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진실 / 노희용
- 재생 준비중
2025. 06. 08(일) 18:07 가+가-
노희용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극장1 에서 막을 올렸다. 5월30일 금요일 저녁과 31일 토요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이 공연은 단순한 무대 예술을 넘어 서울예술단의 광주 시대를 여는 상징적인 출발이었다. 나는 그 첫 번째 공연을 관람하며 깊은 감동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새로운 출발, 광주에서의 첫 무대
서울예술단은 34명 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보여준 이번 공연에서 국립예술단체다운 높은 기량과 무대 집중력을 선보였다. 주인공과 조연의 경계를 허무는 수준 높은 연기와 호흡, 빠르고도 치밀한 전개 속에서 단원들 모두가 작품의 중심을 이뤘다. 이들은 이제 광주로의 이전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길 바란다. 광주시민 모두는 서울예술단을 따뜻하게 환영할 준비가 돼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눈물
‘천 개의 파랑’은 단지 경마와 로봇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삶의 속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매우 철학적인 서사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세 가지 큰 리듬이 있다.
첫째는 ‘천천히 가는 것’. 세 살의 경주마 ‘투데이’는 너무 빠르게 달린 대가로 관절이 파열되고 안락사 판정을 받아 죽음 직전에 놓여있다. 그의 기수였던 C-27, ‘콜리’ 또한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되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투데이’의 고통에 공감한 죄로 스스로 낙마하고 하체를 잃는다.
둘째는 ‘멈춤’이다. 콜리와 투데이가 멈췄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도 멈춰 있었다. 가장 뼈아픈 정지는 ‘연재’의 가족에게 있었다. 아버지는 소방관으로 순직했고, 그 순간 어머니의 시간도 멈췄다. 어린 두 딸은 그 멈춘 시간 속에서 자랐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슬픔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침묵했고, 아이들도 어린 나이에 그 슬픔을 짐작하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자라났다.
필자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서 전신마비가 된 아버지, 그날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보조하며 간병했던 6남매…. 지금도 눈물이 맺힌다. 1980년 5월18일 이후 광주시민의 시간도 멈춰 서 있다. 당시 고3 학생이었던 필자 역시도 일정한 부분에서는 멈춰 서 있다. 이제는 다시 걷자. 제발 이제는 천천히 다시 걸어보자.
셋째는 ‘다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콜리는 안락사 직전, 연재에 의해 수명을 2주간 연장받는다. 그 안에 마지막 경주를 준비하며, 가족과 기계, 말의 생명이 교차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어머니는 드디어 울음을 터뜨린다. 삶을 멈췄던 그녀가, 멈췄던 감정을 해방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장면은 단순한 눈물의 연기가 아니라, 고여 있던 시간의 흐름이 다시 움직이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이었다. 가슴 먹먹한 순간이었다.
◇예술의 중심, 광주로의 이전
서울예술단의 광주 이전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다. 이는 국가 예술 생태계의 재편이며, 수도권 중심에서 지방 문화 분권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광주는 전통예술의 뿌리가 깊은 도시로, 서울예술단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의 현대화, 지역의 콘텐츠화, 예술의 공동체화를 실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지 ‘이전’이 아니라, 여기 광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창작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무대를 기반으로, 광주에서 창작된 작품이 전국은 물론 아시아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거점과 예술가의 창작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지역 예술계와의 조화로운 상생 역시 중요한 과제다.
◇천천히, 그러나 함께 가는 길
‘천 개의 파랑’은 로봇, 말, 인간, 가족이 엮인 서사를 통해 이 시대의 속도에 대해 묻는다. 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감정은 오류가 아니라 진화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공연은 “너무 빠르게 달리면 다 놓친다. 잠깐 멈추는 것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서도 결코 삶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천천히’ 가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게 해야만, 주변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슬픔을 안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예술단이 광주에 둥지를 트는 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광주와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여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이미 감동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제는 광주시민들이 마음을 열고 대한민국 예술 균형발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갈 차례다. 광주로 오는 서울예술단과 광주시민의 합창이 곧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출발, 광주에서의 첫 무대
서울예술단은 34명 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보여준 이번 공연에서 국립예술단체다운 높은 기량과 무대 집중력을 선보였다. 주인공과 조연의 경계를 허무는 수준 높은 연기와 호흡, 빠르고도 치밀한 전개 속에서 단원들 모두가 작품의 중심을 이뤘다. 이들은 이제 광주로의 이전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길 바란다. 광주시민 모두는 서울예술단을 따뜻하게 환영할 준비가 돼 있다.
‘천 개의 파랑’은 단지 경마와 로봇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삶의 속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매우 철학적인 서사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세 가지 큰 리듬이 있다.
첫째는 ‘천천히 가는 것’. 세 살의 경주마 ‘투데이’는 너무 빠르게 달린 대가로 관절이 파열되고 안락사 판정을 받아 죽음 직전에 놓여있다. 그의 기수였던 C-27, ‘콜리’ 또한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되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투데이’의 고통에 공감한 죄로 스스로 낙마하고 하체를 잃는다.
둘째는 ‘멈춤’이다. 콜리와 투데이가 멈췄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도 멈춰 있었다. 가장 뼈아픈 정지는 ‘연재’의 가족에게 있었다. 아버지는 소방관으로 순직했고, 그 순간 어머니의 시간도 멈췄다. 어린 두 딸은 그 멈춘 시간 속에서 자랐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슬픔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침묵했고, 아이들도 어린 나이에 그 슬픔을 짐작하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자라났다.
필자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서 전신마비가 된 아버지, 그날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보조하며 간병했던 6남매…. 지금도 눈물이 맺힌다. 1980년 5월18일 이후 광주시민의 시간도 멈춰 서 있다. 당시 고3 학생이었던 필자 역시도 일정한 부분에서는 멈춰 서 있다. 이제는 다시 걷자. 제발 이제는 천천히 다시 걸어보자.
셋째는 ‘다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콜리는 안락사 직전, 연재에 의해 수명을 2주간 연장받는다. 그 안에 마지막 경주를 준비하며, 가족과 기계, 말의 생명이 교차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어머니는 드디어 울음을 터뜨린다. 삶을 멈췄던 그녀가, 멈췄던 감정을 해방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장면은 단순한 눈물의 연기가 아니라, 고여 있던 시간의 흐름이 다시 움직이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이었다. 가슴 먹먹한 순간이었다.
◇예술의 중심, 광주로의 이전
서울예술단의 광주 이전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다. 이는 국가 예술 생태계의 재편이며, 수도권 중심에서 지방 문화 분권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광주는 전통예술의 뿌리가 깊은 도시로, 서울예술단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의 현대화, 지역의 콘텐츠화, 예술의 공동체화를 실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지 ‘이전’이 아니라, 여기 광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창작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무대를 기반으로, 광주에서 창작된 작품이 전국은 물론 아시아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거점과 예술가의 창작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지역 예술계와의 조화로운 상생 역시 중요한 과제다.
◇천천히, 그러나 함께 가는 길
‘천 개의 파랑’은 로봇, 말, 인간, 가족이 엮인 서사를 통해 이 시대의 속도에 대해 묻는다. 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감정은 오류가 아니라 진화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공연은 “너무 빠르게 달리면 다 놓친다. 잠깐 멈추는 것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서도 결코 삶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천천히’ 가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게 해야만, 주변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슬픔을 안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예술단이 광주에 둥지를 트는 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광주와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여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이미 감동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제는 광주시민들이 마음을 열고 대한민국 예술 균형발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갈 차례다. 광주로 오는 서울예술단과 광주시민의 합창이 곧 시작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