 공모’ 공고가 떴다. 어차피 학력이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친구인 3기 할머니가 그건 오해라며 꼭 응모를 하라고 권해서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다.
서류 통과 후, 면접 시간. 합격이 안 될지라도 준비한 대로 소신껏 답변을 했다. 합격만 한다면 정말 자신 있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진심이 심사위원들에게 전해진 것일까.
드디어 4기 이야기할머니에 합격.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활동을 시작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교육 때 받은 교재를 충실하게 외우고, 이야기와 관련된 상식이나 정보들도 미리미리 검색해 본다. 몰랐던 새로운 지식들도 알게 되고, 잡다한 삶의 걱정 근심이 끼어들 틈이 없다.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바른 인성의 씨앗을 심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저절로 힘이 솟는다.
만약 이야기할머니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4기 응모를 적극 권했던 친구가 정말 고맙다. 이 사업을 기획하고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한없이 감사하다. 또 할머니들의 활동을 돕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이야기할머니 사업단의 연구원님들에게도 늘 감사한 마음이다.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주마다 색깔이 다른 전통 한복차림으로 아이들에게 간다. 기관에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이야기할머니!” 부르며 아이들이 달려온다. 내 얼굴에는 해바라기 같은 웃음꽃이 저절로 피어난다.
황혼의 뜰에 선 나에게 가슴 벅찬 삶의 보람과 무한한 활력을 샘솟게 하는 영롱한 눈빛의 천사들! 나는 아이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도 다음 시간에 입을 노란색 치마와 연두색 저고리의 한복을 곱게 손질하는 중이다.
“이야기할머니! 예뻐요!”
까르르 웃으며, 품 안에 안겨 올 아이들의 모습이 벌써 아른아른 그리워진다.
<황숙자 약력>
▲2003년 대한문학 수필등단
▲광주문인협회, 우송문학 회원
▲우송문학상 수상
▲그림책 : ‘경양방죽’, ‘향기주머니’
▲수필집 : ‘아주 작은 풀꽃’, ‘나의 노년을 꽃피운 행복했던 시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