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94)
나는 文도 武도 아닌 한 미치광이 되리라
2023. 03. 14(화) 17:50 가+가-
文武評(문무평) - 석주 권필
書劍由來兩不成(서검유래양불성) 非文非武一狂生(비문비무일광생)
他年屠市應問我(타년도시응문아) 酒肆兒童摠識名(주사아동총식명)
글과 칼은 두 가지 다 이룰 수 없는 것
문도 아니요 무도 아닌 미치광이 되리라
훗날에 이름 물으면 다 아는 이름이라고.

삼국은 물론 고려와 조선사회에도 문무의 차별은 대단히 컸다. 문인은 앞을 차지했고, 무인은 그 뒤를 따랐다. 문인은 정치를 했고, 무인은 나라를 지켰다. 문인은 임금의 주위에서 섬김을 다했지만, 무인은 국방의 의무만 충실하게 잘하면 됐다. 시인은 이런데 착안해 나라를 우지좌지한 문(文)과 무(武)을 생각했으리. ‘훗날 시장가에서 나에게 이를 묻는다면, 술집 거리에 다닌 아이도 다 아는 이름이라 말하리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나는 문(文)도 무(武)도 아닌 한 미치광이가 되리라’(文武評)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석주(石洲) 권필(1569-1612)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죽창 구용과 같이 대궐에 나아가 상소를 올려 화의를 주창했다. 임금에게 아첨한 정승 두 명의 목을 벨 것을 요청했으므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의 시기를 받아 이미 많은 사람의 눈 밖에 났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글과 칼은 두 가지 다 이룰 수 없는 것이지 / 나는 문(文)도 무(武)도 아닌 한 미치광이가 되리라 // 훗날 시장가에서 나에게 이를 묻는다면 / 술집 거리에 다닌 아이도 다 아는 이름이라 말하리’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문(文)과 무(武)를 평하다’로 번역된다. 봉건전제주의 사회에서는 양반과 서얼이 존재했다. 양반(兩班)은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으로 나누면서 문무의 구별이 엄격했다. 문반은 사대부로 제일의 반열에 두는가 하면, 무반은 다음의 반열에 두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선호하는 직책은 무반 다음에 두는 중인 혹은 여항(閭巷) 계열에 끼웠다.

시인은 이런데 착안해 문무가 분명한 빗금을 그어놓고 넘나들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란 시상 주머니는 넉넉해 보인다. 글과 칼은 두 가지 다 이룰 수 없는 것일진데, 나는 문(文)도 무(武)도 아닌 한 미치광이 되리라는 몸부림의 한 모습을 만난다. 민주주의에도 서열은 있는데 전제주의 사회에서랴! 더 말할 필요 없겠지만, 그어진 서열의 선이 두터움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화자는 인권이 증대되고 서열 없는 훗날에 아낌없이 대답할 것이라는 발전지향적인 생각을 한다. 훗날 시장가에서 나에게 문무를 묻는다면, 술집 거리에 떠돌아다니는 아이들도 다 아는 이름이라고 말하리라고 했다. 오늘날의 시대와 비교해 보면 선진적인 생각이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書劍: 글과 칼. 由來: 연유다. 유래한다. 兩不成: 두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非文非武: 문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一狂生: 한 미치광이가 되다. // 他年: 훗날. 다른 날. 屠市: 시장가. 應: 응당. 問我: 나에게 묻다. 酒肆: 술집 거리에 다닌. 兒童: 아이들. 摠識名: 모두 다 아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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