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옥, …똑똑!”

특별한 생각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던 공간도 어느 순간 멈칫, 걸음이 멈출 때가 있다. 여느 때처럼 맑은 웃음 만들어 밝고도 경쾌한 걸음으로 들어서야 할지, 어둡고 슬픈 감정들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들어서야 할지, 이래저래 뒤엉킨 마음만큼이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떠한 순간이 되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표정으로 뒤돌아설 수 있는 마음 준비와 함께 긴 숨 한번 내쉬며 들어서게 된다.

“이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요?”

얼마 전, 지금의 가장 큰 소망은 남편과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거라는 지인의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젊었을 때는 아이들 키우느라, 살림하느라, 타지에 있는 남편 몫까지 해내느라 정신없이 살았단다. 가끔은 단절된 남편과의 대화가 신경이 쓰였지만, 아이들 잘 키우고 남편도 퇴직해 함께 살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단다. 남편과 마주 앉아 도란도란 옛이야기 나누며 알콩달콩 살아야겠다는 소망을 가슴 가득 품고 말이다. 하지만 남편이 퇴직을 했는데도 달라진 게 전혀 없단다. 남편은 또다시 타지에 일자리를 잡았고, 집에 오는 날에도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으면 그걸로 끝이란다. 어쩌다 이야기를 시작해도 서로의 생각과 우선순위가, 단절된 세월만큼이나 서로 달라 말만 시작했다 하면 언성만 높아지니 외롭고 힘들어도 참고 살았던 지난날이 후회스럽다며 울먹이는 지인의 얼굴을 차마 마주 할 수 없었다.

“닫힌 문 안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지냅니다/ 이름을 부르거나 문을 여는 일은 금기 사항입니다”로 시작되는 천화선 시인의 시, ‘거룩한 동거’ 속 사람들은 하루의 시작도 다르고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도 달라서 서로에게 이방인이란다.

“퇴직 후 안방을 차지한 늙은 코끼리는 식사를 맥주병으로 하고 작은 방에서 칠 년 넘게 취업 준비를 하는 여우는 절대 찾지마가 유일한 주문입니다 대학교를 다니는지 마는지 모를 코알라는 문간방에서 나올 줄을 모르고 곰 아줌마는 넓은 거실을 차지하고 살지만 콩알만한 가슴으로 닫힌 문을 주시해야 합니다. 서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원칙을 지켜야 해서/ 뒷짐을 지거나 뒷꿈치를 들고 걸어야 하는/ 거룩한 일상은 닫혀있는 문에서 시작합니다.”로 끝이 나는 ‘거룩한 동거’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다음에 만나게요!”

얼굴 마주하며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고 싶어도, 맛있는 밥 한번 먹고 싶어도, 지금은 정신없이 바쁘니까 나중에 만나야지, 나중에 말해야지, 마음먹게 되지만 나중은 나중이 되고 또 다른 나중이 될 뿐이다. 나중에 만나자고 쉽게들 말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나중’이라는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만남의 문도 생각의 문도 마음의 문도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녹이 슬어 덜컹거릴 뿐, 언제든 마음먹는다고 스르륵 열리지도 않는다.

봄이다. 내 안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보고 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봄날의 푸르름이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지금 말하자. 가슴 가득 어두운 먹구름이 내려앉은 듯, 가슴이 먹먹해지는 날엔 둥가둥가 달밤에 춤이라도 추면서 털어내 보자. 지금 이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햇살과 바람과 푸르름과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