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 오래돼 만성화되면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도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다. 오랜 통증을 호소하는 암환자에게 불안증상 및 우울증 유병률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체의 통증과 마음의 불편함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는 신경전달물질과 연관이 있다. 세로토닌(Serotonin)과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 대표적인데, 이 두 물질은 통증을 둔감하게 느끼도록 하거나 통증을 억제하는 성질이 있다. 또한 세로토닌은 활성화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노르에피네프린은 항스트레스의 효과가 있다. 그런데 만성통증 환자에서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가 적어지거나 기능이 떨어져 통증에 민감해지며 스트레스에 취약하거나 기분도 우울해지게 된다.

이렇듯이 만성통증 환자에게는 통증 치료 뿐만 아니라 정신적, 감정적 측면의 접근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거시대에는 신체적인 통증과 정신적인 불편감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조선의 7대 왕이었던 세조가 1463년 직접 저술한 의학 전문 서적인 <의약론(醫藥論)>에는 의사의 유형을 8가지로 설명한다. 심의(心醫), 식의(食醫), 약의(藥醫), 혼의(昏醫), 광의(狂醫), 망의(妄醫), 사의(詐醫), 살의(殺醫)의 팔종지의(八種之醫)로 표현하고 있다. 이 중 심의를 최고의 의사로 말하는데, 심의는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환자의 뜻을 정성껏 따르는 의사를 뜻한다. 옛사람들도 아플 때는 몸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 다스려야하는 것을 헤아리고 있었다. 한의학과 현대의학은 환자의 몸과 마음까지 치료하는 것을 공통의 목표로 삼고 있다.

신체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한방·양방 협진을 시범사업 중인 한방병원에서는 침, 뜸, 부항, 추나, 약침, 한약치료와 약물치료, 전기치료, 도수치료 등으로 통증을 조절하고 있다. 감정치료에는 침치료, 한약치료와 심리적 치료기법을 병행하는데, 이럴 때 필자가 활용하는 지지(support)치료법인 ‘BATHE 기법’을 소개해본다.

‘BATHE 기법’은 환자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치료법이다. 첫번째 ‘B’는 Background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배경을 물어본다. 두번째 ‘A’는 Affect로 그 당시에 감정이 어땠는지를 표현하도록 한다. 세번째 ‘T’는 Trouble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불편한점을 이야기하고 문제의식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단계이다. 네번째 ‘H’는 Handling으로 힘든 상황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물으며 환자의 행동이나 방어기제를 파악하게 한다. 마지막 다섯번째 ‘E’는 Empathy로 환자의 감정을 공감하고 헤아려주는 것이다. BATHE 기법을 통해 환자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며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고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자존감을 고취시킬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이웃들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관심을 가져준다면 우리 모두 ‘심의(心醫)’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