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수의 청담직필] 광주·전남의 자존심은 뭔가
2021. 02. 01(월) 19:42 가+가-

본사 사장·경영학박사

며칠 전 경제부 기자 시절 알게 된 광주 하남공단 소재 한 중소기업인을 오랜만에 만났다. IMF외환위기 직후 취재차 만난 이후 20여년 만에 조우였다.

당시 30대 후반이던 필자가 이제는 60대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대화는 자연스레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금형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고 지금의 안정된 궤도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갖가지 사연들을 주마등처럼 풀어냈다.

그 가운데 오래전 그가 제안해 광주금형센터가 설립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광주가 여전히 경제적 낙후를 탈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자칫 지역소멸의 늪으로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그가 제안한 여러 가지 산업발전 방안들이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묻혀버린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그 많던 ‘깡’은 어디로 갔나
이어 그는 문득 “광주의 자존심은 뭘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가 사업차 자주 들르는 경북 구미 기업인들은 금오산(해발 977m)을 자존심의 상징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구미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 더욱 자긍심이 남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광주의 자존심은 무엇인가. 그간의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무등산(해발 1,187m), 5·18민주화운동, 금남로가 광주의 상징으로 꼽혀왔다. 사전에는 자존심을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지역의 자존심은 지역의 정체성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볼 때 그 함축적 의미가 크다.

특히 지역간 경쟁을 하거나 외부로부터 위기감이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지역자존심 혹은 지역정체성이 발현되기 마련이다.

예로부터 광주다움은 ‘깡’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깡’이란 강철을 구어적으로 이르는 말, 뇌관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된다. 또한 악착같은 기질이나 힘을 말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맨손뿐인 전라도 사람들이 서울이나 부산 등 객지에서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억척스러움 없이는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신 역시 ‘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 납치되었다가 생환한 것도, 5·18 내란선동 죄목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3번의 고배 끝에 대권의 꿈을 이룬 원동력도 ‘깡’이었다. 그래서 그 ‘깡’은 전라도의 상징이 되었고 독특한 기질을 지역의 자존심으로 간직했다. 호남의 정체성과 응집력의 원천이 바로 ‘깡’인 것이다.

조만간 설 이후 서울시장선거와 대통령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면 ‘광주의 자존심’이 작동할 것이다. 이미 지역출신 몇몇 국회의원들은 나름의 논리와 정의로움을 앞세워 ‘광주의 자존심’을 대변해줄 인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일부 잠룡들은 이러한 기류를 틈타 ‘광주의 자존심’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발품을 팔고 있다. 이들 잠룡들은 너나할 것 없이 무등산과 5·18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겠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목청을 높이고 있다.

-변방의식을 버려야 산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의 마음은 아직은 부처님이다.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속마음을 오래전부터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중심에 놓고 행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다시 서두에 언급한 한 중소기업인의 대화내용을 옮겨본다.

“과거 어느 정치인이 ‘광주자동차 100만대 생산시대’를 선언했지만 화려한 구호로 그치고 말았다. 지금 빛그린산단에 추진중인 광주형일자리는 조립공장에 불과하다. 광주가 자동차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엔진과 전장부품 등 고부가가치 부품생산 기반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 명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내년 3월 대선에서 전라도가 변방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깡’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깡다운 깡’이 보이지 않느다. 그 많던 ‘깡’은 어디로 갔는가. 내 비위와 잘 맞지 않는다고 내팽개칠 수 없는 게 고향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그런 거다. 죽어도 꽥소리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은 누가 진정한 ‘깡’의 소유자인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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