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1)함성지 사건
‘군사독재 반대’ 전국 최초 ‘반유신 저항운동’
김정길 사회과학 서클 결성…정권 감시 피해 봉심정서 합숙
이강·김남주 등 지하신문 제작 살포…광주 저항세력 규합
2022. 05. 11(수) 23:57 가+가-

김정길과 이강이 첫 만남을 가졌던 전남대학교 인문대 등나무 벤치(왼쪽)와 ‘김남주 뜰’ 앞 기념석. 전남대학교는 김남주의 저항정신을 기리기 위해 2020년 ‘김남주 뜰’을 조성하고 기념석에 함성지 사건을 기록했다./오복 기자

광주시 남구 봉선동 제석산 자락에는 ‘봉심정’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다. 이곳은 1970년대 광주·전남의 민주인사들이 서슬 퍼런 군사정부의 감시를 피해 모여서 민주화운동을 토론했던 사랑방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는 봉심정의 가치와 의미를 집중 보도한다. /편집자 주

“자유의 적에 끝까지 항거하고 피로써 투쟁하는 육신으로 혁명할 것을 선언한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독재를 위해 유신헌법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파기한 계엄령을 공포한 가운데 전국이 말살정책으로 조용했던 1970년대 초반 전남대학교를 주축으로 반유신 광주 사회운동이 태동했다.

함성지 사건은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반유신 저항 운동이 광주에서 시작됐다는 것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69년 봉심정의 관리를 맡은 스무살 김정길은 독재에 대한 저항과 더불어 민주주의 활동을 시작하면서 김남주와 이강을 만났고 1971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에 들어가 사회과학서클을 만들었다.

김남주는 이후 봉심정에 기거하며 죽마고우였던 이강과 함께 유신반대를 논의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

이강(당시 25세·전남대 법학과)과 김남주(당시 26세·전남대 영문과)는 1972년 반유신 지하신문인 ‘함성’과 ‘고발’을 만들어 12월9일 아침 광주의 여러 대학과 고등학교에 살포했다.

이들은 1973년 3월에 다시 지하 유인물을 뿌리고 이는 ‘함성지 사건’이라 불리며 광주의 저항세력이 규합되는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와 그 주구들은 권력에 굶주린 나머지 종신집권 야망에 국민의 눈과 귀에 총부리를 겨누었으며…(생략) 자학과 어두움 속에 허탈에 빠진 언론, 문화인, 청년학생, 시민이여! 우리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가.”

이는 법원 판결문 일부 발췌에 의해 남겨진 함성지에 기록된 문구다.

하지만 유신체제는 12월23일 예정된 체육관 선거(간접 선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함성지 사건을 철저히 은폐했다.

이후 1973년 3월 이강은 제2의 함성지인 ‘고발지’를 인쇄해 서울에 기거하던 김남주에게 보냈으나 당시 김남주의 행적을 주목하던 당국에게 적발돼 이강, 김남주, 박석무 등 전남대 반유신 활동가와 지인들은 수괴로 지목돼 체포됐다.

제2의 함성지 고발지에는 “자유의 적에 대하여는 끝까지 항거하고 피로써 투쟁하는 육신으로 혁명할 것을 선언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후 함성-고발지 사건으로 지목받은 관련자 15명 중 이강, 김정길, 박석무, 김남주, 이황, 이정호, 김용래, 이평의, 윤영훈 등 9명은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전남대학교 학생운동가였던 교내 서클 활동가들은 1973년 반유신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고 체포된 9명은 한 달간 모진 고문을 당했다.

당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적용받아 기소된 박석무·이강·김남주에 대해 공소사실에는 ‘학생들을 유인 및 선동하기 위해 지하신문을 발간했고, 비상계엄에 대한 비판과 함께 4·19적 혁명을 위한 반국가단체를 구성해 일당 독재와 장기집권을 전복하기 위해 음모, 한국민권협의회 의름으로 ‘함성’이라는 제하의 잡지를 발행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문서를 제작함과 동시에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한 집단을 구성하기를 촉구했다’고 기재돼 있다.

이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홍남순 변호사와 함석헌 등 재야인사들이 대거 관여해 서울의 많은 학생들이 광주에 내려가 방청했고, 재판은 반유신·반정부의 토론장으로 변했다고 전한다.

1973년 12월27일 항소심 재판부는 박석무에게 무죄를, 이강, 김남주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들은 석방됐으며 전남대 학생 50여명이 플래카드를 든 재학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 재판은 훗날 배포되지 못했던 녹두, 함성, 고발이란 유인물의 존재와 반유신 광주 사회운동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는 1971년 박석무가 만들어 전남대 내 살포했던 ‘녹두’라는 지하유인물을 다시 세상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고 녹두지를 읽었던 세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이 돼 ‘녹두대’로 항쟁 선봉장 역할을 맡게 됐다.

결국 함성지 사건은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신호탄으로, 이후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서막이 열렸다.

/오복 기자
오복 기자
많이 본 뉴스
  1. 1
    성범죄로 수사받는 교원 다시 증가

    올해 7월 기준 전국의 초중등 교원 중 성범죄로 수사를 받은 인원이 코로나로 등교 수업이 중단되던 2020년…

    #정치
  2. 2
    배추 1포기 1만500원 ‘金추’…소비자·상인 ‘한숨’

    “쌈 채소로 배추는 꼭 챙겼는데, 이제 엄두도 못 내요. 김장 준비도 해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경제
  3. 3
    ‘충장축제’ 월드페스티벌로…‘꿀잼도시’ 첫걸음 뗀다

    광주시가 충장축제 세계화를 위해 ‘제19회 추억의 광주충장 월드페스티벌-제1회 버스커즈 월드컵 in 광주’ …

    #정치
  4. 4
    道, ‘에너지신산업 혁신특구’ 유치 잰걸음

    전남도가 나주 혁신도시의 에너지신산업 규제자유특구를 세계화·고도화하고 특구 성과를 확산하기 위해 정부의 관련…

    #정치
  5. 5
    농지연금 지역간 지급 격차 최대 3.2배

    고령 농업인의 노후생활 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농지연금’ 가입자 3명 중 1명이 중도 해지했으며, 지역간 지…

    #정치
  6. 6
    “쌀값 안정화 추가 조치 내놔야”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26일 전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올해 수확기 구곡과 신곡 총 …

    #정치
  7. 7
    尹대통령, 비속어 논란에 “사실과 다른 보도”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뉴욕 방문 기간 불거진 이른바 ‘비속어 논란’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없이 “사실과 다…

    #정치
  8. 8
    市, 대형 판매시설 긴급 안전관리 실태 점검

    광주시는 26일 “아울렛, 백화점 및 대형마트 등 대형 판매시설 22개소에 대한 안전관리 실태를 27일부터 …

    #정치
  9. 9
    광주시, 주거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

    광주시가 지하 또는 반지하에 주소를 둔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주 희망 세대를 대상으로 …

    #정치
  10. 10
    ‘권역응급의료센터’도 수도권-지방 격차 심각

    중증 응급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 격차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

    #정치

기사 목록

광주매일신문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