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어머니들, 오늘은 함께 영화보러 갈까요?”

“영화제목이 뭔디?”

“1980 사북이랍니다.”

“사북?”

아무도 사북을 몰랐다. 그렇게 광주독립영화관으로 향했다.

‘1980 사북’은 다큐멘터리영화다. 멀리 저 아래 기차가 달리며 터널로 사라지는 자연풍광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쌓인 첩첩산중 강원도 정선의 산천이 웅장하게 펼쳐지며 오지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이 오신 우리마을’이라고 새겨진 고인돌같은 큰 바윗돌이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영화의 시작이다.

사북은 카지노와 강원랜드가 떠오르지만 그 당시에는 전국에서 가족을 데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사북 탄광으로 광부들이 이주했다. 마치 축사같은 여건의 열악한 주거시설에서 생활하며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가족을 위해 위험한 탄광에 들어갔던 광부들. 임금착취는 물론이고 1년에 200여 명이 일터에서 죽어도 산재보상도 받지 못한 광부들이 어용노조와 동원탄좌에 저항하며 일어난 노동쟁의에 전두환과 군부가 개입했다.

1980년 봄이다. 통제받던 언론은 광부들의 진실은 가리고 폭도의 프레임을 씌워 진실은 덮고 자극적인 사진의 신문은 전국에 배포된다. 전두환 쿠데타 시절이다. 인간의 시간이 아닌 짐승의 시간이 사북 광부공동체를 덮친다. 광부들과 그 아내를 끌고 가서 고문하며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동료들의 이름을 말하게 하고 또 그 이름을 찾아 붙잡아 고문하며 다른 동료의 이름을 말하게 하고…. 연쇄적으로 이웃을 서로 죽이고 싶은 원수로 만들어버리는 잔인한 과정, 45년이 되도록 대를 이어 화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 간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누가 원수인가? 인간이 저렇게 폭력적이고 잔인할 수 있는가? 국가폭력에 의해 서로를 향한 원망과 저주를 품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국가폭력으로 만신창이가 된 삶을 회복하는데 이 영화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정파와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관계를 알 수 있도록 연구자처럼 접근하는 방식이 객관적인 신뢰감을 준다. 두 시간 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만든 밀도 높은 예술성도 놀라웠다.

아무도 몰랐던 사북 광부촌에서 일어난 공동체의 아픈 이야기에 영화를 보면서 장소는 사북이지만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광주의 봄이 겹쳤다. 그 두 사건 뒤에 전두환의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광주는 1980년 5월 그 이후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광주를 방문하며 세워놓은 대통령 비석을 깨서 망월동 묘역 입구 바닥에 깔고 밟고 다닌다. 그러나 사북은 아직도 ‘대통령이 오신 우리마을’이라고 자랑스럽게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과거사의 진실에 다가가고 서로 치유하는 길의 물꼬를 튼 ‘1980 사북’ 영화를 함께 보며 우리가 국가폭력의 과거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잡고 연대의 마음으로 함께 했다. 이 영화에 용기있게 참여하고 영화로 제작해 주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진심으로 사죄할 일이 있다면, 사과해야만 그 다음 세상이 환하게 열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두환은 끝까지 사죄하지 않고 죽어버린 가장 불쌍한 영혼이다.

‘사북사건의 피해자들은 국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1980 사북 영화 마지막 장면에 떠 있는 한 줄의 문구다. 국가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