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청포도와 이육사 순국지 / 수필 - 김양화


- 재생 준비중
2024. 07. 08(월) 20:00 가+가-
광복절이 방학 중이라 학생들에게 ‘8.15 광복’ 이야기를 미리 해주다가 이육사 문학관도 소개했다. 도산서원과 가까운 문학관 입구에서 청포도가 싱그럽게 익어갈 거라고 하니, 장애 학생들의 눈빛이 포도알처럼 빛났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중략…아이야 우리 식탁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학생들은 ‘청포도’ 시를 낭송한 후 생명력과 희망을 상징하는 청색의 느낌을 공감하고, 청포도 밑그림에 색칠도 하며 이육사 시인의 독립 정신을 기렸다. 잘 단장된 문학관 주변으로 청포도 넝쿨이 탐스럽게 뻗어간 영상을 보니,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시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 님이 순국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푸징에서 1.5km 떨어진 둥창후통 28호이다.
재중항일역사 기념사업회 관계자에 의하면, 작년 초부터 이곳 입구에 안면인식 출입 장치가 설치돼 외부인의 방문이 어려워졌다. 일본 헌병대가 1937년부터 일제 패망 직전까지 감옥시설로 사용했던 벽돌로 지어진 일제식 2층 건물이 중국식 회색 콘크리트 건물로 리모델링 되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잠금장치가 없어 지하 감옥으로 사용된 내부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젠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시인이 마지막 숨을 몰아쉰 공간인데, 우리 국민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추모할 수 없을뿐더러 순국의 자취조차 사라져가니 안타깝다.
‘새로 쓰는 이육사 평전’(김희곤 지음, 지영사)에 의하면, 시인은 1943년 어떤 분에게 이런 말씀을 했다.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곧 일본도 끝장난다.”
청포도가 익듯 우리 민족이 익어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조국 광복에 투신하며 감옥 수인번호 ‘264’가 필명이 된 이육사 시인!
시인은 17년 동안 17번 투옥되며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결정적 증거를 잡히지 않은 채 독립운동을 지속하던 중 1943년에는 베이징으로 가서 국내 무기 반입계획을 세웠지만, 경성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베이징으로 압송돼 1944년 1월 16일 새벽, 둥창후통 28호의 차가운 감옥에서 서거하였다. 그토록 고초를 겪으셨으니 두 손을 함뿍 적시고 청포도를 따 드시며 해방의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오죽 좋았을까.
이육사 순국지가 자리한 일제 시설물은 중국의 많은 항일지사가 고초를 겪은 현장이라는 점에서 중국 내 역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찍부터 보존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방치되었다. 그동안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은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에서 이육사 순국지를 소개하며 ‘주변 지역 개발로 철거 등이 우려되니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해 왔다.
관계자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지하 감옥으로 추정되는 증거인 오래된 쇠창살 등도 모두 철거되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80년 가까이 원형을 유지해 온 건물인데,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 결국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건물이 철거되면 독립운동사적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가 중국과 협의해 독립운동 사적지라는 사실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둥창후통 28호에 꼭 설치해야 하겠다.
광복절이 가까워지는 만큼 청포도도 익어가는 시절, 이육사 순국지를 돌아볼 일이다. 아울러 여름 장맛비로 인한 산사태 및 각종 피해를 염려하는 요즘, 이육사 시인처럼 생명력과 희망이 충만한 청포도를 마음에 그리며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김양화 약력>
▲평화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한국문인 수필 등단, 천강문학상 동화 수상
▲수필집 : ‘사랑엔 장애가 없다’
▲동시집 : ‘메뚜기 교실’, ‘숲의 초인종’
▲ 광주선우학교 특수교사 재직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중략…아이야 우리 식탁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학생들은 ‘청포도’ 시를 낭송한 후 생명력과 희망을 상징하는 청색의 느낌을 공감하고, 청포도 밑그림에 색칠도 하며 이육사 시인의 독립 정신을 기렸다. 잘 단장된 문학관 주변으로 청포도 넝쿨이 탐스럽게 뻗어간 영상을 보니,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시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 님이 순국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푸징에서 1.5km 떨어진 둥창후통 28호이다.
재중항일역사 기념사업회 관계자에 의하면, 작년 초부터 이곳 입구에 안면인식 출입 장치가 설치돼 외부인의 방문이 어려워졌다. 일본 헌병대가 1937년부터 일제 패망 직전까지 감옥시설로 사용했던 벽돌로 지어진 일제식 2층 건물이 중국식 회색 콘크리트 건물로 리모델링 되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잠금장치가 없어 지하 감옥으로 사용된 내부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젠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시인이 마지막 숨을 몰아쉰 공간인데, 우리 국민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추모할 수 없을뿐더러 순국의 자취조차 사라져가니 안타깝다.
‘새로 쓰는 이육사 평전’(김희곤 지음, 지영사)에 의하면, 시인은 1943년 어떤 분에게 이런 말씀을 했다.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곧 일본도 끝장난다.”
청포도가 익듯 우리 민족이 익어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조국 광복에 투신하며 감옥 수인번호 ‘264’가 필명이 된 이육사 시인!
시인은 17년 동안 17번 투옥되며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결정적 증거를 잡히지 않은 채 독립운동을 지속하던 중 1943년에는 베이징으로 가서 국내 무기 반입계획을 세웠지만, 경성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베이징으로 압송돼 1944년 1월 16일 새벽, 둥창후통 28호의 차가운 감옥에서 서거하였다. 그토록 고초를 겪으셨으니 두 손을 함뿍 적시고 청포도를 따 드시며 해방의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오죽 좋았을까.
이육사 순국지가 자리한 일제 시설물은 중국의 많은 항일지사가 고초를 겪은 현장이라는 점에서 중국 내 역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찍부터 보존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방치되었다. 그동안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은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에서 이육사 순국지를 소개하며 ‘주변 지역 개발로 철거 등이 우려되니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해 왔다.
관계자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지하 감옥으로 추정되는 증거인 오래된 쇠창살 등도 모두 철거되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80년 가까이 원형을 유지해 온 건물인데,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 결국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건물이 철거되면 독립운동사적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가 중국과 협의해 독립운동 사적지라는 사실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둥창후통 28호에 꼭 설치해야 하겠다.
광복절이 가까워지는 만큼 청포도도 익어가는 시절, 이육사 순국지를 돌아볼 일이다. 아울러 여름 장맛비로 인한 산사태 및 각종 피해를 염려하는 요즘, 이육사 시인처럼 생명력과 희망이 충만한 청포도를 마음에 그리며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김양화 약력>
▲평화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한국문인 수필 등단, 천강문학상 동화 수상
▲수필집 : ‘사랑엔 장애가 없다’
▲동시집 : ‘메뚜기 교실’, ‘숲의 초인종’
▲ 광주선우학교 특수교사 재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