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구고속도로를 빠져나오니 지리산 마지막 봉우리 덕두산(1,150m)이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인월에 들어서자 지리산 품안에 든 것 같다. 인월은 지리산 북쪽 관문이다. 뱀사골을 찾을 때도, 백무동을 갈 때도, 칠선계곡을 향할 때도 인월을 거쳐서 간다.

인월면소재지를 지나 남원시 운봉면에서 흘러온 람천을 만난다. 덕두산 자락을 굽이굽이 흘러가는 람천은 남원시 산내면소재지에서 만수천을 만나 덩치를 키운다. 우리는 람천과 헤어져 만수천을 거슬러 반선마을로 달려간다.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며 흘러가는 만수천 물줄기가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행복하게 어울렸다. 계곡의 품격이 느껴진다.

산골짜기를 돌고 돌아 반선마을에 도착했다. 반선마을 앞에서 뱀사골계곡과 달궁계곡이 만나 만수천이 된다. 뱀사골은 지리산 주요계곡 중에서 경사가 가장 완만하고, 계곡을 바로 옆에 끼고 걸을 수 있는 계곡이다. 계곡의 경사가 급하지 않으니 폭포가 거의 없고 물이 고인 소(沼)가 많다. 뱀사골은 반야봉·삼도봉·토끼봉·명선봉으로 둘러싸인 깊고 깊은 골짜기다.

반선마을에서 반선교를 건너면 ‘지리산 뱀사골 탐방안내소’가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 뱀사골 탐방안내소 뒤편 산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반야봉(1,732m)에 이른다. 옛날에 산야초를 채취하는 심마니들이 다녔던 길이라 해서 심마니능선이라 부른다. 심마니능선을 기준으로 동쪽 골짜기는 뱀사골이고, 서쪽 골짜기는 달궁계곡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3백년 전 지금의 지리산 뱀사골 탐방안내소 자리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스님 한 분을 뽑아 신선바위에서 기도를 드리게 했는데, 다음 날이 되면 기도드리던 스님이 사라지곤 했다. 어느 해 이를 기이하게 여긴 고승 한 분이 그해에 뽑힌 스님 옷자락에 독을 묻혔다. 날이 밝은 뒤 사람들이 신선바위로 올라가 보니 기도드린 스님은 없고 이무기만 죽어 있었다. 그 후 이 계곡을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골’이라 불렀다.

지리산 뱀사골 탐방안내소에서 골짜기를 따라 와운마을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있고, 임도 아래쪽 계곡가 숲속에 데크길이 놓여있다. 울창한 숲속으로 난 데크길을 걷고 있으니 나무가 뿜어내는 기운이 상쾌하다. 길 아래로는 티 없이 맑은 물이 거침없이 흘러간다. 깔끔한 바위를 타고 내려온 물줄기는 푸른 웅덩이를 이뤘다가 유유히 흘러간다. 억겁의 세월동안 깎이고 깎인 바위들은 맑고 투명한 물과 행복하게 조화를 이뤘다.

티없이 맑은 물이 거침없이 흘러간다. 깔끔한 바위를 타고 내려온 물줄기는 푸른 웅덩이를 이뤘다가 유유히 흘러간다. 억겁의 세월 동안 깎이고 깎인 바위들은 맑고 투명한 물과 행복하게 조화를 이뤘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새소리와 청아한 물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들려온다. 울창한 숲과 바위 사이를 돌고 돌아가는 맑은 계곡물이 탐욕에 찌든 인간을 소박하고 순수한 자연인으로 변화시킨다. 뱀사골 본류와 와운골이 만나는 지점에는 둥그런 바위가 흔들바위처럼 자리하고 있다. 용이 머리를 흔들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하여 요룡대(搖龍臺)라 부른다. 요룡대 앞쪽에서 임도로 올라선다. 임도로 올라서니 뱀사골과 와운마을 가는 길이 갈리는 와운교가 기다리고 있다.

와운교에서 해발 650m 깊은 산골에 자리한 와운마을까지는 0.7km.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구름도 쉬어간다는 뜻으로 와운(臥雲)마을이다. 지금이야 승용차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는 임도가 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반선마을에서 산길로 1시간 정도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 중 오지마을이다. 와운마을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노송 두 그루가 늠름한 자태를 하고 서있다. 천연기념물 제424호 ‘천년송’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구름도 쉬어간다는 와운(臥雲)마을은 해발 650m 깊은 산골에 자리했다. 와운마을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노송 두 그루가 늠름한 자태를 하고 서있다. 천연기념물 제424호 ‘천년송’이다.

화개재로 통하는 뱀사골계곡길은 걷기 좋은 오솔길이다. 하늘을 가린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올라갈수록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탁용소·뱀소·병소·병풍소·제승대·간장소 같은 명승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자동차가 없던 옛날에는 전라북도 남원과 경상남도 하동을 오갈 때 뱀사골을 통해 화개재를 넘어 다녔다.

탁용소를 만난다. 탁용소에는 큰 뱀이 목욕을 한 후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다 암반에 떨어져 100여 미터나 되는 자국이 생겨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자국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 같다 하여 탁용소(濯龍沼)라 불렀다.

탁용소 위쪽에서는 깔끔한 암반을 타고 내려오다가 1m 정도 높이로 떨어지는 작은 폭포들이 아기자기한 멋을 자랑한다. 작은 폭포와 소에는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 우아한 정취를 뽐낸다. 하얀 물보라를 만들며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혼탁해진 내 마음이 씻어지는 것 같다.

뱀사골에서는 크고 작은 소(沼)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런 소들을 이어주는 물줄기가 구절양장처럼 흘러간다. 반야봉·삼도봉·토끼봉·명선봉 비탈의 울창한 원시림이 풍족한 수량의 뱀사골 물줄기를 잉태했다. 숲속 오솔길을 걸으며 야생화와 눈을 맞춘다. 물가에 핀 산수국꽃이 맑은 물에 비치어 화사해졌다. 까치수염도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하얀 꽃을 피웠다.

숲속 오솔길을 걸으며 야생화와 눈을 맞춘다. 물가에 핀 산수국꽃이 맑은 물에 비치어 더욱 화사해졌다. 까치수염도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하얀 꽃을 피웠다.

탐방로는 계곡과 약간 떨어진 은은한 숲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늘을 가린 초록색 활엽수림은 산뜻하고 생명력 넘친다. 숲길을 걸으며 숲의 일원이 된다. 숲길을 걸으며 이곳을 지나는 징표로 커다란 바위에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놓는다.

탐방로는 계곡과 약간 떨어진 은은한 숲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늘을 가린 초록색 활엽수림은 산뜻하고 생명력 넘친다. 숲길을 걸으며 숲의 일원이 된다.

뱀이 기어가는 것 같은 뱀소를 지나자 병소가 기다리고 있다. 뱀사골에는 여러 명소가 있는데 요룡대·탁용소·뱀소는 용과 뱀에 관련된 이름이고, 병소·병풍소·제승대·간장소는 지형의 형태 또는 전설과 관련된 이름이다. 병소는 웅덩이의 모양이 마치 호리병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 양쪽 바위 사이를 흘러오면서 가운데 부분이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면서 호리병 모양의 소가 만들어졌다. 위쪽 병풍교에 서서 병소를 내려다본다. 상류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병 모양의 웅덩이를 이룬 후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웅덩이의 모양이 마치 호리병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병소. 계곡 양쪽 바위 사이를 흘러오면서 가운데 부분이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면서 호리병 모양의 소가 만들어졌다.

쉼 없이 흘러가는 계류는 한 순간도 변화하지 않는 때가 없다. 뱀사골이 인생은 무상(無常)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뱀사골이 깨우쳐준 무상한 진리를 가슴에 담고 하산한다. 올라올 때 보았던 숲이고 계곡인데, 지금의 숲과 계곡은 이전의 숲이 아니고 조금 전에 만났던 계곡도 아니다. 부단히 자라고 있는 나무는 엄격하게 말하면 이전과 달라진 나무다. 계곡물 또한 조금 전에 만났던 물은 이미 흘러가버리고 다른 물이 우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뱀사골은 같은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여행쪽지
-뱀사골은 칠선계곡, 피아골과 함께 지리산을 대표하는 계곡이다. 수많은 지리산 계곡 중에서 경사가 가장 완만할 뿐만 아니라 탐방로가 계곡과 가깝게 나있어 계곡미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다. 여름철 계곡트레킹 명소이자 가을철 단풍명소다.
※코스 : 지리산 뱀사골 탐방안내소→요룡대→탁용소→병소(왕복)
※거리, 소요시간 : 4km(왕복 8km), 왕복 3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반선교(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