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이 RE100이 주목받던 때가 있었던가 싶다. 얼마 전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슈퍼을’로 통하는 네덜란드 ASML이 “2040년까지 고객 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넷제로(탄소배출량 O)’를 달성하겠다”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ASML의 장비를 납품받는 모든 반도체 제조업체는 넷제로를 달성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ASML이 제시하는 재생에너지 범주에 원자력발전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10%남짓인 국내업체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지난 1월15일, 정부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방안’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용인·화성·평택 등 경기 남부 일원에 반도체 생산 팹 13기, 연구 팹 3기 등 팹 16기를 신설해 세계 최대·최고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거창한 계획에 반해 정부 주도의 전력 인프라 구축방안은 너무도 허술하다. 더욱이 RE100에 대응하는 방안은 없다시피 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초기 전력은 LNG 발전을 통해 공급하고 이후 부족분은 동해안의 원자력발전과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송전설비를 신설해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LNG나 원자력발전은 RE100에 해당되지 않아서 이 전력으로 만든 반도체는 외국 수출이 어렵다. 또한 이 계획대로라면 송전탑 신설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동해안과 호남 전체는 송전탑으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얼마나 큰 낭비인가?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다. 재생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 반도체 팹을 지으면 된다. 호남은 이미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있다. 특히 무안반도는 신안의 풍력, 무안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으로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호남에서 다 소비하지 못해 남아돌고 있다.

더욱이 전문가들이 말하는 반도체산업의 입지, 공기가 깨끗하고 소음이나 진동이 없는 곳, 지진의 영향이 없는 대규모 면적의 부지가 있는 곳, 공업용수가 풍부하고 원자재 수입 및 완제품 수출이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는 점도 충족하고 있다.

이밖에 문화·소비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목포는 이미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돼 많은 부문에서 지원받고 있다. 신안은 천혜의 환경으로 고급주거시설과 제주영어교육도시와 같은 교육인프라 구축이 용이하다. 무안반도야말로 반도체 팹이 입주할 최적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라 할만하다.

또한 반도체 팹의 지방 신설은 인구감소, 지방소멸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은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초저출산의 해결책을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경쟁압력을 낮추기 위한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개선하는 ‘구조정책’의 추진” 즉, 지방에 정규직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수도권 집중이 해소되고 주택가격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한국은행 보고서의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 반도체 팹의 지방 신설이다.

지난 2022년,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가 그들의 공약이었던 반도체 특화단지를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원전을 탄소배출이 없는 친환경에너지로 RE100보다는 CF100을 추진하며 수도권에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는데 방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번 네덜란드 ASML의 ‘2040 넷제로 정책’뿐만 아니라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380여 개 글로벌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며, RE100 달성을 납품업체 등 공급망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며, 무안반도 3개 자치단체, 목포·무안·신안은 인구감소 지방소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신안·무안 등 지역주민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재생에너지가 타시도로 송전되지 않고 우리 지역의 발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무안반도 3개 자치단체는 반도체 팹 유치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