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에서]마주보고 달리는 열차 / 김종민
2024. 06. 13(목) 19:40 가+가-

김종민 논설실장

소싯적 감기약 한 번 먹어본 적 없다던 사회선배인 형님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70살이 가까워진 나이에 건강검진을 앞두고는 더욱 노심초사다.

구십구살까지 팔팔하게 하루이틀삼일만 아프다 가자라는 유행가 ‘구구팔팔일이삼사’가 모두의 희망사항일 테지만 혹시 의심스런 질환이 발견될까 불안하다. 의사 파업으로 인한 진료는 차지하고 발만 굴러야 할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모르는 게 약’이다. 어디라도 아픈다면 정말 큰 일 아닌가.

민주주의 질서가 무너지는 중이다. 갈등, 대결의 시대다. 상대를 악마시하는 극단의 정치가 순기능을 못하는 때문이다. 지도자, 리더의 부재를 실감하고 있다.

의정대치가 100일을 훌쩍 넘었다. 정부의 브리핑처럼 의료공백은 없는 게 아니다. 농어촌은 지금 아우성이다. 공보의가 대도시 병원으로 차출된 이후 복귀가 감감무소식인 상황, 아파도 참으며 버티고 있다.

‘신맹모삼천지교(新孟母三遷之敎)’가 회자되고 있지만 입시 현장의 혼돈 또한 불가피하다.

비수도권 대학들이 2025학년도 의대 지역인재전형을 대폭 늘림에 따라 지방유학 시대를 알렸으나 경쟁률과 합격선이 전국 단위 선발보다 낮더라도 수능시험 최저 등급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대규모 미달 사례가 발생할 것이란 염려다.

아울러 지방으로 역유학을 갔다가 의대 졸업 후 이탈하는 등 지역인재 전형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호남권의 경우 지역인재전형 지역 범위를 둘러싼 다툼이 일고 있다. 전남대와 조선대는 호남권으로 설정한 반면 전북대와 원광대는 전북과 호남권(광주, 전남·북)으로 구분해 별도 선발한다.

의대 증원 절차가 마무리됐다. 돌이킬 수 없다. 교수 인력과 시설 확충을 비롯한 교육 환경 개선 등 후속 조치를 통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지역인재전형 선발을 둘러싼 형평성 시비도 조율해야 할 과제다. 의대생들의 무더기 휴학에 따른 대규모 유급 방지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전국의 대학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도 요지부동이다.

할테면 하라는 식이고, 한번 해보자는 식이다. 신뢰가 깨졌다.

아예 의료계는 전면 휴진을 예고하고 나섰다. 3차 대학병원에 동네 의원까지 모두 문을 닫는다. 광주와 전남지역도 ‘자율’이라고 전제를 달았으나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셧다운이다.

피해는 또 환자들이 떠안아야 한다. 출구를 못찾는 강대강 대치에 분통이 터진다. 비상진료체제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진료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외래나 수술 등의 일정이 미뤄지면 연쇄 파급이 뻔하다. 중증질환자 단체는 조직폭력배에 빗대며 고소·고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진료명령과 휴진신고명령을 발령한 정부는 절대 다수의 여론이라며 의료개혁 완수의 의지가 확고하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지역 의료 강화 등만 반복할 뿐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의료농단’이라며 의사들은 세 과시로 반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 단일대오다. 의약 분업 및 원격 진료,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 반대 등 의사협회의 역대 4번째 집단행동이다.

흡사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다. 이대로면 탈선이다. 공멸이다. 한 걸음 물러서는 게 진정한 용기다.

제발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형님 만은 아니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 연로한 어른을 모시는 자식들의 마음도 같다.

국민들을 더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이 진심이면 기득권 이기주의라는 질책부터 새겨야 한다.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고 환자의 곁을 떠나는 행위다. 명분이 없다. 오만하면 지는 것이다. 공정과 상식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 정부도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

의사는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다. 초등학교 부터 의대를 목표로 정한 열풍에 입시학원은 특별반까지 운영한다. 그야말로 최상위 1% 성적으로 진학 가능하다. 쉽게 넘보기 힘든 넘사벽이다. 그리고 의사의 본업은 생명을 살리는 ‘인술(仁術)’이다. 그래서 더 존경받는다. 윤리적 사명이 중시되고 책임감이 가볍지 않다.

정말, 타협의 여지는 없는 걸까. 실낱같던 희망의 끈을 놔야 하나. 울분이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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