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각 주(州)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미국 민주주의 핵심과 달리 일부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거울삼아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 가치를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광주매일신문이 주최한 제12기 창조클럽 아카데미 제7강좌가 지난 24일 라마다플라자 광주충장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김봉중 전남대 명예교수는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트럼프 정치의 상징성과 그 이면에 담긴 미국 민주주의 균열을 심도 있게 조명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는 기존의 정치권에서 보면 뜬금없는 인물”이라며 강연을 열었다.

그는 트럼프와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을 비교, 잭슨 시대에 빗대 ‘트럼프의 시대’라는 표현이 회자되는 이유를 “기존 정치틀을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가 대선 당시부터 사용해온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모자를 언급하며 “이 단어 자체가 ‘우리만의 미국’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남부연합 깃발의 등장, 극우 기독교 백인 중심주의, 이민과 낙태 문제를 통한 증오의 정치가 확대된 데 대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링컨의 정신과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정치 체제가 ‘연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13개 식민지에서 출발한 합중국이 지역과 가치, 제도적 균형을 통해 성장해 왔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은 여러 주가 모여 만든 연방 국가로, 각 주가 강한 자율성과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며 “이러한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백인 우월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적 성향을 내세우는 트럼프의 정치적 메시지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라는 호칭을 고집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그 호칭에는 제왕이 아닌 ‘대표자’로서의 민주주의 리더십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은 실업률이 25%에 달할 정도로 극심한 충격을 겪었고 유럽도 그 여파로 정치·경제적 혼란에 빠졌다”며 “이 혼란 속에서 독일에선 히틀러가, 미국에선 루즈벨트가 권력의 중심에 섰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히틀러는 집권을 위해 증오와 혐오를 전략적으로 사용했고 그 결과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다”며 “반면 루즈벨트는 ‘아직도 미국은 감사할 것이 많은 나라’라며 미국 사회에 대한 신뢰와 긍정의 메시지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부연했다.

강연 후반부에서 김 교수는 “지금은 진실보다 감정이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다.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가 아닌 그를 지지하는 감정, 즉 분노와 혐오의 정서”라며 “그럴수록 우리는 ‘선한 언어’를 개발하고 일상 속에서 어떤 용어를 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또 “미국은 민주주의의 실험실이자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운 거울 같은 존재이지만, 지금 이 거울에 금이 가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는 그 거울을 통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언어와 태도를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 했다.

한편 김봉중 교수는 미국사와 외교사, 정치문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미국의 정체성과 가치, 민주주의 전통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써온 역사학자다. 현재는 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로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는 물론, tvN ‘벌거벗은 세계사’ 등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소통해 왔다.

/정은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