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여론 / 이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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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03(수) 19:35 가+가-
이동근 조선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그야말로 여론조사 전성시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흔히 여론이라고 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도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떠올리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은 아니다. 언론이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와 공중의 실제 의견인 여론을 비교해 보면 다른 경우가 많다. 여론조사는 응답자들의 감정의 깊이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
어떤 여론조사도 선거에서 승자를 정확히 예견하지 못한다. 어떤 사회과학 연구 방법도 선거 당일 실제로 투표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명쾌하게 알려 주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대답한 대로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의견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과학적인 여론조사 방법이 있다고 해도 단순히 물리적 다수의 생각이 가장 현명한 생각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여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여론정치이며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다. 만장일치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무리 형편없는 생각이라도 구성원 중 다수의 생각을 이른바 바람직한 의견, 즉 여론으로 간주하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복수의 후보자 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자가 가장 적합한 인물로 결정되는 선거제도 역시 다수의 의견이 바람직한 의견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이 캄캄한 밤중에 망망대해에서 배가 난파해 표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동쪽이 어느 쪽인지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다수가 서쪽을 동쪽이라고 결정한다고 해서 서쪽이 동쪽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다수결의 원칙대로 서쪽을 동쪽으로 간주하고 이를 근거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다. 그래서 엉뚱한 후보자가 다수의 지지로 막중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선거제도다.
여론은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의견의 집합체다. 미국에서 여론에 관한 가장 모범적인 교과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버나드 헤네시(Bernard Hennessy)가 쓴 ‘Public Opinion’에서 여론은 일반성을 지닌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니고, 통계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확정된 것도 아니며,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실체도 아니라고 했다. 헤네시는 여론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 종합, 평가해야 하는 일종의 사회현실로 봤다.
헤네시의 저서와 같은 제목의 책 ‘Public Opinion’을 쓴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상가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보통 사람들의 의견인 여론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여론을 사회심리학적으로 이해한 리프먼은 여론의 비합리성을 강조했으며, 여론을 기반으로 기능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리프먼은 자기 주변에서 발생한 사건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전지전능한 시민’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경고하고 민주주의 제도가 전적으로 보통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했다. 리프먼은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지혜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념은 현명하지 못하며 무지에 입각한 민주적 결정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 너무 많은 권력을 획득했다고 본 리프먼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시민의식이 고조된 21세기 인터넷 디지털 시대의 시민은 백여 년 전 리프먼이 지적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이른바 ‘식견(識見)이 있는 시민’(well-informed citizen)은 제한된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전문가도 아니고 단순한 처방적 지식을 갖고 애매모호한 감정과 열정의 비합리성을 쉽게 묵인하는 보통 사람도 아니다.
‘식견이 있는 시민’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찾고자 노력하고 합리적인 견해를 형성하려는 사람들이다.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정보에 기반을 둔 다수의 보통 사람의 의견이 여론으로 둔갑해 사회적으로 승인을 얻는 것은 민주주의의 맹점이다. 다수의 무지한 보통 사람들이 아닌 식견이 있는 시민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정보 습득과 정보 활용이야말로 건전한 여론 형성의 전제 조건이다. 단순히 물리적 다수의 의견이 아닌, ‘식견 있는 시민들의 지혜’인 진정한 의미의 여론이 형성되려면 성숙한 시민의식과 언론의 건전한 공론장 역할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어떤 여론조사도 선거에서 승자를 정확히 예견하지 못한다. 어떤 사회과학 연구 방법도 선거 당일 실제로 투표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명쾌하게 알려 주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대답한 대로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의견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과학적인 여론조사 방법이 있다고 해도 단순히 물리적 다수의 생각이 가장 현명한 생각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여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이 캄캄한 밤중에 망망대해에서 배가 난파해 표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동쪽이 어느 쪽인지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다수가 서쪽을 동쪽이라고 결정한다고 해서 서쪽이 동쪽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다수결의 원칙대로 서쪽을 동쪽으로 간주하고 이를 근거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다. 그래서 엉뚱한 후보자가 다수의 지지로 막중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선거제도다.
여론은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의견의 집합체다. 미국에서 여론에 관한 가장 모범적인 교과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버나드 헤네시(Bernard Hennessy)가 쓴 ‘Public Opinion’에서 여론은 일반성을 지닌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니고, 통계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확정된 것도 아니며,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실체도 아니라고 했다. 헤네시는 여론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 종합, 평가해야 하는 일종의 사회현실로 봤다.
헤네시의 저서와 같은 제목의 책 ‘Public Opinion’을 쓴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상가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보통 사람들의 의견인 여론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여론을 사회심리학적으로 이해한 리프먼은 여론의 비합리성을 강조했으며, 여론을 기반으로 기능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리프먼은 자기 주변에서 발생한 사건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전지전능한 시민’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경고하고 민주주의 제도가 전적으로 보통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했다. 리프먼은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지혜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념은 현명하지 못하며 무지에 입각한 민주적 결정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 너무 많은 권력을 획득했다고 본 리프먼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시민의식이 고조된 21세기 인터넷 디지털 시대의 시민은 백여 년 전 리프먼이 지적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이른바 ‘식견(識見)이 있는 시민’(well-informed citizen)은 제한된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전문가도 아니고 단순한 처방적 지식을 갖고 애매모호한 감정과 열정의 비합리성을 쉽게 묵인하는 보통 사람도 아니다.
‘식견이 있는 시민’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찾고자 노력하고 합리적인 견해를 형성하려는 사람들이다.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정보에 기반을 둔 다수의 보통 사람의 의견이 여론으로 둔갑해 사회적으로 승인을 얻는 것은 민주주의의 맹점이다. 다수의 무지한 보통 사람들이 아닌 식견이 있는 시민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정보 습득과 정보 활용이야말로 건전한 여론 형성의 전제 조건이다. 단순히 물리적 다수의 의견이 아닌, ‘식견 있는 시민들의 지혜’인 진정한 의미의 여론이 형성되려면 성숙한 시민의식과 언론의 건전한 공론장 역할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