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菊(황국) - 면암 최익현
佳節兼淸馥 短宜處士培(가절겸청복 단의처사배)
羞同桃李節 遲向九秋開(수동도리절 지향구추개)
빛깔도 좋지마는 향기 더욱 좋아서
이 꽃은 그야말로 처사가 길렀는데
아마도 부끄러워서 가을철에 피누나.

가을에 피는 황국을 매화 못지않게 곧은 절개로 생각해 사랑했다. 봄의 첫손님인 매화를 팔 벌려 맞이하는가 하면, 늦서리를 맞아가며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핀 가을국화를 마지막 계절을 보낸 손님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황국을 칭송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늦은 구월에 피는 국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꽃의 빛깔도 좋지마는 그 향기는 더욱 좋구나, 이 꽃은 그야말로 처사가 기르는 것이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아마 봄꽃과 같이 피는 것을 부끄러워해서’(黃菊)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으로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다.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대원군이 그 위세를 몰아 서원의 철폐를 단행하자 그 시정을 건의한 ‘계유상소’를 올렸던 인물이다. 이것을 계기로 대원군 10년 집권이 무너지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됐던 계기가 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꽃의 빛깔도 좋지마는 향기는 더욱 좋구나 / (이 꽃은) 그야말로 처사가 기르는 것이었을 테지 // 아마도 봄꽃과 같이 피는 것을 부끄러워하여서 / 이처럼 늦게야 늦은 구월 가을철에 피워나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노란 국화를 보면서’로 번역된다. 조물주의 조화는 어쩌면 한 치의 오치도 없이 세상의 이치를 잘 다독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봄이면 매화가 눈을 딛고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피어나는가 하더니만, 뒤를 이어서 개나리와 진달래가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앵화(櫻花)라고 하는 앵두나무와 벚나무 꽃이 길거리를 장식하게 된다.

국화는 코를 벌름거리는가 싶더니만 ‘너희들 먼저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손사래를 치더니만, 찬바람을 맞으면서 늦서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빛깔도 좋지마는 향기 더욱 좋다고 하면서 (이 꽃은) 그야말로 처사가 기르는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시상을 입에 물게 된다. 이제 시인의 자만심은 한 술 더 떠서 부끄러움을 타는 국화의 자존심을 건드려 놓기에 다소 여유롭고 바쁜 모습을 보인다.

화자의 억지는 다음의 후정(後情)으로 갈수록 그 도를 더한다. 아마도 봄꽃과 같이 피어나는 것을 심히 부끄러워하여, 서리도 마다하지 않고 늦은 구월 가을철에 피어난다고 했다. 그 지조와 기상은 넘쳐나고 뭇 꽃들의 뒷받침을 충분하게 하는 모습이 ‘꽃 중의 꽃’이란 생각을 덧붙이게 된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佳節: 아름다운 가절. 兼: 겸하다. 淸馥: 향기가 맑다. 短宜: 마땅히 모자라다. 處士培: 처사가 기르다. // 羞同: 함께 피는 것을 부끄러워하다. 桃李節: 복숭아와 자두가 피는 계절(이 싫다). 遲向: 더디게 향하다. 더디게 피다. 九秋開: 구월 국화가 피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