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하다. 따스한 봄 날씨에 산과 들이 꿈틀거린다. 겨우내 인고의 시간을 견딘 풀뿌리들이 땅을 뚫고 일제히 새싹을 내기 시작했다. 나무들도 동면의 시간을 마감하고 생명활동을 시작했다. 매화와 산수유는 잎을 내기 전, 꽃부터 활짝 피웠다.

따스한 봄 날씨에 산과 들이 꿈틀거린다. 겨우내 인고의 시간을 견딘 풀뿌리들이 땅을 뚫고 일제히 새싹을 내기 시작했다.

무채색이던 대지가 푸릇푸릇해지고 화사해졌다.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신비롭고 새롭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봄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봄에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활력 넘친다. 봄을 맞으러 고흥반도로 향한다.

남파랑길 73코스 출발지인 대전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변에서 맞는 바닷바람은 이미 그 끝이 무뎌져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만조 때라서 대전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 상당부분이 바닷물에 덮여있다. 1.9㎞에 이르는 백사장은 500여 그루의 곰솔에 감싸여있다. 대전해수욕장의 매력은 넓고 완만한 백사장과, 백사장을 감싸고 있는 1백년 수령의 솔숲이 이룬 조화에 있다.

1.9㎞에 이르는 대전해수욕장 백사장은 500여 그루의 곰솔에 감싸여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로 이뤄진 숲은 북쪽으로 갈수록 울창해진다. 울창한 숲 가운데에 산책로가 있어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솔숲길을 걷다보면 해수욕장까지 다가온 잔잔한 파도가 감미롭게 노래를 불러준다. 인적 뜸한 봄철 대전해변은 한가하고 그윽하다.

대전해수욕장 안쪽에는 넓은 들판이 자리하고 있다. 송정방조제를 막아 생긴 간척지이다. 북쪽을 바라보며 걸었던 남파랑길은 득량만 가장 깊숙한 바다를 동쪽에 두고 남쪽으로 향한다.

송정방조제를 걷고 있는데, 방조제 바로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출렁인다. 바닷물이 빠지면 넓은 갯벌로 변하는 곳이다.

득량만을 바라보니 우도와 각도섬이 건너편 남양면에 가깝게 떠 있고, 초미니섬 서도는 지금 걷고 있는 두원면 쪽에 가깝게 자리했다.

송정방조제를 지나 농로를 따라 송정마을로 들어선다. 북향을 하고 있는 송정마을은 넓은 논과 대전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있다.

길 주변 마늘밭에서는 겨울을 넘긴 마늘이 푸르다. 밭가에 서있는 매화나무는 하얗게 꽃을 피웠다. 그윽한 매화향이 봄 향기를 전해준다. 한 송이 꽃에는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섭리가 담겨있다.

해변을 따라 걸을 때는 비릿한 바다냄새가 코끝에 전해진다. 내륙안쪽으로 깊숙이 만입돼 있는 득량만 건너편에서는 고흥반도 북쪽의 산들이 손짓한다. 남동쪽에서는 고흥의 대표적인 산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가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놓았다.

해변길을 걷다가 잠시 농로를 따라 걷기도 한다. 대지는 어느덧 푸릇푸릇 해졌고, 나뭇가지도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예회마을 뒤편 농로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붕들이 정겨움을 더해준다.

예회마을 앞으로 득량만이 펼쳐지고, 팔영산 같은 산봉우리들이 예쁘게 다가온다.

예회마을 골목길을 걸을 때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집에 온 것처럼 포근하다. 조선 고종 때 예조판서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마을에서 잠시 쉬어갔는데, 마을사람들의 예의범절에 감탄해 마을이름을 ‘예회’라고 했다고 한다.

예회마을을 등지고 해변을 따라서 걷는다. 바다는 여전히 고요하고 잔잔하다.

팔영산을 비롯한 고흥반도에 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이 잔잔한 바다위에 그림자를 내려놓았다. 해변길을 걸을 때는 주로 방조제를 따라 걷는다.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유난히 크고 작은 방조제가 많다. 바다와 인접한 농경지는 대부분 방조제를 막아 생긴 간척지다. 해변마을 주민들은 이런 간척지와 갯벌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갯벌에서는 망둥어, 농게, 바지락, 굴 같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득량만 깊숙이 자리한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하다. 팔영산을 비롯한 고흥반도에 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이 잔잔한 바다위에 그림자를 내려놓았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걷다가 낮은 언덕을 넘어 다시 해변으로 나아간다. 두원면소재지 쪽에서 흘러온 용산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해변이다. 득량만에서 가장 깊숙하게 내륙으로 파고든 지점이다. 길은 용산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남파랑길은 용산천 건너편 제방으로 연결되지만 교량이 있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라 용산천 하류는 갈대숲을 이루고 있다. 830번 지방도로까지 올라가 와룡마을 앞에 있는 와룡교를 건넌다. 옛날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와룡교를 건너자마자 방향은 다시 제방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간다.

득량만을 바라보며 걷다가 방조제 안쪽 간척지 농로를 따라 금성마을로 향한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언덕길을 따라가는데, 득량만과 고흥군 대서면 동강면에 솟은 산봉우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득량만 깊숙한 곳에 떠 있는 우도와 각도섬이 내륙의 산봉우리들 앞쪽에서 다가온다. 우도에 있는 민가들까지 선명하게 바라보인다. 보성의 산줄기도 득량만을 감싸면서 길게 늘어서있다. 조금 전 지나왔던 예회마을이 손짓을 한다.

언덕길을 따라가는데, 득량만과 고흥군 대서면 동강면에 솟은 산봉우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득량만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어 거대한 호수처럼 느껴진다.

길 주변에는 밭들이 조각보처럼 자리했다. 고갯마루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서 금성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잔가지까지 섬세하게 드러내놓고 있는 느티나무 거목은 마을주민들의 쉼터이자, 우리 같은 길손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느티나무 언덕을 넘어서자 금성마을이 낮은 산봉우리를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주차장을 겸한 광장과 마을회관이 있다. 마을회관에서는 올해 팔순을 맞이한 어르신 세 분의 팔순잔치가 열리고 있다. 아름다운 공동체문화가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나는 길손의 가슴까지도 따뜻해진다.

금성마을에서 조그마한 언덕을 넘으면 동촌마을이다. 동촌마을 뒷길을 따라 걷다가 해변에 다다른다. 해변에서는 내로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방조제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이룬다. 방조제에서 보는 득량만은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롭다. 방조제를 건너면 행정구역이 과역면으로 바뀐다.

물이 빠지면 이곳은 넓은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팔영산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점암면과 과역면을 거쳐 흘러온 사정천이 이곳에서 득량만에 합류한다.

이곳 내로마을 앞바다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갯벌이 살아있으며 수심이 얕아 각종 어종이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봄에는 바지락, 겨울에는 굴이 많이 채취된다.

내로마을 앞바다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갯벌이 살아있으며 수심이 얕아 각종 어종이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방조제 수문을 지나 해변길을 따라 걸을 때는 오늘 걸었던 해변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내로마을로 통하는 농로 아래로 여전히 득량만과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들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푸릇푸릇해진 논과 밭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종점인 내로마을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남파랑길 73코스는 득량만 가장 깊숙한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득량만을 감싸고 있는 고흥의 산줄기들이 푸른 바다와 어울려 아름답고, 갯벌과 해변마을은 질박한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
※코스 : 대전해수욕장→송정마을→예회마을→와룡교→금성마을→내로마을회관
※거리, 소요시간 : 17.9㎞, 4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대전해수욕장(전남 고흥군 두원면 두원로 13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