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사진 한 장 / 수필 - 이상도
2023. 09. 18(월) 19:36 가+가-
사진 속에도 세월은 있는가 봅니다.

조그만 서재 한편에 덩그렇게 사진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 사진 속의 여인은 항상 엄숙하면서도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사진 속에 그 여인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정표요, 내 마음속 고향입니다.

그 사진 속의 여인은 누구일까요? 그 여인은 바로 내 노모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내 서재에는 주름살이 가득한 노모의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해 우연히 몇십 년이 지난 사진 하나를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나를 낳으시고 얼마 안 되어 주민등록증을 갱신하기 위해 찍으셨던 증명사진이었습니다.

정말 오래된 옛날 사진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컬러가 아닌 흑백사진이었나 봅니다. 세월을 머금은 사진은 그 세월을 반영한 듯 누렇게 바래져 있었습니다. 힘드신 생활 속에서도 어두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던지 긴장과 엄숙함을 누르고 활짝 웃으려 애쓴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노모께선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주시는 걸 행복해하며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자신을 잃어버리고 희생하시며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은 저만치에 있는 남들 걸로만 생각하며 남들처럼 웃음 짓는 그런 행복을 꿈꾸실 여유가 없으셨던가 봅니다. 이렇듯 그 힘드신 그때 그 생활에 얽매이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아니 그렇게 살아오신 생활 그 자체의 모든 것을 사진 한 장에서 보여주시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네가 사는 세상은 내일이 있기에 오늘을 살듯이 노모께선 자신이 소유하고 계시는 유일하고도 존귀한 행복은 자식이었을 것입니다.

허리 굽혀 굽어보는 건 땅이요. 허리 펴고 올려다보는 건 하늘이라고 했던가요? 노모께선 굽어만 보고 살아오셨던 것만 같습니다. 무슨 놈의 땅에 원수가 졌기에 그렇게 굽어만 보고 사셨는지요. 그게 우리 어머니 세대의 공통점이 아니겠습니까? 아침이다 생각하면 벌써 저녁이니 그게 우리 어머니들의 세월 속에 묻혀가는 노래이셨겠지요.

어느 날 아침 동이 터올 적에 무심코 고개 들어 하늘 한번 쳐다보시곤 거울에 얼굴 비추시며 엄숙한 표정을 지으시던 그 모습은 처녀 적 상긋상긋 미소 띤 붉은 얼굴을 그리워하며 떠올리셨겠지요. 물속에 얼굴 담가 곱게 단장하시던 그 모습은 언제 어디론지 다 가버리고 벌써 팔순으로 가는 길목에 서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시니 세월이란 놈만 하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더랍니다.

세월이란 놈은 틈새를 주지 않고 사는가 봅니다. 그래도 어느 날 뒤 돌아보니 지나가 버린 세월이 거울에 한 장 한 장 가득 담겨있었으니까요. 그 세월이란 놈은 내가 안타까웠던지 노모의 사진 한 장을 주고서 가버린 세월을 보여주더이다.

이렇듯 노모의 누렇게 바랜 사진 한 장은 세월 속에 숨겨진 따뜻한 품으로의 포옹이었습니다. 그 사진 한 장은 가는 세월에 가득 찬 노모와 아들의 눈물이었습니다.

“어떤 그리움의 눈물이었냐고요?” 나이 사십이 넘은 아들이 어릴 적 묻혀 살았던 엄마의 품이 그리워서 우는 눈물이지요. 밤이면 무수히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살았던 아들이 산다는 것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가 그리워서 우는 눈물이랍니다.

세월은 연속 사진만을 보여줍니다. 대나무가 옆은 보지 못한 채 하늘을 향해 치솟기만 하듯 엄마는 자식만을 보며 자식은 엄마만을 보면서 살아온 것만 같습니다. 대나무 마디가 총총히 차례차례 하늘을 향해 치솟으며 이어가듯 마디마디에 빈속은 노모가 항상 비워놓으셨기에 오 남매는 대나무 빈속에 엄마의 사랑을 가득히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꽃에 많이 비유하지요. 저 돌 위에 핀 돌꽃은 아름다운 만큼 피었다 지는 날이 짧아서 아쉽고요. 저 대숲에 대나무꽃은 백 년에 한 번 피우기에 행여 볼 수 없을까 하는 설렘에 아쉽지요.

그러기에 나는 아름다운 돌꽃보다는 긴 세월을 기다려 피우는 대나무꽃을 좋아합니다. 노모는 대나무 마디마디를 잇고 계신 아직 꽃 피우지 않은 대나무이시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큰 나무 밑에서는 어린나무가 크게 자리질 못하나 큰 사람 밑에서는 어린 사람이 큰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작고 여린 나에겐 큰 사람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작고 여린 나에겐 큰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노모이십니다. 노모가 나와 내 아내의 손을 만지시며 항상 하시는 말씀은 형제간의 우애와 가정의 화목을 항상 이야기하십니다. 이렇듯 진정한 인생의 행복은 집 울타리 밖으로 이야기 되어지는 화목한 가정이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조그만 서재 한편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노모의 사진은 나를 다스립니다. 화목은 인생을 살아가는 씨앗이자 열매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상도 약력>
▲문학춘추 수필 등단(2003)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남문인협회 이사
▲광주문인협회 회원, 문학춘추작가 회원
▲전남수필 이사,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이사
▲저서 : ‘달맞이꽃 산자락에 피었네’, ‘겨울나무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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