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요?”

결혼하고 요리를 배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적당히’란 말이었다. 콩나물무침에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하냐는 물음에도 적당히, 묵은지 조림을 하기 위해 김치에 있는 김칫국물을 얼마큼 짜내야 하냐는 물음에도 적당히, 잡채에 들어갈 양파와 버섯을 얼마큼 볶아야 하냐는 물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적당히’였다. 요리에 간장을 넣으라는 말도 어렵기만 했다. 진간장, 양조간장, 조림간장, 멸치액젓 등 간장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지. 간장 맛이 다 그게 그거겠지 싶어, 마음대로 선택해 넣었다가는 이 맛도 아니고 저 맛도 아닌 요리가 되고 말았다. 안절부절, 뒤늦게 요리에 적합한 간장을 선택해 다시 넣어도 소용없었다. 첫 번째 선택으로 인해 스며있는 간장의 맛을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할 방법은 없었다.


“LA 낮 기온은 28도로 예상됩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고속도로에서 차가 꽉 막혀 움직일 수 없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데이미언 셔젤이 만든 아름다운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는 끝없이 늘어서 있는 차들로 사방이 막혀버린 LA 고속도로 모습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정체된 차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언덕을 넘어 높은 곳으로 반짝이는 빛 모두 쫓으리, 때로는 넘어져도 일어나면 그만이야, 아침은 다시 오니까, 태양은 다시 뜨니까.” 한 사람, 두 사람, 차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차 밖으로 나와 신나는 노래와 함께 흥겨운 춤을 추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재즈 뮤지션을 꿈꾸지만 진정한 재즈를 몰라주는 현실에 부딪혀 퍽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바스찬과 멋진 배우를 꿈꾸며 열심히 오디션을 찾아다녀 보지만 번번이 떨어지는 미아와의 사랑과 꿈을 통해, 꿈을 향한 열정과 여정, 꿈꾸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의 꿈을 위해 누구보다 지지하고 응원하면서도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자꾸만 삐걱거리게 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꿈, 사랑 사이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다. 사랑하고 꿈꾸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얼마 전에 다시 만난 ‘라라랜드’는 또 다른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영화가 끝날 무렵,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꿈을 이룬 세바스찬과 미아의 우연한 만남. 미아의 옆에는 세바스찬이 아닌 다른 남자가 앉아있고 세바스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미아. 지금의 남편이 아닌 세바스찬과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모습을 상상해보며 뒤돌아서는 미아의 모습을 통해,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스르륵,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때 그랬더라면….”

가끔, 혹은 습관적으로 그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될 때가 있다. 조금 더 사랑했더라면, 사랑한다고 말해줬더라면, 혼자서 미리 짐작하고 결단하지 말고 물어라도 봤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빨리 이별할 줄 알았더라면, 그 전화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따뜻하게 안아줄걸. 차 안에 있던 커피도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출발했더라면 어땠을까. 늘 다니던 길을 놔두고 그날은 왜 하필 다른 길을 선택해 사고가 나게 되었을까. 밥을 먹다가도 남은 한 숟가락을 먹어야 할지 남겨야 할지, 바지를 입어야 할지 원피스를 입어야 할지,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일상의 크고 작은 일부터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후회의 마음이 들 때면 자꾸만 뒤돌아봐질 때가 있다. 하지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한 번 선택한 간장의 맛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제거해 낼 수 없는 것처럼, 그 또한 우리의 삶이며 ‘숨’이기에. 선택에 대한 평가는 감히 누구도 내릴 수 없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