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푸른 산과 들판이 스쳐지나간다. 여름 날씨지만 푸른 산과 들이 있어 그나마 더위를 식혀준다. 해남과 진도의 경계를 이룬 바다는 좁은 수로를 이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물살이 세다. 이곳에 조선시대에는 우수영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은 정유재란 때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울돌목 해류를 이용해 일본군을 대파했다. 우리 역사는 후일 이 전투를 명량대첩이라 불렀다.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바다는 보이지 않고 들판과 낮은 산들만 스쳐지나간다. 진도읍을 지나 진도 남서쪽에 자리한 임회면으로 달려간다. 임회면 해변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진다.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모습이 용이 승천하려고 준비하는 형상이라 해서 ‘미르길’이라 부른다. 미르는 순우리말로 용(龍)을 뜻한다. 미르길은 어민들이 고기 잡으러 가던 옛길, 작은 어촌과 포구, 때로는 임도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오늘은 진도 미르길 중에서 가장 경관이 좋고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적은 4구간과 5구간을 걸을 예정이다. 진도 미르길 4구간은 2021년 ‘걷고 싶은 전남 숲길’에 뽑히기도 했다.

미르길 4구간이 시작되는 굴포항 주변은 깊숙이 만입된 해변에 굴포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 안쪽에는 들판이 자리하고 있다.

굴포마을 안쪽 들판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간척지로 알려져 있다. 고산 윤선도가 처가인 굴포마을에 2년(1649-1650) 동안 머물면서 높이 3m, 길이 380m에 이르는 방조제를 쌓아 30만 평의 농경지를 확보해 인근 4개 마을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윤고산둑이라 부르는 방조제 옆에는 윤고산사당이 있다. 윤고산둑을 가운데 두고 짝별방파제와 굴포방파제가 양옆에서 감싼다.

굴포방파제가 끝나는 지점에 굴포항이 있다. 굴포항 방조제 입구에 미르길 4구간 안내판이 서 있다. 미르길 4구간 트레킹은 굴포항에서 데크계단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굴포항은 양쪽에 산으로 감싸인 깊숙한 만에 자리하고 있어 악천후 때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던 선박들의 대피항으로도 이용된다.

북동쪽에서는 진도 남쪽에 솟은 대표적인 산 여귀산이 고개를 내민다. 산줄기들이 바다를 향해 발을 내밀며 리아스식 해안을 이룬 모습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남동쪽으로 보이는 망망대해에는 상구자도 하구자도 같은 작은 섬들이 바다에 떠 있다. 조업을 나갔다가 들어오는 어선이 하얀 포말을 만들며 굴포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이 정겹다.

미르길은 옛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폭만 조금 넓혔다. 굴포항에서 1㎞ 쯤 걸었을까? 굴포등대가 기다리고 있다. 하얗고 작은 무인등대다. 돌출된 갯바위에 세워진 등대는 굴포항으로 오가는 뱃사람에게 뱃길을 알려준다. 갯바위에 작은 물결이 끊임없이 다가와 부서진다.

굴포항에서 1㎞ 거리에 하얗고 작은 무인등대인 굴포등대가 있다.

등대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서쪽으로 바다를 향해 들락날락하는 리아스식해변과 남망산이 있는 접도가 바라보인다. 정남쪽 바다위에 떠있는 죽도(대섬)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죽도 뒤 망망대해에 상구자도 하구자도, 독거도 슬도 같은 섬들이 등대처럼 서 있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상구자도 하구자도와 독거도 슬도 사이로 추자도가 어렴풋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남서쪽 바다에서는 조도와 관매도 같은 섬들이 손짓한다.

굴포등대를 출발해 진도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향한다. 진도자연휴양림이 가까워질수록 길은 더 좋아진다. 길 위로 진도자연휴양림이 바라보인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진도자연휴양림은 숲속에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즐길 수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둘포등대에서 진도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걷다보면 경치 좋은 곳에는 전망대가 있어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진도자연휴양림 주변은 유난히 숲이 울창하다. 동백나무 울창한 숲에는 후박나무·비파나무·구실잣밤나무·다정큼나무·소태나무들이 함께 어울려 하늘을 가린다. 난대림 숲길을 걷다가 두 개의 옛 해안초소를 만난다. 돌로 둥글게 쌓은 초소가 있는 2초소에 도착하니 바로 앞 바다에 대소당도라는 작은 무인도가 묵언 정진하듯 평온하게 앉아있다.

돌로 둥글게 쌓은 옛 해안초소 앞으로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이 펼쳐진다.

2초소를 나와 1초소로 향한다. 1초소는 진도 본섬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1초소에 들어서니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조도군도가 가깝게 다가온다. 사자도, 장죽도 뒤로 상조도, 하조도를 비롯한 관매도, 독거도 등 조도군도를 이룬 수많은 섬들이 바다위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았다.

진도자연휴양림 주변에 있는 1초소는 진도 본섬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1초소에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조도군도가 가깝게 다가온다.

1초소를 지나면서부터는 임도를 따라서간다. 난대림 울창한 임도를 따라 가다보면 동령개마을 쪽으로 오목하게 들어선 바다와 천둥산이 바라보인다. 천둥산과 동령개만, 자연휴양림쪽 산줄기가 멀리서 다가오는 조도군도와 어울린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동령개마을 앞 해변은 조그마한 몽돌해변을 이루고, 몽돌해변을 팽나무숲이 감싸고 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과 예쁜 해안풍경이다.

진도 미르길 4구간이 끝나는 동령개마을에서는 천둥산과 동령개만, 자연휴양림쪽 산줄기가 멀리서 다가오는 조도군도와 어울린 모습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진도 미르길 4구간은 동령개마을에서 끝난다. 동령개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걷다가 천둥산 임도로 들어선다. 천둥산 북쪽 산허리를 돌아가는 임도다. 임도는 숲에 가려 전망이 트이지 않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없어 한없이 고요하다. 산허리를 몇 구비 돌고나서 해변도로로 내려선다.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남도진성이 있는 남동마을로 향한다. 해변은 물이 빠지자 갯벌을 드러냈다. 한옥으로 이뤄진 남동마을은 산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임회면 남동리에 조성한 전원형 한옥마을이다. 한옥들은 주변 산, 바다와 행복하게 어울려 있다.

남도진성 앞 교차로에 도착했다. 진도 미르길 5구간이 끝나는 곳이다. 미르길 걷기를 마치면서 남도진성을 둘러본다. 남도진성(사적 제127호)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용장산성과 더불어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성으로 알려져 있다.

성곽은 둘레 610m, 높이 4-6m, 폭 2.5-3m로 이뤄져있다. 남도진성은 둥그런 성곽과 동문, 서문, 남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문 앞에는 둥그런 옹성이 있다. 성 안에는 관아와 내아, 객사가 복원돼 있다.

남도진성은 둘레 610m, 높이 4-6m, 폭 2.5-3m로 이뤄져있다. 남도진성은 둥그런 성곽과 동문, 서문, 남문으로 구성돼 있다.

남도진성 남문 앞으로 흘러가는 개울에는 두 개의 무지개다리가 있다. 단운교와 쌍운교가 그것이다. 주변에서 가져온 돌을 그대로 사용해 투박하지만 단아하면서도 정감이 있다. 쌍운교는 개울이 넓어 쌍무지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쌍운교 너머로 보이는 남도진성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온 구국정신을 말없이 전해준다.

<장갑수·여행작가>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모습이 용이 승천하려는 형상이라 해서 ‘미르길’이라 부른다. 진도 미르길은 고기 잡으러 다녔던 옛길, 작은 어촌과 포구, 때로는 임도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코스 : 굴포항→등대→진도자연휴양림→제1초소→동령개마을→천둥산 임도→남도진성(남동마을)
※거리, 소요시간 : 10.6㎞(굴포항→동령개마을 4구간은 7.1㎞), 3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굴포항(진도군 임회면 굴포리 9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