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02)
옷상자 열어 살펴보았더니 더욱 마음 아파라
2023. 05. 09(화) 19:26 가+가-
婦人挽(부인만) - 명고 이계
嫁日衣裳半是新 開籍點檢益傷神(가일의상반시신 개적점검익상신)
平生玩好俱資送 一任空山化作塵(평생완호구자송 일임공산화작진)
시집 올 때 해온 옷 절반은 새 옷인데
옷상자 열어 보니 더욱 마음 아파오네
물건을 빈산에 맡겨 티끌로 보내려네.

남남으로 만난 부부가 백년해로를 하면 좋으련만 어느 한 쪽이 꼭 먼저 곁을 떠난다. 한 날 한 시에 죽을 수만은 없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시신을 부여안고 통곡을 하기도 하고, 옷가지며 남긴 유품을 부여잡고 하늘을 우러러 원망하기도 한다. 시상이 충만했던 시인이라면, 한 줌 시심은 하늘까지 솟구쳤으리. ‘마지막 떠나보내려 하니 생전에 좋아하던 물건 다 보내려하며, 빈산에 모두 맡겨서 티끌로 보내려한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옷상자 열어 살펴보았더니 더욱 마음 아파라’(婦人挽)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명고(鳴皐) 이계(1603-1642)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621년(광해군 13) 급제, 1624년(인조 2) 사정에 출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1641년 선천부사 때 명나라 상선과 밀무역하다 청에 발각돼 국가와 왕을 배신하는 자로 판단한 청이 우리나라에서 처단하도록 해 참수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집 올 때 해온 옷, 절반은 아직 새 옷이네 / 옷상자 열어 살펴보았더니 더욱 마음 아파라 // 마지막 떠나보내려 하니 생전에 좋아하던 물건 다 보내려하며 / 빈산에 모두 맡겨서 티끌로 보내려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죽은 아내에게 바치는 글’로 번역된다. 남남인 부부가 만났지만, 해로를 하다가 어느 한 쪽이 먼저 떠난다. 흔히들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야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찌 꼭 그렇게만 될 수 있을까. 여자가 세상을 먼저 떠나면서 심한 고통과 시달림을 받는 경우는 더 많다. 시인의 부인이 떠난 후 옷가지를 바라보며 비통에 젖는 모습을 본다.

시인은 부인이 먼저 떠나자 가득 담겨진 옷상자를 열어 보았더니 살아있을 적의 모습을 연상하는 시상 주머니가 가득한 모습이다. 시집 올 때 해온 옷, 절반은 아직도 새 옷인데, 옷상자를 열어 살펴봤더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손때가 묻고, 체취가 묻어나오는 옷가지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되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화자는 마지막 떠나보내려 하는 그 옷가지를 떠나는 아내의 관(棺)에 몽땅 다 넣어주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떠나보내려 하니 생전에 좋아하던 물건 다 보내면서, 빈산에 모두 맡겨서 티끌로 보내려한다고 했다. 망자(亡者)인 아내를 보내려하는 애처로운 남편의 마음은 천길 낭떠러지였을 것이다.<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嫁日: 시집오던 날. 衣裳: 의상. 옷가지. 半是新: 절반은 새 것이다. 開籍: 상자를 열어보다. 點檢: 점검하다. 益傷神: 더욱 마음이 상하다. // 平生: 평생. 玩好: 노리개로 좋아하다. 俱資送: 다 갖추어 보내려 한다. 一任空山: 빈산에 맡기다. 곧 묘에 맡기다. 化作塵: 티끌로 보내려 하다.
많이 본 뉴스
  1. 1
    광주시·전남도·무안군 ‘공항 문제 3자 대화’ 결국 무산

    광주 민간·군공항 이전을 둘러싼 갈등 해소를 위해 광주시와 전남도가 추진했던 무안군과의 3자 대화가 결국 무…

    #정치
  2. 2
    “음주운전은 살인행위” 광주·전남경찰, 연말연시 집중단속

    광주·전남경찰이 연말연시를 맞아 음주운전 집중 단속에 나선다. 30일 광주·전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역…

    #사회
  3. 3
    市 조형물에 간판 붙였다 뗐다…동구 제멋대로 행정 ‘빈축’

    광주 동구가 광주시 푸른사업소의 조형물에 무단으로 ‘Chungjangro’라는 영문 간판을 달았다가 빈축…

    #사회
  4. 4
    콘텐츠 선도기업, 광주 스타트업 성장 돕는다

    문화콘텐츠 선도기업들이 광주 스타트업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광주시는 30일 광주영상복합문화관에…

    #정치
  5. 5
    전남 자동차전용도로서 초소형전기차 시범운행

    전남도와 전남경찰청이 전국 최초로 12월1일부터 2024년 11월30일까지 1년간 초소형 전기차 자동차 전용…

    #정치
  6. 6
    ‘반짝이는 온동네’ 광주공동체 한마당

    광주지역 마을활동가들의 교류·소통의 장인 ‘2023 광주 공동체한마당’이 30일 서구 빛고을체육관에서 열렸다…

    #정치
  7. 7
    광주 자원회수시설 입지 선정 ‘원점으로’

    광주시 자원회수시설 입지 선정 절차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광주시는 30일 “2030년 가연성 생활…

    #정치
  8. 8
    광주 도심 찾은 ‘겨울 진객’ 큰고니

    찬공기가 유입되면서 추운날씨를 보인 30일 오후 도심근교 광주 광산구 산월동 영산강 산월2 방수제 인근에서 …

    #사회
  9. 9
    “소외된 이웃 돕기 위해 한 자리 모였다”

    “소외된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자입니다.” 30일 오후 …

    #사회
  10. 10
    전남 전·현직 기초단체장들 항소심서 희비 엇갈려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강종만 영광군수와 허석 전 순천시장의 희비가 항소심에서 엇갈렸다.…

    #사회

기사 목록

광주매일신문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