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10)이재의
“민주화 운동은 숙명…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무거워”
전남대 서클 루사·전남대총학생회 비밀 기획실 지도·운영
회보·넘어넘어 등 기록물 작성…“봉심정, 민주주의 자양분”
2022. 07. 18(월) 20:16 가+가-

이재의는 전남대 사회과학서클 루사 회장을 맡아 후배양성과 민주 인식화에 힘쓰고 전남대총학생회 비밀 기획실에서 회보를 만들고 운동 방향을 기획했다. 아래 사진은 1976년 이재의(맨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와 오재일, 박기순, 조양훈 등 루사 회원들. <이재의 제공>


“루사는 누구의 강요도 아니다. 단지 젊다는 것. 우리의 삶이 한반도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 동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고 싶다는 것, 좀 더 인간적인 것을 원한다는 것 등 몇 개의 동질적 요소만이 존재 근거이다.”

1975년 전남대 사회과학서클 루사에서 만든 회보의 일부 발췌문이다.

이재의(66)씨는 전남대 경제학과 75학번으로 루사 서클의 회장을 맡아 후배양성과 민주 인식화에 힘쓰고 전남대총학생회 비밀 기획실에서 회보를 만들고 운동 방향을 기획했다.

이씨가 반유신과 민주화운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친형인 이평의씨에 의해서다.

광주고 재학생이던 시절 이씨의 친형인 평의씨는 함성지 사건으로 연행됐고, 그는 매일 함성지 사건 재판을 방청하며 이강, 김남주, 김정길, 이황 등과 만남을 갖게된다.

친형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연좌제로 빨갱이 낙인과 생활고를 겪으면서 사회운동에는 절대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해봤지만 그는 숙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75년 긴급조치가 본격화 된후 대학생은 일절 모임이 허용되지 않았고, 10명이내의 서클활동 또한 담당지도교사의 참석 아래 이뤄졌다.

모든 것이 감시되는 숨막히는 생활 속 친구의 추천으로 전남대학교내 방송국 기자를 시작한다.

민감한 이슈들이나 정치문제는 일절 언급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의 자율 보장을 위해 그는 동료와 함께 점심시간 10분동안 검열없는 방송을 진행했고 중앙정보부에 의해 방송국 기자직은 내려놓아야 했다.

이후 그는 전남대 오재일씨가 후배양성을 목적으로 만든 사회과학서클인 루사에 들어가 회장직을 맡는다.

그는 단과대 우수학생을 중심으로 신입생을 대거 모집했고, 76년 40-50여명이 모여 활성화 조직으로 거듭났다.



이들은 밤낮없이 사회과학과 경제, 사회, 역사 등을 토론하고 회보를 만들었다.

회보제작은 모험적인 일이었다. 회보를 만든다는 것만으로 보안당국에 끌려갈 수 있었지만 그는 프랑스 혁명기 전야에 고민했던 젊인이들의 고충을 담은 송년호 등 4차례에 걸쳐 ‘황지’라는 회보를 만들었다.

이씨는 ‘현체제에 대한 무력 저항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다는 생각으로 지식을 모아 싸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도와 토론, 공부에 매진했다.

이때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했던 그는 봉심정 주요인사들과 접촉한다.

김남주, 이강, 김정길씨 등을 찾아 한층 깨어있는 정보와 지식을 전수받았다.

이씨는 루사 친구였던 조양훈, 박기순과 토요일 오후 방문했던 봉심정은 외딴 곳으로 밭두렁과 산길이 험했다고 기억했다.

봉심정은 사회적 감시를 피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고 당시 서클 활동 후배들은 서로 가고 싶다고 떼를 쓸 정도였다.

한번 방문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반나절 이상 토론과 강의가 이어졌다.

심도있는 내용과 사회운동의 방향을 제시받을 수 있는 그곳은 녹두서점이 생기기 전까지 광주권 모든 민주인사들의 아지트이자 지식의 자양분 역할을 했다.

군입대후 79년 제대하고 복학하자 전남대에는 독서잔디, KSCF, 탈춤반, 야학, 연극패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운동 서클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10·26독재종식으로 그 열기는 고조됐고 전남대에는 박관현 총학생회장을 필두로 학생회가 꾸려졌다.

하지만 70년대 축적되어온 운동역량을 결집시키고 동력화 하는데 어려움이 따랐고 이씨는 선배들의 부탁으로 비밀리에 전남대총학생회 비밀 기획실에 들어간다.

그는 전국의 정보를 취합하고 학생회의 방향을 잡는 역할을 했다.

당시 내부 대학의 소리라는 지하유인물을 만들고 백업용인 제2의 학생회를 꾸려 대비하기도 했다.

당시 사용하던 가리방(유인물 제작 도구)은 5·18 당시 투사회보 제작에도 사용됐다.

80년 5월 대부분의 학생회와 재야인사는 남민전 구속, 예비 검속, 피신으로 활동할 수 없었고 이씨는 드러나지않은 활동을 지속했기 때문에 18-27일까지 녹두서점을 찾고 송기숙 교수 등 시위대와 정보교환, 투쟁방향 논의 등을 진행했다.

5월22일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만난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외신기자 노먼소프와의 인터뷰를 그는 선명하게 기억했다.

노먼소프(左)와 이재의


노먼소프의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씨는 “우리가 만든 일이 아니다. 군인이 와서 학살을 자행했고 가만히 앉아 죽을 수 없는 우리는 저항하고 있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말살하는 과정이고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고 당차게 말했다.

최후 항쟁 후 10월까지 시민들에게 보내는 호소 유인물을 만들던 이씨는 유인물 제작 혐의로 보안당국에 붙잡혔다.

이후 그는 85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최초 기록했다.

기록작업은 전국민주주의청년협의회 의장이던 정상용에 의해 실행 시작됐지만 이씨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과 윤상원 선배의 죽음 등 복잡한 감정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목숨을 걸고 해야하는 일이라고 다짐했다.

‘넘어넘어’는 정용화, 조봉훈, 김상집, 전용호 등 10여명이 백방으로 노력해 이뤄낸 역사의 기록이다.

이재의가 만든 '넘어넘어' 초판과 기록수첩.


책은 성공적으로 출간됐고 전국으로, 세계로 진실을 알릴 수 있었다.

이씨는 “5·18은 70년대 축척된 역량으로 이뤄졌고 짧은 사건으로 정의하는 것은 단견”이라면서 “15여년의 싸움 끝에 민주화 운동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까지 원천적으로 한 방향이다”고 말했다.

이어 “봉심정은 사회변화에 한줄기로 참여할 수 있는 산파 역할을 했다”며 “민주화의 과도기에 70년대 모든 민주인사들이 모여 꽃을 피우기 전 자양분을 공급받은 곳인 봉심정은 보존되고 가치가 계승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사 회보


/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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