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22)
과연 어느 봉우리가 가장 먼저 붉어지는가를
2021. 08. 03(화) 19:03 가+가-
送人楓嶽(송인풍악)
독곡 성석린

일만 이천 봉우리 높낮이 갖지 않고
그대는 보아라 해가 높이 솟아오르면
어느 곳 가장 먼저서 붉는지 보아라.
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
일만이천봉 고저자부동
君看日輪上 何處最先紅
군간일륜상 하처최선홍

금강산은 명산이다.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도했고, 선현들은 이곳에서 많은 시상을 일궜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蓬萊), 가을에는 일만 이천 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므로 ‘풍악’, 겨울이 돼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이라고들 했다. ‘금강산의 일만 이천봉우리는 / 저마다 높낮이가 스스로 같지 않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과연 어느 봉우리가 가장 먼저 붉어지는가를’(送人楓嶽)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1338-1423)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처음엔 문하평리로 임명됐고 이성계 등과 함께 공양왕을 내세운 공으로 찬화공신이 되기도 했다. 1392년 조선 개국 후 이색, 우현보 일당이라는 이유로 외지로 유배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마다 / 저마다 높낮이가 스스로 같지 않다네 // 그대는 금강산에 가서 한번 보시게, 해가 불쑥 솟아오르면 / 과연 어느 봉우리가 가장 먼저 붉어지는가를]이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풍악으로 사람을 보내면서]로 번역된다. 금강산을 두고 사사의 별칭이 있는 가을 산은 풍악(楓嶽)으로 알려진다. 봉우리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모두 똑같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 해가 불끈 솟아오를 때 제일 먼저 햇빛을 받는 것은 역시 제일 높은 봉우리다. 높은 인품, 뛰어난 역량, 그런 학식과 인품을 두루 갖춘 사람을 뜻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인간의 깊은 내막을 생각하면서 그 정도가 다 같지 않다는데 착안하여 일으킨 시상임을 알게 한다.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가 있다고 하는데, 저마다 높낮이가 스스로 같지 않다고 했다. 재주가 있는 사람은 먼저 우뚝 솟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나, 아니면 재주의 정도에 따라서 그 빛을 보지 못할 것을 은근하게 내비치는 시상이다.

화자는 금강산의 정취를 흠뻑 느껴 보라는 당부를 한다. 그대는 금강산에 가서 보시게, 해가 불쑥 솟아오르게 되면 [과연 어느 봉우리가 가장 먼저 붉어지는가를]이라고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을 실감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높낮이가 같지 않네. 해가 불쑥 솟게 되면 어느 봉이 먼저 붉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一萬二千峰: 일만 이천 봉. 금강산의 봉우리 숫자로 알려진다. 高低: 높낮이. 自不同: 스스로 같지 않다. // 君看: 그대는 보시라. 日輪: 해 바퀴, 즉 바퀴같이 둥근 해. 上: (금강산) 위로. 何處: 어느 곳. 곧 어느 봉우리. 最先: 가장 먼저. 제일 먼저. 紅: 붉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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