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주의를 향한 세번의 외침!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1987년 6월항쟁-2017년 촛불. 모두 대한민국 평범한 시민이 이뤄낸 한국민주주의 여정이었다. 한국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이 세 번의 대사건이 연이어 영화로 만들어져 영상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해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관객 1200만명을 돌파하며 전 국민이 광주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더니, 정초에는 영화 ‘1987’이 30년 전의 역사적 진실을 영상으로 살려내 울컥하게 만들고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 ‘1987’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닮은 영화다. 어김없이 독재 대통령이 등장하고 그에 맞서 격렬히 싸우는 시민과 학생이 등장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기꺼이 목숨 바친 이들을 기록하는 ‘기자’가 그 현장 안에 있다. 광주의 참혹한 현장을 목숨걸고 외국에 전한 위르겐 힌츠페터,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린 중앙일보 신성호기자, 뒤이어 물고문이 있었음을 밝힌 동아일보 윤상삼기자가 1980년, 1987년 우리와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기자였다. 요즘 언론이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한편, 5월의 진상, 6월의 시작, 최순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들은 다름아닌 기자였다.

영화 ‘1987’은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6월 항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슬프고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영화 ‘1987’에는 또 한 명의 영웅이 등장한다. 이한열!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져 숨진 이한열 열사는 지금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묻혀있다. 영화 덕에 요즘 그의 묘를 찾아 참배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1987년 6월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직선제 개헌과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던 이한열 열사는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투병 끝에 숨졌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돼 그해 6월29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초석이 됐다.

필자가 쓴 책 ‘전라도 천년의 얼굴-호남인물 150명’의 마지막 인물도 이한열 열사다. 민주열사 이한열은 1966년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서 이병섭씨와 배은심 여사 사이에서 2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협 직원인 부친 아래서 성실을 가르침 받았고 유가에서 말하는 ‘가전충효 세수인경’ 가훈을 항시 일지 않고 성장했다고 한다. 네 살 되던 해 가족을 따라 현재의 집인 광주시 동구 지산동으로 이사했다. 광주 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성중학교에 진학, 2학년때 5·18민주화운동을 접했다. 광주진흥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에 입학해서야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현장 비디오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대학생 이한열은 사회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느꼈으나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음을 알고 책을 통해 보충해나갔다. 돈만 생기면 사회과학 서적을 사 모았고 틈틈이 독서를 했다. 그러나 평범하게 시작했던 이한열의 대학생활은 그가 1학년초 사회과학 서클에 가입해 사회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면서 크게 바뀌었다. 1987년 5월 18일 경영학과 2학년 총회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키고 3인 준비위원의 한 사람으로 선출됐다. 준비위원으로 선출된 그는 총회 소집을 위해 ‘모이자 경영 86’ 등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학과 결속을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1987년 6월 9일, 1,000여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국민평화대행진(6·10대회)을 하루 앞두고 이 대회에 출정하기 위한 연세인결의대회를 마친 뒤,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은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7월 5일 뇌 손상으로 인해 심폐기능이 정지됨으로써 결국 사망하였다. 1986년과 1987년은 학계·문화계·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었던 때로, 1987년 5월 18일 박종철(朴鍾哲)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직후에 발생한 일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후 5일이 지난 7월 9일 ‘애국학생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학생·시민·정치인과 재야단체 회원 등 총 7만여명이 참석하였고, 시신은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묻혔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전두환정권은 국민들에게 더욱 깊은 불신감을 심어주었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을 번져나갔다. 이어 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여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이는 등 이른바 6월항쟁이 정점에 이르게 되자, 전두환 정권은 시국 수습을 위해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었던 노태우로 하여금 대통령 선거의 직선제 개헌을 발표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6·29선언이다.

오늘, 두 영화를 언급하며 이한열의 일대기를 다시 언급한 것은, 영화 ‘1987’을 보기전에 우리 모두 이한열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반성하기 위해서다. 1980-1987-2017의 힘은 진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데서 나왔다. 그 기억을 돕는데 그것을 기록했던 기자가 있었다.

영화 ‘1987’을 계기로, 곡성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사망한 영웅 이한열의 일대기를 다시 적어보면서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다. ‘당신의 희생 덕분에 군사독재정권의 종말, 촛불혁명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