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12)박세정
1960-80년 반독재 투쟁 청춘 바친 민주열사
4·19때 민주화운동 시작…함석헌 씨알농장서 사상 넓혀
장준하 경호수행…전국에 5·18 대학살극 알려 모진 고초
2022. 08. 08(월) 20:43 가+가-

박세정(82)씨는 4·19때 반독재 시위를 시작한 후 김구의 비서였던 장준하를 보좌·경호했고, 5·18민주화운동의 대학살극을 전국에 알렸다. /오복 기자

“청년들의 반독재(민주화)투쟁은 순수하고 치열했으며, 격렬했다.”

박세정(82)씨는 1960년 격동의 시기 에 고려대 학생들과 청계천을 돌면서 반독재 투쟁을 시작했다.

그 당시는 강진 출생 박씨가 중학교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와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대학교 청강을 하던 때였다.

그는 3·15부정선거가 터지자 서대문로타리에서 부통령인 이기붕의 집을 찾아가 이승만 ‘독재 12년’을 부수자고 청년들과 함께 민주화를 외쳤다.

4·19혁명 이후 박씨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진지역 후보였던 양병일씨의 지원 유세를 펼쳤다.

유세현장을 돌며 4·19현장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작전을 생생하게 증언했고, 양 후보를 당선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역사의식에 눈을 뜨면서 5·16쿠데타로 독재정권을 일삼았던 박정희 정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거룩한 희생을 ‘독재에서 독재로’ 더럽혔다는 생각에 그는 김구의 비서였던 장준하를 경호하면서 반독재 운동을 이어갔다.

박씨가 항일독립투쟁을 했던 장준하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 민족주의자이자 교육자인 함석헌과의 만남부터다.

그 시기 충남과 강원도 씨알농장에는 민주화 투쟁을 하던 청년들이 전국 각지에서 반독재를 외치면서 모여들었다.

중학교때부터 삼촌이 지니고 있던 사상계책인 함석헌의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보면서 자랐던 그는 더 깊은 사상을 배우고자 1965년께 강원도 고성군 씨알농장을 찾아갔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기독교를 근원으로 존재 권리를 억압하려는 것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행동하고 참여하는 ‘비폭력적 행동의 철학’이다.

1972년 가을께 함석헌의 집에서 장준하와 인연을 맺고 이듬해 2월 총선때 장준하 후보를 위해 투표소에 참관인으로 들어가 부정선거 증거들을 수집하고 모았다.

그는 다져진 무예와 체력을 바탕으로 이후 1975년까지 장준하를 보좌하면서 경호를 수행했다.

박씨는 당시 선거운동을 했던 시기를 일생에서 가장 가슴아린 순간으로 기억했다.

그들의 선거는 초라했고, 청년들은 열정으로 가슴이 뜨거웠다.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위해 모인 청년들은 장준하가 상해에서 김구에게 받은 피로 얼룩진 태극기를 싸구려 여관방에 걸어 넣고 반독재와 민주주의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이 때문에 사법당국의 감시와 견제를 받았고 중앙정보국에 끌려가 모진 고문도 당해야만 했다.



장준하 보좌 시절부터 수배령이 내려졌던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됐고, 1973년 현상금 100만원(1계급 특진)이 걸린 요주의 인물이었다.

1975년 박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병가를 받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인권변호사 홍남순, 윤철하 변호사 등을 통해 민청학련에서 갓 석방된 광주 운동권인 김정길, 이강, 김남주 등과 접선했다.

그들은 카프카 서점과 봉심정에서 4·19관련 사회과학 서적들(금서)을 독재정권 종식을 위해 매일 읽고 토론했다.

형사들의 미행과 감시가 심했기에 비밀 아지트인 봉심정으로 모이기 일쑤였다.

야산에 있는 봉심정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여야 했다.

당시 봉심정은 북과 장구 소리, 풍물패, 토론, 논의, 강의 등을 하는 학생들로 항상 북적였다.

‘짓밟힌 민중을 세워야 한다’는 일념 하에 윤강옥, 나상기, 최철, 박몽구, 박석면, 전용호 등 광주 학생운동권들은 서로 하나의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었다.

그 곳에서의 토론은 격렬했고,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눠져 격론이 펼쳐지기도 했다.

1980년 5·18 조짐이 일자 그는 도청 앞에 횃불을 들고 모인 민중들과 함께했다.

박씨는 폭력사태로 얼룩진 현장을 누비다가 윤강옥의 부탁을 받고 광주를 벗어났다.

그 부탁은 광주의 대 학살극을 전국에 널리 알리자는 것이었고,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박씨는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 운동권에선 이미 광주정보를 취합하고 있었고, 그는 힘을 합쳐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유인물을 만들어 서울에 뿌렸다.

이후 대전에 이어 부산에서도 양성철 사범과 등사판을 한 장 한 장 밀어 매일 2-3천장씩 시내버스 지붕 뚜껑을 열어 날리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부산에 온 지 일주일께 박씨와 양 사범의 대화를 들은 집주인의 신고로 계엄사령부 부산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간다.

그의 혐의는 김대중을 도와 내란음모를 꾸몄다는 ‘국가분란’ 이었다.

지하실의 고문은 치욕스럽고 버텨내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5·18은 빨갱이 사건이다’라는 폄훼를 견디기 버거웠다.

그는 이로 인해 5번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박씨는 봉심정에 대해 “반독재 투쟁의 공간이자 민주주의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매진했던 해방구”라고 평가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모든 민주열사들은 한 번씩은 봉심정을 드나들었다는 점에서 공간과 역사적 의미가 크다”면서 “끊임없는 애정과 헌신으로 민주열사들을 지켜낸 봉심정의 어머니(김정길 母 장매남 여사) 역할도 컸다”고 말했다.

장 여사에 대해 박씨는 “가난한 살림에도 단 한번도 봉심정을 찾는 이를 배 곪게 한 적이 없다”면서 “징역쟁이 등 모욕적인 발언을 들을 때에도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놈들 이라면서 민주열사들을 반겼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봉심정이라는 장소에서 수 없이 민주화를 위해 노력 했던 많은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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