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동안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며 어수선한 시국으로 뒤숭숭했던 마음을 달래려 합니다.”

설 명절 연휴를 이틀 앞둔 23일 오전 10시께 광주송정역 대합실은 일찌감치 귀성길에 오른 이들로 북적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여파로 시국이 혼란스럽고, 경기 침체 역시 심각한 상황이지만 귀성객들의 손엔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잔뜩 들려 있었다.

과일 상자나 해산물이 담긴 스티로폼 박스 등을 든 귀성객들은 대부분 전광판을 확인한 뒤 열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찬바람이 부는 탓에 패딩과 코트를 여미면서도 곧 만날 가족들 생각에 표정은 밝았다.

열차 탑승을 기다리던 한 시민은 수화기 너머의 엄마에게 “갈비찜 매콤하게 해달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인근에서 “아들~”하며 한참을 통화하던 중년 여성도 열차가 들어오자 “이제 곧 출발한다. 조금만 기다려”라고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남구 봉선동 주민 이봉환(62)씨는 “올해 설 연휴가 길어 아내와 함께 경기도 고양에 있는 딸아이 집으로 간다”며 “서로 바쁘다 보니 1년에 몇 번 못 보는데 이번 기회에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함께 여행도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역시 귀성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2년 만에 고향에 내려간다는 박성준(28)씨는 “그동안 자리 잡느라 바빠서 가족과 통화로만 안부를 전했던 터라 이번엔 꼭 직접 찾아뵈려고 일찍 휴가를 냈다”며 “지난해 말부터 시국이 뒤숭숭해 이번 명절 만큼은 안전하고 평온하길 바란다”고 소원했다.

모처럼 고향을 찾는 자녀를 마중 나온 이들도 눈에 띄었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 플래카드를 들고 기다리던 한 어머니는 군복 차림의 아들이 대합실에 들어오자 한달음에 달려가 꽉 안아줬다. 이들 가족은 모두가 함께 기념 촬영을 한 후 서로 안부를 물으며 터미널을 빠져 나갔다.

광주공항 역시 사람들로 붐볐다. 보통 6일, 길게는 9일까지 쉴 수 있는 ‘황금 연휴’를 맞아 가족·친구 단위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친구와 함께 우정 여행을 떠난다는 이모(30대)씨는 “최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년 전부터 준비했던 일정을 취소해야 하나 싶었지만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연차까지 아낄 수 있게 돼 계획대로 떠난다”며 “이왕 가기로 한 만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오전 안개의 여파로 대부분 항공편의 출발이 예정보다 1-2시간씩 지연돼 일부 여행객들은 점심 식사를 예약했던 식당에 취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언니와 동생의 가족까지 모두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는 김정아(43)씨는 “몇 달 전부터 설 연휴에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며 “사는 곳이 달라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들이라 이번 기회에 맛있는 것도 먹고 푹 쉬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주성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