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에서] 윤석열, 윤대통령, 5·18
2022. 05. 19(목) 19:36 가+가-

김종민 논설실장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이전의 보수정권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맞은 5·18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사에 주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에도 완결하지 못한 ‘헌법 전문 수록’이 가능할지 기대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항거를 기억하고 있다. 그날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우리는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다.”(2022년 5월18일)

윤 대통령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며 굳건한 의지를 나타냈다. 최대 관심사인 헌법 전문에 대한 직접 언급이 없었고, 뒤늦게 시작한 진상규명에 대한 표현도 빠졌지만 진심을 믿어야 할까. 윤석열은 1980년 신군부 쿠데타 발생 당시 19살의 대학 1학년, 나름으로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는 옹골찬 청년이었다. 알려진 대로 서울대 법대 5·18 모의형사재판에서 전두환에게 ‘헌법을 침해한 중대범죄’라며 사형을 구형한 의혈 법학도인 그여서다.

검복을 벗은 정치인 윤석열의 약속은 이랬다. “3·1운동이나 4·19 정신에 비춰 5·18 정신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숭고한 정신이기에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로 전혀 손색이 없다.”(2021년 7월17일)

메시지는 분명했다. “5·18 정신은 곧 민주주의 정신이므로 헌법전문에 반드시 수록돼야 한다. 광주의 아픈 역사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고, 광주의 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꽃 피웠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5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다.”(2021년 11월10일)

“오월 정신이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5월 정신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오월 정신은 항거 정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국민통합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2022년 2월6일)

대선 후보 시절 유세에서 윤석열은 전두환 미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2021년 10월19일)

당선 후에도 그랬다. 초대 내각 인선에서, 비서실, 차관급까지 능력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으나 자신을 따르는 측근을 기용하는 모양새가 됐다. 광주·전남 패싱에 지역 민심이 들끓었고 ‘공정과 상식’이라는 국정 철학도 무색해졌다. 게다가 국정과제에는 가장 핵심이라 할 5월정신의 헌법 수록이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5·18기념재단의 인식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이 동의했다. 윤 대통령은 헌법 개정은 국민적 합의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를 들어왔다. 그럼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참에 호기를 살리지 못한다면 지금껏 5·18을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절묘하게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이 꼬집는 표심잡기용이나 할리우드 액션이 되는 것이다.

5년 전 5·18 37주년 기념식장,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 ”(2017년 5월18일)

다음해 2018년 3월, 개헌안이 발의됐다. 현행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를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수정하는 내용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투표수가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하는 ‘불성립’으로 중도 무산됐다.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논의는 1987년부터 이어졌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개헌안에 포함됐지만 합의 과정에서 삭제된 후 20년 동안 묻혔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원포인트 개헌 추진 역시 흐지부지됐으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쳐 10년 후인 2017년 문 대통령 대선 공약에 반영한 후에도 진척을 보지 못했다.

“헌법 전문에 5·18을 새기는 것은 5·18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언젠가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그 뜻을 살려가기를 희망한다.”(2020년 5월18일)

광주의 바람이다. 국민적 요구다. 시대적 요청이다. 국민 통합을 위한 제1 조건이다. 보수 정권이, 여당 국민의힘이 추진하겠다는데, 거대야당 민주당으로서야 마다 할 이유가 없다. 국회 통과는 무난한 수순이다.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한 초당적 협치가 가능하다. 국민투표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5·18은 광주시민들의 저항과 참여, 연대의식으로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받는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로서 헌법적 당위를 지닌다. 헌법 수록은 윤석열이라면 쉽게 풀어낼 과제다. 광주는 임기 시작 첫 걸음이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마음을 다해 다가서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문이 남아선 안 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해야 한다.

아직 5·18의 진실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도 이뤄지지 않았다. 헌법 전문 수록은 대한민국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회복하는 주춧돌을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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