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80코스가 시작되는 회진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남파랑길 79코스까지는 득량만과 함께 했지만 80코스부터는 득량만을 벗어난다. 회진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 회령진성이 있다. 회령진성으로 오르면서 남파랑길 80코스가 시작된다. 회령진성은 조선 성종 21년(1490) 4월에 축조된 만호진성이다.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역할을 했던 수군진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임됐다가 백의종군을 벗어난 이순신 장군은 이곳 회령진에서 칠천량해전에서 돌아온 12척의 판옥선을 수습했다. 우리 수군은 이곳 회령진에서 이순신 장군의 지휘아래 명량대첩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회령진성은 마을의 뒷산을 이용해 축성한 부정형 성이다. 성벽의 총길이는 616m이며, 동벽은 절벽 위에 쌓았으나 현재는 모두 훼철됐다. 지금은 150m 길이의 복원된 성벽만 남아있을 뿐이다. 회령진성에 올라서니 천관산과 너른 들판이 넉넉하게 다가온다. 회령진성 안쪽에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회령진성의 역사를 보듬고 있다.

회진면소재지 마을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골목길을 따라 걷는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과 회진앞바다가 정답게 바라보인다. 바다는 노력도 안쪽으로 작은 만을 이뤄 잔잔하고 포근하다. 바다 가장 안쪽에는 회진항이 자리하고 있다.

선학동마을에서 이청준 생가가 있는 지목마을로 넘어가는 임도 아래 골짜기에는 논과 밭이 자리하고, 골짜기 아래로 너른 들판과 천년학 세트장, 그리고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에는 노력도가 길쭉하게 떠 있다. 노력도를 육지와 연결한 회진대교의 모습도 정답게 다가온다.

남파랑길은 회진면소재지를 벗어나 해변방파제를 따라 이어진다. 만조 때라서 갯벌은 드러나지 않고 방파제 바로 밑까지 바닷물이 출렁인다. 갯벌은 바닷물에 덮여있지만 비릿한 갯냄새는 그대로 전해진다. 바다 가운데에는 김 양식을 위해 박아놓은 지주대들이 곳곳에 서 있다. 회진면 덕산리와 노력도를 이어주는 회진대교도 가깝게 바라보인다. 노력도 남쪽으로 완도 평일도, 생일도 같은 섬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회령면소재지에서 해변방파제를 따라 걷다보면 회진면 덕산리와 노력도를 이어주는 회진대교도 가깝게 바라보인다. 노력도 남쪽으로 완도 평일도, 생일도 같은 섬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해변을 따라 마지막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조그마한 포구가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포구를 지나 몇 그루의 낙락장송 앞을 돌아서자 영화 ‘천년학’ 세트장이 기다리고 있다. 작은 포구 옆에 자리한 ‘천년학’ 세트장은 이청준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주요무대 선학동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작은 포구 옆에 자리한 영화 ‘천년학’ 세트장은 이청준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주요무대 선학동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이 고장 출신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천년학’은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다.

영화 속 바닷가 외딴 선술집이었던 세트장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건물이 낡아져 외로운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다. ‘선학동 나그네’는 장흥의 해안가 마을 선학동을 배경으로 소리꾼 아버지와 눈 먼 딸, 그리고 이복 남매인 오라비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선학동마을은 날아오르는 학이 날개 짓을 하는 것 같은 형상의 공지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름은 산 아래 마을이라고 하여 ‘산저’로 불렸는데, 이청준 소설 ‘선학동 나그네’에서 선학동으로 표기되면서 마을이름까지 바꿔버렸다. 소설 ‘선학동 나그네’에서 공지산은 관음봉으로, 산저마을은 선학동으로 묘사된다.

남파랑길은 선학동마을 입구에서 산비탈 밭길로 이어진다. 비탈진 밭은 5월에는 유채꽃이, 10월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더욱 아름다워진다. 마을 뒤편 산중턱 정자에서 바라보니 비탈진 밭과 붉은 지붕을 한 선학동마을, 마을 앞 들판, 작은 만을 이룬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자에 앉아서 내려다본 선학동 풍경은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선학동마을을 등지고 공지산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니 ‘이청준 문학탐방길’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완만한 능선길에서는 후박나무가 줄지어 서서 이청준 생가 방향으로 길안내를 해준다. 하늘을 가린 후박나무 오솔길은 차츰 임도로 바뀐다.

임도 아래 골짜기에는 논과 밭이 자리하고, 골짜기 아래로 너른 들판과 천년학 세트장, 그리고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에는 노력도가 길쭉하게 떠 있다. 노력도를 육지와 연결한 회진대교의 모습도 정답게 다가온다.

진목마을로 들어서니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가옥들이 포근하다. 진목마을 골목길을 걷는데 이청준생가 안내판이 길안내를 해준다. 이곳 진목마을은 이청준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자 ‘눈길’, ‘나무 위에서 잠자기’ 등 숱한 소설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청준 생가. 진목마을은 이청준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자 ‘눈길’, ‘나무 위에서 잠자기’ 등 숱한 소설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장흥이 낳은 소설가 한승원과 이청준은 1939년, 같은 해에 태어났다. 둘 다 회진면 출신으로 마을은 다르지만 두 마을 다 산에 기대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가세가 기울어 생가가 팔리고 가족이 흩어지는 바람에 20년 가까이 고향을 찾지 못한 이청준은 1979년 진목마을에서 아래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갯나들마을에 정착했다. 이청준은 2008년 타계할 때까지 개나들마을에서 기거하면서 글을 썼다.

진목마을에서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와 넓은 덕촌간척지들을 만난다. 1977년 3㎞에 이르는 덕촌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안쪽에 349㏊에 이르는 넓은 간척지 들판이 만들어졌다. 길은 덕촌간척지 가운데로 난 농로를 따라서간다. 방조제에 올라서니 완도를 이룬 여러 섬들이 다도해를 이루며 붕긋붕긋 솟아있다. 여러 섬 중에서도 조약도가 가깝다.

덕촌방조제 배수갑문을 건너가는데 대덕들판 뒤로 대덕읍소재지와 천관산이 듬직하게 다가온다. 넓은 대덕들판을 등지고 해변 산자락 임도를 따라서간다. 장흥군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한 대덕읍 옹암리 마을과 산줄기가 바다로 길쭉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3번 국도로 올라서니 대덕읍 신리 동신마을이다. 도로변 담벼락에 ‘신리 개매기체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개매기는 ‘개막이’가 변한 것으로, 말 그대로 개(강, 내에 조수가 드는 곳)를 막아서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밀물 때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 떼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물에 갇히도록 해서 잡는 방법이다. 신리 동신마을은 장흥군에서 가장 서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잠시 23번 국도를 따라 걷다가 농로를 거쳐 강진 땅에 들어선다. 해변으로 나아가니 고금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고금도와 조약도 앞쪽에 넙도 초완도 같은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있다.

어느덧 강진 마량과 완도 고금도를 연결한 고금대교가 눈앞에 와있다.

마량항으로 들어선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 바쳐지던 제주 말이 한양으로 이동하기 위해 마량에 도착하면 육지 적응기간을 거쳐 이송됐다. 말이 잠시 머물렀다고 해서 마량이라고 불렀다. 마량항에 정박된 어선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추위마저도 잊어진다.

마량항. 조선시대에는 국가에 바쳐지던 제주 말이 한양으로 이동하기 위해 마량에 도착하면 육지 적응기간을 거쳐 이송됐다. 말이 잠시 머물렀다고 해서 마량이라고 불렀다.

<장갑수·여행작가>

▲남파랑길 80코스는 이청준 소설의 배경이 된 해변마을과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영화 ‘천년학’의 무대가 되고 세트장이 있는 선학동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코스 : 회진시외버스터미널→회령진성→‘천년학’세트장→선학동→진목마을(이청준생가)→신리마을→신마마을→마량항
※거리, 소요시간 : 20㎞, 6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회진시외버스터미널(전남 장흥군 회진면 회진로 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