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비명횡사’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텃밭’인 광주·전남 18개 선거구를 싹쓸이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문제 의식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힘과의 사실상 양자 대결 구도 속에서 뚜렷한 대항마 없이 선거전이 진행돼 현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민주당이 그대로 흡수했다는 이야기다.

지역민들 사이에 민주당 1당 체제에 대한 반감과 실망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정권 심판론’이 민심을 파고든 데다, 민주당 외엔 별 다른 대안이 없는 지역 내 현실이 맞물려 다시 민주당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광주 12.72%, 전남 11.44%의 득표율을 기록, 보수정당 후보 최초로 두자릿수 지지를 받으며 호남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 지난 2년간의 국정 운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16년 만에 처음으로 이번 총선에서 광주·전남 18개 선거구에 모두 후보를 냈다. 한 석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지만 정권 심판론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철저히 외면받았다.

특히 과거 두 차례나 순천 지역구 당선 이변을 연출한 이정현 후보가 순천·광양·곡성·구례을에서 선전을 기대했지만 정권 심판을 요구하는 민심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민주당의 경우 광주·전남 후보 공천 과정에서 각종 문제에 휩싸이며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

실제 광주 동납갑에서는 여론조사 1위 후보가 컷오프되는가 하면, 담양·함평·영광·장성에선 이개호 후보가 3차례 연속 단수공천을 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재심위원회의 3자 경선 결정에도 최고위원회는 단수공천을 강행해 여론이 등을 돌렸다.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서는 경선 1위 후보가 불법 행위로 낙마하며 후보가 교체됐고, 순천·광양·곡성·구례을의 경우 권향엽 후보를 전략공천하려다 반발이 일자 경선으로 선회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당내 경선이 끝난 뒤 보여준 민주당의 모습은 ‘공천=당선’ 공식이 반영된 듯 적극적인 선거운동과는 거리가 먼 구태를 재연해 유권자 실망감을 가중시켰다.

문제는 광주·전남 18명 당선자 중 초선이 절반이 넘는 11명(광주 7명·전남 4명)에 달한다는 점이다. 정부를 상대로 향후 지역 예산 확보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초선 일색으로 구성됐던 21대 광주·전남 국회의원들이 지역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던 상황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미 ‘호남 정치’가 무너진 지 오래된 상황에서 박지원(5선)·이개호(4선)·신정훈(3선)·서삼석(3선)·김원이(재선)·주철현(재선)·민형배(재선) 당선자 등 ‘다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호남 정치력’을 회복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무엇보다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 전남권 의대 신설 문제 등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광주·전남 간 초광역 현안, 전남 지역 내 광역 현안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지역 이기주의를 버리고 큰 흐름의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이 초광역·광역 현안에 대한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한 만큼 제22대 국회에서도 지역 정치권이 지역 내 갈등을 조장하고 키우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광주·전남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것은 절대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민주당과 당선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한다”며 “민주당 일색의 지역 정치권이 이해 관계에 얽혀 지역 갈등을 조장할 경우 민심은 또 다시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