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을 상징하는 말은 많다.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산’에 공감한다. 무등산은 위안과 용기를 주고, 많은 영감을 가져다준다. 또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방송일을 하는 나는 촬영에 얽힌 뒷이야기가 많다.

전에 근무하던 방송국에서는 무등산 정상에서 종무식을 했다. 산상 종무식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행사를 거르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통을 이어가는 과정이 가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16일, 무등산의 입석대와 서석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제465호 무등산 주상절리대다. 20년 전 일이다. 그해 마지막 날 산행에서 나는 문득, ‘무등산 주상절리대 천연기념물 지정’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천연기념물은 학술적으로나 관상적으로 가치가 높아야 한다고 했는데. 흔하게 바라보고, 밟고 오르던 돌무더기가 천연기념물이라니? 가까이 있고 너무나 익숙해서,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광주에는 천연기념물이 하나도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던 이 시기는 중앙정부와 말이 통했고, 지역의 요구 사항도 잘 들어줬다. 최초라는 점과 시대적 상황이 맞물리며 ‘혹시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궁금증은 풀렸다. 무등산 일대의 지질조사가 오래전부터 이뤄졌고, 입석대와 서석대, 규봉 등의 주상절리는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학술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중생대 백악기 일대에서는 화산활동이 활발했다. 이때 흘러나온 용암이 오랜 세월 풍화와 냉각 수축을 반복하며 지금의 모양을 갖게 되었다. 특히 입석대와 서석대의 돌기둥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주상절리 가운데 최대 규모다.

주상절리의 형성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5각 또는 6각형의 절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했다. 암질을 분석해 세 차례의 화산활동을 밝혀냈고, 절리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암석들이 산 곳곳에 널려 있음을 확인했다.

또 국내외 유명 주상절리와의 차별화를 위해 제주도 지삿개와 북아일랜드 자이언츠코즈웨이 등을 취재했다. 결과는 SD, HD, 3D 다큐멘터리로 제작됐고, 그 과정에서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다.

자이언츠코즈웨이는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4만여 개의 주상절리가 장관이다. 북아일랜드 내셔널트러스트가 훼손 위기의 이곳 주상절리를 사들여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촬영조건으로 5만 파운드의 보험 가입과 시간당 100파운드의 비용을 요구해 당황했다.

‘가장 효과적인 보존 방법은 대중에 알려지지 않는 것’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에 할 말을 잃었다. 인간의 호기심과 관심이 오히려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역설. ‘영구보존’이라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취지를 실감했다.

3D 촬영은 특성상 많은 장비와 인력이 투입된다. 크레인의 암이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추, 3D 리그와 카메라, 발전기, 대형 TV 등은 그 모양이 손으로 들고 산길을 오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장비 운반에 힘이 좋은 역도선수들이 참여했으나 입석대에서 모두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 버렸다. 이대로라면 서석대 등 추가 촬영은 불가능하다.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 앞에서 일하던 지게꾼들의 도움을 받아 장비를 운반하고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지난주 또 한차례 무등산 촬영에 나섰다. XR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디지털 에셋을 만들기 위해서다. 거대한 돌기둥을 촬영하고 스캔하는 데 드론과 라이더를 이용했다. 이번에는 입석대 너머를 촬영하던 드론과의 통신이 끊겨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넓은 산속에서, 손바닥만 한 드론을 어떻게 찾지? 촬영팀이 흩어져 입석대와 서석대 사이 숲속을 뒤졌으나 허사였다. 좀 더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마지막 통신한 위치를 찾아냈고, 그 좌표를 카카오맵에 입력했다.

좌표의 위치는 100m 이내.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30여 분을 추적한 끝에 나무에 걸려있는 드론을 발견했다. 소풍에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 봤다’ 보다 더 큰 외침이 무등산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