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15)
가슴 속엔 불평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겠네
2021. 06. 09(수) 19:19 가+가-
夜臥誦詩有感(야와송시유감)[2]
읍취헌 박은
늙은 종재를 털어 등불은 환해지고
아내는 술을 퍼와 주객에게 권하는데
얼큰해 누워서 자니 불평을 모르겠네.
老婢撥灰明兀兀 孺人把酒勸卿卿
노비발회명올올 유인파주권경경
醉來捉被還高臥 未覺胸中有不平
취래착피환고와 미각흉중유불평

시상은 가만히 누워 있다고 불현듯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누워 있다가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나면 시심의 요동은 하늘을 나는 듯이 했다. 이제는 시지(詩紙)도 필요 없고 그저 중얼거리며 머릿속으로 외워 담으면 시(詩)가 되고 정(情)이 됐으며, 음(音)이 되고 율(律)이 됐다. 여기에 한 줌씩 맞추는 장단은 제격을 이뤄 흥을 돋웠을 것은 뻔하다. ‘늙은 종이 재를 털어 등불은 환해지고, 아내는 술을 퍼와 내게 권한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가슴 속엔 불평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겠네(夜臥誦詩有感2)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읍취헌(邑翠軒) 박은(朴誾:1479-1504)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다. 1496년 조정에서 문학의 선비를 발탁해 휴가를 줘 용산의 독서당에서 학문을 익히도록 했다. 그 선발에 뽑혀 홍언충과 같이 사가독서했다 한다. 당대에 여러 대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늙은 종이 재를 털어 등불은 환해지고 / 아내는 술을 퍼와 내게 권하구나 // 술이 얼큰해져 이불을 덮고 다시 높이 누웠으니 / 가슴 속엔 불평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겠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밤중에 누워 시를 읊다 느낌이 있어2]로 번역된다. 전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상을 일으켰다.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해서 읊조리자니 / 마구간에 마른 말도 더욱 길게 우는구나 // 밤이 깊어 가는 달이 초승달이려니 생각하며 / 고요한 산 찬 소나무는 절로 소릴 내어 울구나]라고 했다. 경치구로 덧칠한 시상을 보지만, 심회가 극명하게 표현됐다.

시인이 잠을 청하지 못함을 알아차린 늙은 종과 아내는 다른 각도에서 위로하며 같이하는 모습을 보인 시상이다. ‘늙은 종이 재를 털어 등불은 환해지고, 아내는 술을 퍼 와서 술을 권하구나’라고 했다. 부산떠는 집안 식솔들의 모습에서 한 가장의 역할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게 된다.

화자는 늙은 종과 아내의 도움을 받아 한 잔을 하고 나니 마음의 근심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됐음이 후정에는 무르녹아 나온 시상이다. 얼큰해져 이불 덮고 다시 높이 누웠으니 / 가슴속의 불평과 근심이 있었던가를 깨닫지 못하겠다고 했다. 시인이 살았던 질곡의 삶과 투철한 인생관이 여실하게 나타났고, 따라서 젊은 나이에 사사를 당했던 불운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한자와 어구

老婢: 늙은 종. 撥灰: 재를 털다. 明兀兀: 밝음이 우뚝하다. 孺人: 아내. 把酒: 술을 퍼오다. 勸卿卿: (술을) 공경하면서 권하다. // 醉來: 술이 취하다. 捉被: 이불을 덮다. 還高臥: 다시 높은 침상에 눕다(잠을 청하다). 未覺: 아직 깨닫지 못하다. 胸中: 가슴 속에. 有不平: 불평이 있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많이 본 뉴스
  1. 1
    [김경수의 광주땅 최초 이야기](24)전기시설

    19세기에 시작된 전깃불은 20세기 석유시대를 거쳐 21세기 전력혁명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5년 전 옥상…

    #김경수의 광주땅 최초 이야기
  2. 2
    전남, 학교·학원 등 ‘연쇄감염’ 잇따라

    광주·전남에서 일상생활 접촉과 학교·학원 등 교육시설을 중심으로 한 연쇄감염이 잇따르고 있다. 14일 …

    #사회
  3. 3
    文대통령 “초광역협력이 균형발전 핵심 정책”

    문재인 대통령이 광역시·도간 ‘초광역협력’을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정책으로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14…

    #정치
  4. 4
    어등산 개발 방식 원점 재검토…소송전 비화 조짐

    광주 어등산 관광단지 개발 사업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광주시와 ㈜서진건설의 갈등이 또다시 법적 다툼으로 비화할…

    #정치
  5. 5
    15일 전남도 국감…최대 현안 ‘해상풍력’ 놓고 공방일 듯

    전남도 국정감사가 15일 도청에서 열린다. 이번 현장 국감에서는 광주·전남 행정통합, 광주군공항 이전…

    #정치
  6. 6
    서울서 2021 소금박람회 道, 천일염 우수성 홍보

    전남도는 해양수산부, 영광군, 신안군과 함께 14일부터 3일간 서울 올림픽프라자 야외 광장에서 전남산 명…

    #정치
  7. 7
    주말·휴일 기습 한파……일부 내륙 첫 서리 예보도

    이번 주말과 휴일 광주·전남에 첫 ‘기습 한파’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나들이객은 옷 차림에 각별히 신경…

    #사회
  8. 8
    “학동 참사 부실수사 강도 높게 추궁”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국회의원의 소명이라는 생각에서 이번 국감의 키워드를 안전으로 정했습…

    #정치
  9. 9
    김회재 “정부지원으로 배불린 대한항공, 사회적 책무 이행 강제해야”

    고용유지지원금 1천780억 지원 불구 비정규직 해고... 임원보수 늘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국회의원(여…

    #실시간 뉴스
  10. 10
    광주 ‘엔젤 투자 유치’ 전국 최하위

    창업 초기 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엔젤 투자’의 최근 10년간 광주 지역 유치액과 유치기업 규모가 …

    #정치

기사 목록

광주매일신문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