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충북 옥천 향수호수길
산자락 굽이쳐 흐르던 강의 옛 모습 닮은 호수
2023. 07. 25(화) 20:26 가+가-

향수호수길이 시작되는 옥천선사공원은 대청호가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에 남아있던 선사시대 유물과 모형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한 야외공원이다. 고인돌과 선돌, 원탑(제신탑) 등이 넓은 잔디밭 위에 전시되어 있고,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솟대와 장승도 새로 제작해 세워놓았다.


전북 무주와 장수를 지난 금강은 잠시 금산과 영동을 거친 후 북쪽으로 흘러 충북 옥천 땅을 적시며 흘러간다. 금강은 옥천 땅을 지날 때 깊은 산골짜기를 굽이쳐 흐르면서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을 이룬다. 첩첩한 산봉우리들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던 금강은 대청댐이 생기면서 물 흐름을 멈췄다.

거대한 대청호를 바라보며 걷는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로는 250㎞에 이르는 ‘대청호 오백리길’이 있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전과 청주, 옥천과 보은 등 네 개 지역을 지나는 21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이에 비해 ‘옥천 향수호수길’은 거리도 짧고 완만해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대청호 오백리길과 겹치지 않는 대청호 최상류에 조성됐다.

‘향수호수길’은 옥천 출신 시인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와 대청호의 ‘호수’를 조합한 이름이다.

‘향수’는 시인 정지용이 일본에 유학가면서 고향을 그리며 쓴 시로 1927년에 발표됐다. 한가로운 고향 정경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모더니즘시의 대표작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는 성악가 박인수와 대중가수 이동원이 듀엣으로 불러 널리 알려졌다.

‘향수호수길’이 시작되는 옥천선사공원으로 가는 길 근처에는 정지용생가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이 자리하고 있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낮은 고개 하나를 넘어가니 옥천선사공원이 기다리고 있다. 옥천선사공원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선사공원으로 들어선다.

옥천선사공원은 대청호가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에 남아있던 선사시대 유물과 모형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한 야외공원이다. 고인돌과 선돌, 원탑(제신탑) 등이 넓은 잔디밭 위에 전시돼 있고,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솟대와 장승도 새로 제작해 세워놓았다.

옥천선사공원주차장 앞 도로 건너에서 ‘향수호수길’이 시작된다. 경사지를 100m 쯤 올라가니 ‘향수호수길’ 안내도가 세워진 날망마당이다. 날망마당 바로 아래로 대청호 상류가 바라보인다. 길은 대청호 호반을 따라 이어진다. 임도에는 단풍나무를 가로수 형태로 식재해 놓았다. 몇 년 후 가을이면 예쁜 단풍길이 될 것 같다. 나무 사이로 호수가 잔잔하고, 숲에서는 매미들이 목청을 돋운다. 길이 완만한데다 흙길이어서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 사람들이 많다.

1980년 대청댐 준공 이후 40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호숫가 숲에 2019년 ‘향수호수길’을 만들었다. 날망마당에서 쉬엄쉬엄 20분 정도 걸어가자 길 아래쪽 호수위에 물비늘전망대가 서 있다. 물비늘전망대는 과거 옥천읍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취수탑 시설을 재활용했다.

물비늘전망대는 과거 옥천읍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취수탑 시설을 재활용했다. 햇볕에 반짝반짝 빛나는 물비늘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수위로 놓인 다리를 통하여 물비늘전망대에 들어서자 호수가 된 금강이 아름답게 조망된다. 대청호 최상류인 이곳은 물돌이동을 이루며 산골짜기를 흐르는 감입곡류 하천지역이다. 대청댐으로 인해 물 흐름이 정체되어 있지만 호수 폭이 좁아 강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다. 과거에 비해 강폭이 확대되고 물의 깊이가 깊어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청호가 생기면서 강변에 있던 농경지와 마을은 물에 잠겨버렸다. 호수 건너편으로 보이는 오대마을이 그곳이다. 오대리에는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서너 채 민가만 남아있다. 지금의 오대리는 뒷산이 가로막고 대청호가 강 건너 육로와의 연결을 끊어버려 배를 타지 않으면 접근이 불가능한 육지속의 섬마을이다.

물비늘전망대에 서 있으니 강줄기가 산자락을 따라 휘감아 도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청호 상류 쪽으로 멀리 보이는 강줄기는 부드러운 산봉우리들에 감싸여있고, 첩첩한 봉우리 너머로 둔주봉(383m)이 고개를 내민다. 둔주봉에는 금강을 휘감고 흐르는 모양이 한반도를 닮아 옥천 9경 중 제1경으로 삼고 있는 ‘한반도지형 전망대’가 있다.

물비늘전망대에 서 있으니 강줄기가 산자락을 따라 휘감아 도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청호 상류 쪽으로 멀리 보이는 강줄기는 부드러운 산봉우리들에 감싸여있고, 첩첩한 봉우리 너머로 둔주봉이 고개를 내민다.


옥천 땅을 적시며 흐르는 금강은 산자락을 따라 수없이 방향을 바꾸면서 사행천을 이룬다. 물비늘전망대는 햇볕에 반짝반짝 빛나는 물비늘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오늘은 물이 흐려 물비늘을 볼 수가 없다. 물비늘전망대에서 호숫가로 되돌아오면 데크길이 시작된다. 데크길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깊은 숲속을 걷는 것 같다. 나무 사이로 호수가 바라보이고, 종종 하얀 백로들이 호수 위를 날다가 호숫가 풀밭에 앉곤 한다.

‘향수호수길’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정지용의 시에는 어릴 때 뛰어놀던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과 정서가 스며있다. 정지용 시편을 읽으며 걷는 재미는 향수호수길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향수호수길에는 스토리텔링이 잘 되어 있다. 다람쥐쉼터도 그 중 하나다. 길 주변에는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 종류가 많아 다람쥐가 많이 서식한다.

아름드리 노송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는 ‘솔향쉼터’도 눈길을 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쉼터 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긴다. 쉼터에 앉아있으니 건너편 오대리쪽 산자락을 휘감은 호수 모습이 가슴에 안겨온다. 듬직한 산봉우리와 평온한 호수, 고요한 숲이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아름드리 노송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는 ‘솔향쉼터’도 눈길을 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쉼터 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긴다. 쉼터에 앉아있으니 건너편 오대리쪽 산자락을 휘감은 호수 모습이 가슴에 안겨온다.


며느리재라는 표지판을 읽는다. 비 오던 어느 날 고개를 넘던 며느리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벼랑에서 수십 길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는데, 며느리의 애틋한 넋이 진달래꽃으로 피어났다는 전설이 소개돼 있다. 며느리재는 지금 걷고 있는 위쪽 능선에 있는데, 그 옆에 할애비산이 있어 전설을 뒷받침한다.

옛날에는 며느리재를 넘어 황새터여울과 한밭여울을 이용해 건너편 오대리마을까지 쉽게 건너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호수에 막혀버렸다. 며느리재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부터는 평지에 가까운 길이다. 대청호가 생기기 전까지는 논과 밭으로 이용되던 곳이란다. 대청호가 생기기 전 물과 논을 좋아하는 황새가 이곳에서 많이 서식했다고 하여 황새터라 했다. 황새터에는 황새 세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대청호가 생기기 전 논과 밭이었던 황새터는 황새가 많이 서식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황새터에는 황새 세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황새터에 앉아 있으니 종종 물길을 가르며 전동보트가 지나간다. 조금 전 지나왔던 물비늘전망대가 손짓한다. 황새터를 지나면 물길이 굽이도는 이슬봉 자락을 걷게 되는데,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길을 막아놓았다. 여기에서 종점인 주막마을까지는 2.3㎞가 남았는데, 이 구간은 낙석위험 때문에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오던 길을 되돌아온다. 여전히 숲길은 고요하고 호수는 잔잔하다.

<장갑수·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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