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읍을 지나 억불산 남쪽자락에 위치한 용산면 원등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앞에는 수령 2백년이 넘은 푸조나무 한 그루가 당당하게 서 있다. 원등마을회관에서 도로를 따라 300m 쯤 걸어 용산면소재지 쪽에서 흘러오는 남상천을 만난다. 남상천은 원등마을과 지천리마을 앞을 지나 득량만으로 흘러든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산정마을로 통하는 마을길로 들어선다. 산정마을 앞으로는 득량만이 펼쳐진다. 산정마을에서 동쪽으로 500m 거리에 소등섬이 있는데, 남파랑길은 소등섬을 거치지 않는다. 농로를 따라 걷다가 상발마을로 들어선다. 서향으로 길쭉하게 자리한 상발마을 앞을 지나 해변에 닿는다.

정남진해안도로 옆 바닷가에 전망대가 높이 세워져있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자라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득량도는 언제나처럼 득량만 한 가운데에 듬직하게 떠 있다.

고흥반도를 이룬 산줄기가 득량만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을수록 자라섬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자라섬에는 옛날 삼신할머니가 치마에 흙을 담아 노두를 놓고 고흥으로 건너가려다 치마에 구멍이 뚫려 흙이 쏟아져 섬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섬 모양이 자라를 닮았다고 해 ‘자라섬’이라고 부른다.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는데 장환도가 점점 가까워진다. 육지와 간척이 된 장환도는 ‘섬 아닌 섬’이 됐다. 해변에 자리한 죽청마을에 도착하니 굴구이를 하는 식당이 많다. 굴구이는 매년 11월 하순부터 2월 말까지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굴구이를 먹으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죽청마을을 지나 관산제방 안쪽 간척지 농로를 따라서간다. 농로에서는 천관산이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천관산은 억새로 널리 알려진 산이지만 능선에 솟아있는 바위군상들이 아기자기하다. 간척지 농로 끝에 자리한 신당마을을 지나 잠시 도로를 따라가니 관산제방 남쪽 끝이다. 여기에서 다시 정남진해안도로를 만난다.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은 서서히 갯벌로 변해가고 있다.

득량만 건너 동쪽에서 고흥 녹동의 건물들이 다가온다. 녹동에서 소록도를 연결한 소록대교와 소록도가 가슴에 안겨온다. 소록도 남쪽에서는 거금도가 고개를 내민다. 소록도와 거금도를 연결한 거금대교도 모습을 드러낸다. 거금도 서쪽에 완도 금당도가 자리했다.

타원형 해안도로가 사금어촌체험마을로 안내한다. 사금마을 앞 해변은 타원형 백사장을 이뤘다. 주변은 대부분 갯벌인데, 사금해변은 모래밭을 이루고 있다.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된 사금마을에서는 바지락캐기나 바다낚시 같은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사금마을 앞을 지나니 포구 방파제 앞에 2층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2층 정자에 오르니 북쪽으로 장환도가 가깝게 다가오고, 장환도 뒤로 일림산이 바라보인다. 득량도와 고흥반도, 고흥반도 남쪽에 솟아있는 섬들은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다.

사금마을 정자 아래에는 ‘소설가 이승우문학길’ 표지판이 서 있다. 이 마을 출신인 이승우는 이청준, 한승원과 함께 장흥이 낳은 소설가다. 사금마을 정자에서 삼산방조제 방향으로 걷는데 아주 작은 돌섬이 여자의 젖가슴처럼 바라보인다. 가금도라 불리는 이 섬은 이승우의 소설 ‘샘섬’, ‘정남진행’ 등에서 자주 등장한다.

동두항을 지나자 길고 긴 삼산방조제와 정남진전망대가 손짓한다. 우리는 저 긴 방조제를 따라 정남진전망대로 가야한다. 3㎞에 이르는 삼산방조제는 2009년 7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방조제가 완공됨으로써 안쪽에 204ha의 농경지가 확보됐다. 방조제 위로 정남진해안도로가 지나간다.

서울 정동쪽에 정동진이 있다면 정남쪽에는 정남진이 있다. 더 세밀하게 보면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삼산방조제 중간지점에 닿는다. 광화문 정북쪽은 중강진이어서 장흥 정남진-광화문-중강진이 직선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정남진 꼭지점에는 통일의 문이 세워져 있다. 통일의 문을 통과하면서 문 위에 걸린 통일의 종을 친다. 통일을 염원하는 종소리가 북한 땅 중강진까지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정남진 꼭지점에는 통일의 문이 세워져 있다.

삼산방조제 남쪽 끝은 옛 우산도 땅이다.

우산도는 방조제가 생기면서 육지로 탈바꿈했지만 지금도 우산도라 불린다. 우산도 높은 언덕에 정남진전망대가 우뚝 서 있다. 전망대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다보면 삼산방조제와 담수호인 삼산호가 득량만과 함께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군청색 호수와 호숫가 갈색 갈대숲도 조화를 이뤘다. 정남진전망대는 10층 높이 45.9m에 이른다. 위쪽은 떠오르는 태양을, 중간은 황포돛대를, 아래쪽은 파도를 형상화했다.

정남진전망대는 10층 높이 45.9m에 이른다.

10층 전망대에 올라가니 고흥반도와 거금도 소록도, 완도의 금당도 평일도 생일도 약산도를 품고 있는 다도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륙은 천관산과 회진면 대덕읍의 넓은 들판이 듬직하다. 정남진전망대를 비롯한 갖가지 볼거리를 갖춘 우산도 관광단지를 벗어나니 관덕방조제가 기다리고 있다. 관덕방조제 앞에는 소회도라 불리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라 관덕방조제에서 소회도까지 바닷길이 열려있다. 열린 바닷길은 갈매기들의 놀이터가 됐다.

관덕방조제 앞에는 소회도라 불리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면 관덕방조제에서 소회도까지 바닷길이 열린다.

회진면 신상마을은 소설가 한승원이 태어난 마을이다. 남파랑길은 한승원 생가가 있는 신상마을 골목길을 따라서간다. 구불구불 나있는 골목길을 따라 한승원생가를 찾아간다.

한승원생가는 신상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승원은 반농반어 생활을 하는 마을과 바다를 배경으로 ‘목선’, ‘앞산도 첩첩하고’, ‘아제아제바라아제’ 등 수많은 작품을 썼다. 한승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아버지이다.

한승원생가는 신상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한승원은 반농반어 생활을 하는 마을과 바다를 배경으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 아래로 신상마을과 득량만이 바라보인다. 신상마을에서 덕산마을로 넘어가는 임도는 ‘한승원 소설문학길’로 불린다. 한재를 넘어서자 회진항 방향으로 만입된 바다와 이청준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선학동마을이 바라보인다. 임도를 빠져나오자 덕산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덕산마을에 내려오자 넓은 들판 너머에서 천관산이 배웅한다. 그리고 회진항이 길손을 맞이한다. 회진항은 조선시대에는 회룡포라 불렸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을 명받고 임지로 가는 도중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아 전선 12척을 인수,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는 발판이 됐던 곳이 바로 이곳 회진이다. 회진면소재지 상가를 지나 회진시외버스정류장에서 길고 긴 남파랑길 79코스를 마무리한다.

회진항은 조선시대에는 회룡포라 불렸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을 명받고 임지로 가는 도중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아 전선 12척을 인수,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는 발판이 됐던 곳이 바로 이곳 회진이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남파랑길 79코스는 장흥군 용산면에서 시작해 관산읍, 회진면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서울의 정남쪽에 위치해 정남진으로 부르는 땅으로 정남진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코스 : 원등마을회관→상발마을→죽청배수갑문→사금마을→삼산방조제→정남진전망대→신상마을(한승원생가)→덕산마을→회진시외버스터미널
※거리, 소요시간 : 26.3㎞, 8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원등마을회관(전남 장흥군 용산면 원등2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