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오늘(11월23일) 9·19 군사합의의 전면적 파기를 선언하고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처들을 즉시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21일 북한이 3차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우리 정부가 취한 일부 조항의 효력 정지를 선언한 데 대한 맞대응으로 사실상의 파기를 뜻한다.

벌써 5년이 넘었다. 9·19 군사합의가 이뤄지던 지난 2018년 9월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국무조정실 2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후 11월에 국무조정실장으로 발령받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일원으로 9·19 군사합의 후속 조치들이 이행돼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4년전 2019년 9월18일자 통신사에 실린 기사 제목이 ‘국방부 北, 9·19군사합의 후 위반사례 한건도 없었다’였다. 그러나 2019년 2월의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 전환으로 군사합의 이행의 진전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무척이나 아쉽고 답답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4·27 판문점 선언이 제시한 최종 목표인 전쟁의 종식과 완전한 비핵화라는 전략적 합의를 이행해 나가는 첫걸음으로 전술적 단위의 군사적 긴장을 늦추기 위한 조치로 남북이 합의한 것이 바로 9·19 군사합의다.

그동안 북한의 위반 사항도 다수 있었다. 그에 대응하는 성격의 남한 측의 위반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나마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마지막 안전핀 노릇을 하던 9·19군사합의를 파기하는 게 맞는 방법일까?

그런 말이 있다. 부부간에 싸움을 하더라도 절대 각방은 쓰지마라. 아옹다옹, 티격태격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맞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묵은 갈등도 풀리고 관계도 더 진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일부는 북한이 계속 위반하는데 그 따위 군사합의를 우리만 지킬 필요가 있냐고 한다. 하지만 이제 북한이 어떤 군사적 도발을 하더라도 우리가 항의하고 따져서 재발을 방지할 횟초리가 없는 셈이다.

한반도 군사 긴장의 고삐가 풀렸다. 군사 위성 경쟁이 가속화되고 한반도 상공에는 군사 드론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킬 일만 남았다. 북한이 파기하니 ‘오냐! 잘 됐다. 기다리던 바였다’라는 식으로 합의 폐기를 즉각적으로 공식화해서는 안된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펼치는 강대강 일변도 대북정책은 대통령의 말처럼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결코 가져올 수 없다.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 팔레스타인 대 이스라엘 이 두 전쟁의 사례에서 보듯이 누가 봐도 뻔한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힘에 의한 평화는 없고 오직 미친 전쟁의 피비린내만 가득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군사 대결을 가속화시키는 작금의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공존을 짓밟은 최악의 정권으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