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업은 노란색에서부터 비롯됐습니다. 흔히 안전 표지판 등에서 주의나 경고의 의미를 지닌 노란색이 어느 순간부터 작품에 자주 쓰이기 시작했어요. 희망과 행복의 상징으로요. 그 다음 자연스럽게 따라온 과일이 ‘바나나’였죠.”

지난 3일 만난 박희정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바나나’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바나나 작가’로 알려진 그는 대형 조각 설치물, 목조 및 석조 등 조소 작업에 희망을 상징하는 ‘바나나’를 접목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바나나는 작가의 손을 거쳐 꽃과 새, 사람 그리고 동물과 함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은 흔한 과일이지만, 어렸을 적 바나나는 비싸고 항상 생각나는 과일이었죠. 바나나를 먹을 때면 항상 달콤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어요. 조각으로 제작하기에 조형적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 늦깎이로 첫 개인전을 연 작가는 ‘나에게 바나나가 온다’를 주제로 희망과 행복, 사랑을 상징하는 바나나 조각과 회화 작품을 보여줬다. 다음 해 전시에서는 왕관처럼 머리에 바나나를 쓴 모습의 조각 ‘복덩이 바나나’를 통해 나만의 ‘감정일기’와 같은 작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바나나 랩소디'

'복덩이 바나나-나에게 바나나'

'바나나 랩소디'

'바나나 멜로디-풍요2'

“조각을 시작한 지 28년 만에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됐어요. 그간 작업은 디테일한 동상을 만들거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온전한 저만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제 바나나 조각은 단순하면서도 유쾌한 요소가 묻어나는 행복한 작품이길 바랐어요. 힘들고 지친 이들이 재미난 소재인 바나나를 통해 일상 속 작은 희망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어요.”

이런 그의 작업은 2021년 나무와 스테인리스스틸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옮겨갔다. 작가는 ‘꼭두 바나나’를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 내재된 존재의 조화로움과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성적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나무라는 재료는 돌이나 철보다 무르지만, 본연의 기운과 성질 탓에 원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 되기도 했다.

“언젠가 꼭두박물관에서 본 ‘꼭두’에 매료됐어요. 망자의 가는 길을 위로하며 함께하는 꼭두가 행복과 위안을 전하는 ‘바나나’와 겹쳐 보였거든요. 재료 특성상 곰팡이가 생기거나 뒤틀림이 생기는 등 까다로운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나무 조각을 하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자연스러운 변화를 담고 있는 ‘꼭두 바나나’에 나와 타인의 행복을 부여하고자 했죠.”

작가는 조각과 함께 회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내년에는 대작 위주 회화를 중심으로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다양한 이야기를 선사할 예정이다.

“달달한 바나나는 희망이란 키워드로, 커서는 유익한 과일로, 작품을 통해서는 한바탕 웃음을 주는 행복과 사랑으로 제 삶과 함께 해오고 있어요. 제가 회화 작품을 한다고 해서 조각을 그만두거나 ‘바나나’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을 거예요. 희망과 따뜻함, 행복을 상징하는 새로운 소재를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제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바나나 작업을 기반으로 앞으로도 솔직한 저만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싶어요.”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