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잊혀져선 안 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껏 제가 써온 글들은 우리가 경험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데요. 비극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희생자를 기리고 비슷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1994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2020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오랫동안 대학 안팎에서 인문학을 강의해온 심영의 작가의 신간 2권이 최근 출간됐다. 도서출판 푸른사상에서 펴낸 소설집 ‘그날들’과 장편소설 ‘옌안의 노래’다.

소설집 ‘그날들’은 현대사의 비극을 그린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고려 몽골 침략기 삼별초 항쟁을 조망한 중편소설까지 총 여섯 편 소설을 엮은 책이다.

제호를 ‘그날들’로 정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누군가는 잊기를 바라지만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비극적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시대의 파란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소설로 끌어안으며 그날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오늘의 역사로 되살리고 있다.

책에는 등단작인 ‘방어할 수 없는 부재’와 제1회 5·18문학상 수상 작품이자 2012년 발간돼 제1회 5·18문학총서에 수록된 소설 ‘그 희미한 시간 너머로’가 실렸다. 두 소설 모두 5·18 이후의 비루한 우리 모습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아울러 제1회 부마항쟁기념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누가 남아 노래를 부를까’를 비롯해 부마항쟁 관련 소설 ‘꽃도 십자가도 없는’와 1948년 여순 사건을 조망하는 ‘얼룩을 지우는 일’이 수록됐다.

특히 책 맨 마지막에 수록된 중편소설 ‘그 밤의 붉은 꽃’은 이 소설집에 실린 중·단편 중 우리 역사의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을 다룬다. 작가는 삼별초 항쟁을 소재로 하면서도 갑작스러운 전란에 휩싸여 그것을 감당해야만 했던 무고한 이들의 고통과 슬픔에 주목했다.

장편소설 ‘옌안의 노래’는 정율성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지난해 박선홍 광주학술상을 수상한 작가는 저술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던 중 양림동 근대문화역사마을에 대해 조사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정율성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됐다.

“지난해 정율성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가 많았잖아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념적으로만 접근하려는 행태는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어섭니다. 친일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교조주의, 개인 숭배에 결코 동의하지도 않았던 그를 소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죠.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한 불굴의 항일 전사이자 뛰어난 음악가였던 정율성의 삶을 재복원해보자는 의도에서요.”

최근 작가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부랑아를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일삼은 목포 고화도 감화원 사례와 조선 청년과 결혼해 해방 이후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여성들의 안식처가 된 경주 나자레원 등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오랜 시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뤄오며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글쓰기에 매진해오고 있는 그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엔 저마다 사는 게 바빠 내 삶과 연관되지 않으면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결국 사회가 건강하지 않으면 개개인의 일상 또한 안정되거나 행복할 수 없어요. 제 소설이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작은 토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