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PROVENCE)는 알프스산맥이 지중해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프랑스 남부의 지역이다. 북쪽에는 알프스가 있고 남쪽에는 지중해가 있어서 이 지역을 풍요의 땅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친 자연환경을 개척하여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든 인간 승리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곳이다.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람, 척박한 대지와 쪽빛 바다는 유럽 세계를 지배한 로마인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로마인들의 마음을 훔친 프로방스의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는 로마인들에 의해 건설됐고 로마 공화정 말기의 이탈리아 휴양도시 바이아(Baiae)와 비견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기원전 123년 로마군단의 배후지로 지정된 엑상프로방스는 섹스티우스의 물(Aquae Sextiae, Eaux de Sextius)로 불렸다. 고대 로마의 온천 도시로 유명했던 엑상프로방스는 오늘날에도 물의 도시(Ville d’eau)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중세에는 프로방스 백작령의 수도로 역사문화도시를 자처했던 엑상프로방스가 프랑스인의 유니크 베뉴(Unique Venue)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작열하는 태양과 척박한 대지에도 불구하고 온화한 날씨와 푸른 바다가 주는 감동은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졸라(Emile Zola)에게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삶을 꿈꾸게 했다.

-거장들이 꿈꿨던 위대한 예술혼의 원천-
자연주의 작가가 된 졸라의 작품에 등장하는 목욕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곳에서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고 한다.

엑상프로방스 북쪽 마노스크(Manosque) 출신의 장 지오노(Jean Giono)도 나무 심는 사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을 통해서 프로방스의 자연과 자연을 극복했던 사람들의 인간승리를 노래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멀지 않은 오바뉴(Aubagne)에서 태어난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도 프로방스를 사랑한 작가로 유명한데, 엑상프로방스를 프랑스 남부의 코펜하겐(La Copenhague du Midi)이라고 칭송했다.

폴 세잔의 동상

그러나 누구보다도 엑상프로방스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세잔(Paul Cezanne)이다. 엑상프로방스 태생의 세잔에게 커다란 예술적 영감을 준 것이 엑상프로방스의 자연과 생트 빅투와르 산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색채가 일으키는 파장을 주관적 시각으로 해석했던 후기 인상파의 등장은 엑상프로방스의 자연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세잔이 그림을 그렸던 아틀리에, 야외 작업 현장인 채석장, 생트 빅투와르 산(Montagne Saint Victoire) 등등, 많은 작품의 무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엑상프로방스 중심가 미라보 거리 끝자락 로통드 광장(Place de la Rotonde)에 위치한 로통드(호똥드) 분수. 12마리의 청동 사자로 장식돼 있다.

태양을 따라가다 만나는 엑상프로방스의 교차로에는 어김없이 물을 뿜어대는 분수가 있다. 엑상프로방스를 분수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작은 교차로나 광장의 분수대에서도 사시사철 물이 솟아난다. 따뜻한 물이 솟아나는 분수도 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역사문화유산, 테라스에서 느끼는 햇살의 강렬함, 황토색 대리석으로 장식한 건물의 오묘한 색감, 쿠르 미라보(Cours Mirabeau)를 장식하는 가로수의 원근감, 세잔의 추억이 깃든 톨로네(Tholonet)의 고즈넉함, 웅장한 돌산의 미학을 보여주는 생트 빅투와르의 위용, 이 산의 정상에 자리한 십자가(The Cross of Provence) 등등, 이곳에서는 모든 공간이 장소성을 갖는다.

돌고래 분수

시청사와 시계탑을 지나 북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생 소뵈르 성당이 나온다. 생 소뵈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회랑과 메로빙거 왕조의 세례당등이 유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엑상프로방스는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실천하는 도시이다. 자연의 소리, 자연의 온기가 충만한 도시이다. 엑상프로방스로 진입하는 길들은 도시를 상징하는 생트 빅투와르 산을 마주해야 한다. 생트 빅투와르 산의 장관을 훔쳐보고 나서야 비로소 도시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도시 공간의 배치와 자연의 조화가 도시적 삶을 얼마나 자연과 공존하는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입증해 주는 도시이다.

그럼에도 도시를 활기차게 만드는 으뜸 요소는 365일 밝게 비추는 햇살이다. 뜨거운 햇빛과 습하지 않은 프로방스의 대기이지만 활기찬 생명력을 잉태한다.

봄이면 밀밭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붉은 개양귀비가 등장하면 프리아포스(Priapus God)를 숭배하던 생식과 풍요의 도시가 이곳임을 실감하게 된다.

- ‘물의 도시’ 상징…스토리 간직한 분수-
엑상프로방스에서 가장 확실한 유니크 베뉴는 쿠르 미라보와 이곳을 장식하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교차로에 설치된 분수들(Fontaines)이다. 쿠르 미라보라는 공간을 조성할 당시에는 느릅나무가 심어져 있었으나 1895년 현재의 플라타너스로 대체했다고 한다. 쿠르 미라보가 확장됐던 19세기 중반부터 카페, 식당, 은행 등이 들어서 오늘에 이른다.

활기 넘치는 미라보 거리 전경. 멀리 이끼 낀 분수와 르네왕 동상이 보인다.

이 중에서 두 소년(Les deux garcons)은 엑상프로방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세잔이나 사르트르, 콕토, 카뮈, 등 저명인사들이 드나들었던 명소로 알려져 있다.

1792년 문을 연 카페 두 가르송. 이곳은 폴 세잔, 에밀졸라 등 유명인사들이 자주 들른곳으로 오랜 역사만큼이나 유명하다.

도시를 상징하는 분수는 1860년 개통한 로통드(Fontaine de la Rotonde) 분수다. 로통드 분수의 꼭대기에는 세 개의 동상이 조각돼 있는데, 하나는 정의를 상징하는 조각상으로 쿠르 미라보를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하나는 마르세이유(Avenue des Belges)로 가는 길을 바라보는데, 무역과 농업을 상징한다. 마지막 조각품은 아비뇽으로 가는 길을 바라보는 것으로 미술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세 조각상으로 로통드 분수는 ‘세 가지 은총의 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엑상프로방스 중심가 미라보 거리 끝자락 로통드 광장(Place de la Rotonde)에 위치한 로통드(호똥드) 분수. 12마리의 청동 사자로 장식돼 있다.

보브나르그 마을의 작은 성채. 이곳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가 잠들어 있다.

이승권·조선대학교 대학원 문화학과 교수

로통드 분수 못지않게 유명한 분수는 1696년, 쿠르 미라보를 조성할 당시에 설계된 4개의 분수(Neuf-Canons fountain, Moussue fountain, Pyramid fountain(now King Rene’s), Chevaux Marins fountain)다. 마지막 분수는 사라지고 없지만 3개의 분수는 쿠르 미라보에 남아있다. 9개의 대포로 명명된 분수(Nine Canons Fountain)는 카바솔(Cabassol) 거리와 만나는 교차지점에 설치됐고, 이끼 낀 분수(Mossy Fountain)는 9월4일(4 Septembre) 길과 만나는 교차로에 설치됐다. 이 분수는 따뜻한 온천수를 내뿜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라미드 분수는 쿠르 미라보가 끝나는 곳에 르네 동상과 함께 서 있다.

도심을 벗어나면 생트 빅투와르 산의 북쪽 사면에 위치한 보브나르그(Vauvenargues)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의 작은 성채(Chateau of Vauvenargues)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가 잠들어 있다. 프로방스를 사랑한 피카소는 평생을 프로방스에서 활동했다. 피카소 사후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엑상프로방스의 명산 생트 빅투와르 기슭에 묻힌 이유가 무엇일까? 피카소가 영원한 안식처로 삼은 엑상프로방스의 안락함이 어떠한 것인지 궁금하기만 한다.

<이승권·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