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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주민자치지도자 리더십
서순복
품질자치주민자치 시민들 대표회장·조선대 법대 교수

2020. 11.22. 18:26:17

나라가 위기다. 거시적으로 코로나 펜데믹으로 경제뿐만 아니라 마음도 위축되었다. 미시적으로 사람들간에 불신이 커지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는 지금 위험이 상시화된 시대에 살지 않나 싶다. 어찌 보면 우리는 위험사회, 피로사회에서 살고 있다. 위기 때는 리더를 생각하게 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이순신 장군이 살아서 마을의 주민자치회 회장을 한다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발칙한 역사적 상상을 감히 해본다. 대통령도 퇴임하면 자신이 살았던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을 위해 함께 봉사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은 모두 자치지도자이다. 400여년 전 일본이 침략의 마수를 펼쳐 조선 강토를 침탈할 때 속수무책이었다. 20여일만에 수도 한양이 함락되었다. 그러나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었다.

한산섬 달밝은 깊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깊은 시름에 잠겼던 이순신이었다. 주민자치 지도자는 마을공동체를 향한 고민이 없을 수가 없다. 나이들어 가장 보람된 일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떨 때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가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도자는 솔선수범한다. 시인 역시 시대의 아픔을 먼저 알고 늦게까지 아파한다. 그만큼 잠못 이루는 밤이 있다.

보성 열선루에서 이순신은 선조가 보낸 선전관 박천봉에게서 조선 수군이 미약하니 육군에 의탁해 싸우라는 수군 폐지 내용이 적힌 유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장계를 올리고 바다로 나가 결국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130척의 왜선을 맞아 13척(녹도만호가 1척을 구해옴)의 배로 대승을 거두었다.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이 투옥됐을때 당시 새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해 12척 배만 남은 것이다.

이순신에게 남은 12척의 배를 마을에 적용하면 마을자원조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을에 있는 부존자원을 샅샅이 조사해서 그 가능성을 최대화해야 한다.

삼각동 주민들은 7-8년전 불법 쓰레기와 악취가 풍기는 하천부지, 버려진 땅을 함께 일궈 바람개미 텃밭을 조성해 상추나 배추 무 등을 솎아 같이 쌈도 싸먹고,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로 김장을 해 이웃과 나눌 생각을 했다. 마을의 사정은 마을주민이 제일 잘 안다. 마을의 유휴자원이나 손을 대면 대박이 날 자원을 주민이 잘 안다.

원칙주의자였고 군율에 엄격햇던 이순신은 막걸리를 즐기고 주석에서만큼은 부하 장졸들과 허심탄회하게 어울렸다. 부하 장수 생일에 여러 장수들과 국수를 만들어 먹고 술도 취하도록 마신 후 피리도 직접 불면서 즐기다 헤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함께 활도 쏘고 종일 이야기를 하였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이순신의 진지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난중일기 을미년 4월4일). 부하가 상을 당해도 직접 문상을 했다고 한다. 통제사 시절 참모본부라 할 수 있는 운주당에서 부하장수들과 여러 의논을 하였고 모두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고 기록됐다.

또 이순신은 소속 수군을 전라좌수영에 모으고 전라도 수군의 경상도 해역 출동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토론을 통해 집단지성을 확보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마을지도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알려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열린 소통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필요한 정보 공유인바, 이순신은 정보가 상호 유통되도록 함으로써 신뢰가 구축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였다. 주민자치회 분과위원회나 마을총회 때 유념해야 할 일이다.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걸출한 이순신 한 사람보다도, 작은 이순신이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

광주매일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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