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리 샌포드作 ‘무한한 호, 문화전당로’

한국 도자 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거친 세오 작가의 작품들.

스티븐 영 리作 ‘독수리구름문양매병’(왼쪽)과 ‘광주에서의 마지막 밤’

형형색색 독특한 형태의 도자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시아에서 이주한 도예의 다양한 전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펼쳐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첫 도예 전시 ‘길 위에 도자’가 오는 7월28일까지 복합전시6관에서 진행된다.

전시에는 이민 2세대 혹은 입양 등 개인적인 이주 서사를 지닌 4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스티븐 영 리를 비롯해 베트남-멕시코계 미국인 린다 응우옌 로페즈, 한국계 미국인 세오, 캄보디아계 미국인 에이미 리 샌포드다.

이 4명의 작가는 양식사적 접근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흘러온 이주 현상에 주목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현대 도예 작품들을 선보인다. 문화적 충돌과 정체성 탐구의 맥락에서 자신의 서사를 오롯이 도자에 담아낸 것.

스티븐 영 리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총 7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매병 한 가운데가 완전히 뚫려있는 형태의 작품 ‘독수리구름문양매병’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도자의 기형을 깨뜨려 일종의 ‘해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고려청자라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기존 학 문양을 미국 국가의 상징인 흰머리수리로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도자의 모습을 선사한다.

린다 응우옌 로페즈 작가는 유년시절 이민 배경으로부터 비롯된 언어적 어려움을 계기로 일상 속 매우 사소하고 주변적인 사물들에 관심을 갖는다.

전시에서는 대걸레나 먼지 등을 의인화한 형형색색 도자 조각 ‘털복숭이 먼지’ 시리즈 3점과 직접 앉아볼 수 있는 의자형 도자 조각 4점 등 신작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자연의 형태를 모티브로 고려청자 유약을 사용해 자신의 정체성을 도자에 녹여내는 세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신작 ‘정(精)원’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을 광주의 식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지금껏 사용해보지 못한 한국의 흙으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그의 작품들은 흰색 전시장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정원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연스레 거닐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곡선 형태의 테이블과 그에 따른 관람 동선이 돋보인다. 곳곳에는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손으로 만지며 체험해볼 수 있는 촉각 전시도 마련됐다.

에이미 리 샌포드 작가는 전통 항아리를 통해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집단적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보여준다.

항아리를 일부러 깨뜨리고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글루로 붙여내고 실로 이어낸 작품 ‘무한한 호, 문화 전당로’는 광주가 걸은 5·18의 상처와도 결을 같이 한다.

이와 함께 전시장에서는 조선대 미술대학에서 길게는 한 달, 짧게는 2주 동안 머무르면서 작품을 만들어낸 스티븐 영 리와 린다 응우옌 로페즈, 세오 작가의 제작 과정, 인터뷰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