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칠십에 처음으로 요가 교실을 찾았다. 그동안 이름 붙일만한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지라 이미 굳어버린 몸에 맞는 운동을 찾다가 요가를 선택했다.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 등이 결합 된 심신 수련법이라는 달콤한 매력에 용기를 내 보았다. 더욱이 요가의 수련은 도덕적인 통제를 우선으로 하며 정신력을 계발하고 육체를 정화시켜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한다는 데에 호기심을 일으켰다.

다양한 연령의 회원들이 매트 위에서 펼치는 유연한 동작들은 마치 묘기를 보는 것 같았다. 평소에 안 쓰는 근육까지 활용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늘리고, 비틀고, 조이는 등 여러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곤 한다. 처음엔 몸살이 나고 근육통으로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비교하지 말고 자기 몸에 맞추면서 즐기라는 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내 나름대로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이 되었다. 들숨과 날숨의 깊이를 의식하면서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느끼며 깨달아가는 명상의 시간도 행복하다. 이렇듯 지도교사의 멘트에 따라 겨우 흉내만 내며 꼴찌를 유지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조금 일찍 시작했더라면 지금 내 키보다 몇 센티는 더 컸으리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가끔은 욕심을 부리며 새 회원이라도 오면 꼴찌는 면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들은 젊으니까 금방 나보다 잘하게 된다. 역시 젊음은 탄탄한 무기인 것 같다.

되돌아보니 일등 하기보다 꼴찌 하기가 더 어렵다며 자신만만했던 젊은 날도 있었다. 어떤 일이든 선두에 있다는 것은 피나는 노력과 끈기의 결과물이라는 것만 생각했지, 나름대로 꼴찌도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잘한 사람의 90% 동작보다 못한 사람의 50% 동작이 더 힘들다는 것을 새록새록 익히고 있는 중이다.

요즈음은 꼴찌를 즐기면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 몸에 맞는 내 운동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려니 조금 일찍 가서 맨 뒷자리에 앉는 것이 편하다. 노련한 선생님은 이론과 동작을 질의응답으로 소통하면서 능률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나는 의식적으로 대답을 피하곤 한다. 꼭 의기소침해서가 아니라 꼴찌의 본분에 맞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이다. 평소 분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몸에 밴 나의 습관일까.

삼십 대였다. 여가를 이용해 서예학원에 등록을 했다. 기초가 끝나고 천자문을 시작했다. 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천자문의 광범위한 내용에 푹 빠졌다. 자연의 이치에서부터 인간의 도리까지 많은 내용이 함축된 4언절구를 쓰고 또 쓰며 다섯 종류의 서체를 끝냈다. 잘 썼다는 칭찬에 흐뭇하고 대견스러운 순간도 잠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쓴 글자가 무슨 글자이며 어떤 뜻인지도 모르는 것도 많을뿐더러 특히 초서와 전서는 그냥 보고 그린 것에 불과했다. 자칫하면 기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한문 공부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나의 생각은 일상에서도 영향을 주었다. 어떤 일이든지 그 상황에 맞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부족한 것은 후에라도 채우면 되지만 넘치는 것은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즈음 세상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돈과 권력, 지식까지도 자기의 분수에 맞는 자리의 옷을 입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를 본다. 자기의 역량에 맞지 않은 권력을 잡았다 패가망신 할 수도 있고, 돈도 자기가 관리 할 수 있는 양만큼만 있어 적재적소에 써야지 분수에 넘쳐 잘못 쓰면 천박해지기 쉽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만큼만 생각한다. 모두가 추구하는 지식이라도 잘못 쓰면 사회의 역기능일 수도 있음을 종종 본다. 지식인이야말로 올바르고 건전한 사회를 이끌어야 할 책임으로 모든 지혜를 모으는데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신성한 종교도 내 믿음만큼만 접근하려고 한다. 어쩌면 내 독단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종교와 생활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생활 속에 녹아 스며드는 자연스런 믿음을 갖고 싶어서이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꼭 인격이 높다고 할 수 없고, 돈이 많은 부자나 재주가 많다고 해서 품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제는 잘 산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고민해 볼 일이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배고픈 시절에는 서로 배려하고 작은 것에도 마음을 나누며 감사할 줄 알았다. 가난이 서러워 허리끈 졸라매며 잘살게 된 지금은 어떤가. 오히려 반목과 치열한 경쟁으로 갈등을 부추기고 편 가르기를 하며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다양한 사회구조의 현실에서는 개개인의 삶이 존중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행복을 추구해야 되지 않을까. 남과 비교하지 않은 유유자적한 삶. 그래서 꼴찌도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분수에 맞는 일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을 때 그 자체로서 존중되어지는 것이다. 일등도 꼴찌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을 때 더 빛이 나고, 능력을 맘껏 발휘하여 선두를 잘 이끌어 나갈 것이다.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사회, 거기에서 인격과 품격이 나오며 더 나아가서는 국격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도 요가 매트 위에서 내 몸에 맞는 적당한 몸짓으로 잔잔한 희열을 느껴본다.

<김재유 약력>
▲‘수필과 비평’ 등단
▲광주문인협회 이사
▲남도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 ‘시간의 조각들’, ‘우리들의 사랑법(공저)’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