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옹알이 대화 / 수필 - 송미심
- 재생 준비중
2025. 05. 12(월) 18:49 가+가-
원동이 총각은 출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오늘도 같은 질문을 한다.
“김 선생님은 어디 갔나요?”
응답을 듣자고 물어본 것이 아니다. 대답을 듣지도 않고 꼿꼿이 자기 갈 길을 간다. 그러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기 전에 못다 한 말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알 수 없는 말들을 웅얼거린다.
내 응답이 없자 그는 답답했는지 큰소리로
“버스에서 벨을 여러 번 누르면 기사님한테 혼나지요?”
라고 소리친다.….
“그럼”
내 생각보다는 그의 질문에 동의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설명하거나 따지는 것보다 그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긴다. 그는 자신과 소통했다는 것만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계단을 오른다.
만날 때마다 거의 같은 질문을 한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내 대답이 때로 달라도 그도 역시 상관하지 않는다.
“택시에서 소리를 지르면 운전사에게 방해가 되지요?”
“그렇지.”
물어보면 들어주고 응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도 그는 만족한 듯하다.
가끔 질문이 달라지기도 한다. 아파트 603호에 사는 네 살배기 아기 자전거는 왜 없어졌냐고 묻고 신발을 뒤집어 놓은 친구가 왜 잘못했는지 확인하려고 한다. 아래층 식구들은 어째서 이사를 했냐고 심각하게 말하기도 한다. 내 대답이 때에 따라 달라져도 그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
13살 지능을 가진 서른 살 청년 원동이는 시설과 직원이다. 잘 생기고 힘도 센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수레를 끈다. 콧노래를 부르며 꽃나무에 물을 뿌려준다. 물을 준 사람이 ‘원동이’ 본인이라고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그 총각이 쏟아내는 말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나는 단답형으로 응수하거나 미소로 응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생각과 의미가 없는 언어에 소통이 된 듯 만족한 그의 발걸음이 사푼거린다. 나는 실없는 우리의 말 섞기를 ‘옹알이 대화’라고 이름 붙였다.
TV에서 본 쌍둥이 갓난이들의 옹알이가 떠올라 혼자 웃곤 한다. 기저귀를 차고 누워 손짓과 발짓하는 쌍둥이들은 각자 자신의 옹알이로 깔깔 웃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함께 교감을 하는 것만 같다. 의미 전달이 없어도 왜 서로 의지가 된 것 같을까? 옹알이 대화는 언어 이전의 소통이며 보이지 않는 연결의 의미인 것 같았다. 함께여서 행복한 근원적 힘이 아니었을까.
옆자리의 선생님이 바쁜데 쓸데없는 말에 응수할 필요가 있느냐고 쏘아붙인 적도 있다. 실상은 알갱이 없는 말을 매번 듣는 일도 쉽지는 않다. 나도 종종 내가 오지랖이 참으로 넓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응답이 그에게 삶의 방향키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해결책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원동이 총각이 왕사탕 한 개를 가져와 슬며시 내밀었다. 엄마가 가져다주라고 했다 한다. 응수를 해 주었던 내게 고맙다는 표현이었을까? 그의 어머니를 뵌 적은 없지만, 그녀는 노심초사 아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기를 바란다는 소문을 들었다. 착하고 준수한 청년인데 어떤 이유로 언어의 장애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아이를 바라보며 키웠을 부모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그런 중에 마음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정으로 의지하며 산다.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거리고 위로받기도 한다. 같은 고민에 공감하고 상대의 처지를 통해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설움을 풀어낼 사람이 없어 혼자라고 느낄 때 절망하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대화조차 단절되어 갔다. 휴대전화에 빠져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속내를 꾹꾹 눌러 감추고 단조로운 언어와 사무적 소통으로 삭막한 벽이 생겼다. 서로에게 수다를 떨어가며 정을 쌓아가던 시절을 그립게 했다.
다섯 해가 지나는 동안 원동이 총각의 반복되는 물음에 자주 시선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다 원동이 총각의 성실한 태도와 착한 심성을 읽어냈다. 옹알이 대화로라도 혼자가 아닌 ‘우리’의 울타리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아직 유소년 같은 말을 하는 그가 참으로 안타까워 나는 서서히 원동이 어머니의 애달픈 마음을 닮아가고 있다.
<송미심 약력>
▲한국수필(1997) 등단
▲가교문학, 무등수필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광주문인협회 회원
▲수상 : 광주예술문화상 공로상, 광주문인협회 광주문학상
“김 선생님은 어디 갔나요?”
응답을 듣자고 물어본 것이 아니다. 대답을 듣지도 않고 꼿꼿이 자기 갈 길을 간다. 그러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기 전에 못다 한 말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알 수 없는 말들을 웅얼거린다.
내 응답이 없자 그는 답답했는지 큰소리로
“버스에서 벨을 여러 번 누르면 기사님한테 혼나지요?”
라고 소리친다.….
내 생각보다는 그의 질문에 동의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설명하거나 따지는 것보다 그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긴다. 그는 자신과 소통했다는 것만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계단을 오른다.
만날 때마다 거의 같은 질문을 한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내 대답이 때로 달라도 그도 역시 상관하지 않는다.
“택시에서 소리를 지르면 운전사에게 방해가 되지요?”
“그렇지.”
물어보면 들어주고 응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도 그는 만족한 듯하다.
가끔 질문이 달라지기도 한다. 아파트 603호에 사는 네 살배기 아기 자전거는 왜 없어졌냐고 묻고 신발을 뒤집어 놓은 친구가 왜 잘못했는지 확인하려고 한다. 아래층 식구들은 어째서 이사를 했냐고 심각하게 말하기도 한다. 내 대답이 때에 따라 달라져도 그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
13살 지능을 가진 서른 살 청년 원동이는 시설과 직원이다. 잘 생기고 힘도 센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수레를 끈다. 콧노래를 부르며 꽃나무에 물을 뿌려준다. 물을 준 사람이 ‘원동이’ 본인이라고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그 총각이 쏟아내는 말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나는 단답형으로 응수하거나 미소로 응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생각과 의미가 없는 언어에 소통이 된 듯 만족한 그의 발걸음이 사푼거린다. 나는 실없는 우리의 말 섞기를 ‘옹알이 대화’라고 이름 붙였다.
TV에서 본 쌍둥이 갓난이들의 옹알이가 떠올라 혼자 웃곤 한다. 기저귀를 차고 누워 손짓과 발짓하는 쌍둥이들은 각자 자신의 옹알이로 깔깔 웃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함께 교감을 하는 것만 같다. 의미 전달이 없어도 왜 서로 의지가 된 것 같을까? 옹알이 대화는 언어 이전의 소통이며 보이지 않는 연결의 의미인 것 같았다. 함께여서 행복한 근원적 힘이 아니었을까.
옆자리의 선생님이 바쁜데 쓸데없는 말에 응수할 필요가 있느냐고 쏘아붙인 적도 있다. 실상은 알갱이 없는 말을 매번 듣는 일도 쉽지는 않다. 나도 종종 내가 오지랖이 참으로 넓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응답이 그에게 삶의 방향키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해결책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원동이 총각이 왕사탕 한 개를 가져와 슬며시 내밀었다. 엄마가 가져다주라고 했다 한다. 응수를 해 주었던 내게 고맙다는 표현이었을까? 그의 어머니를 뵌 적은 없지만, 그녀는 노심초사 아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기를 바란다는 소문을 들었다. 착하고 준수한 청년인데 어떤 이유로 언어의 장애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아이를 바라보며 키웠을 부모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그런 중에 마음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정으로 의지하며 산다.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거리고 위로받기도 한다. 같은 고민에 공감하고 상대의 처지를 통해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설움을 풀어낼 사람이 없어 혼자라고 느낄 때 절망하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대화조차 단절되어 갔다. 휴대전화에 빠져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속내를 꾹꾹 눌러 감추고 단조로운 언어와 사무적 소통으로 삭막한 벽이 생겼다. 서로에게 수다를 떨어가며 정을 쌓아가던 시절을 그립게 했다.
다섯 해가 지나는 동안 원동이 총각의 반복되는 물음에 자주 시선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다 원동이 총각의 성실한 태도와 착한 심성을 읽어냈다. 옹알이 대화로라도 혼자가 아닌 ‘우리’의 울타리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아직 유소년 같은 말을 하는 그가 참으로 안타까워 나는 서서히 원동이 어머니의 애달픈 마음을 닮아가고 있다.
<송미심 약력>
▲한국수필(1997) 등단
▲가교문학, 무등수필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광주문인협회 회원
▲수상 : 광주예술문화상 공로상, 광주문인협회 광주문학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